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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 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1978년 <시인의 마을>이란 노래로 MBC 등에서 신인 가수상을 받은 정태춘씨가 작사 작곡한 <518>이란 노랫말 중 일부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발생 후 10년이 지난 1996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열린 '안티 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곡이다. 당시 많은 광주시민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다. 이 곡을 계기로 정태춘씨는 서정적인 가수에서 리얼리즘(사실주의) 가수로 탈바꿈했다고 알려져 있다.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고 있는 나는 <518> 가사를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당시의 현장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정 선생께서 '5.18 항쟁'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필자는 586세대(50대, 80학번, 60년대 생)이다. 지금은 일부 정치인들로 인해 싸잡아 비판받는 신세가 됐지만, 4.19혁명이나 5.18 광주민주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선봉에는 항상 대학생들이 있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민주화되었다는 것에 대해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5.18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는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붉은 피와 어여쁜 너의 젖가슴'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수 정태춘씨와 나는 공통점이 있다. '80년 광주'의 실체를 알고 인생관을 바꾸게 된 동기가 같다.

1987년, 필자는 대학생 신분으로 6월항쟁을 겪었다. 6월항쟁은 1979년 12·12 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사정권 세력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범국민적 민주화 운동이었다.

당시 서울대 재학생이었던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던 연세대 학생 이한열군이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져 숨졌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6월항쟁이 시작됐다. 

그 시기에 필자는 우연히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란 책을 읽게 됐다. 과장을 조금 해서 책 한 권을 눈물로 적셨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그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고 어느새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거리로 향하고 있었다. 

정태춘씨 이야기이다. 광주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80년 5월, 가수 정태춘 씨는 결혼식을 갓 마친 신혼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에게 때마침 예비군 훈련 동원령이 내려졌고, 훈련장에서 광주의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그 후 정씨는 필자와 같이 황석영씨의 광주 보고서를 읽고 투사로 변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찍이 광주 보고서를 읽었던 정씨는 1996년 광주에서 열리는 '안티 비엔날레'에 초청받았다. '의미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하며 곡을 썼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곡이 <518>이며 광주의 비극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지식인과 음악계에 경종을 울리는 노래가 됐다고 전해진다.

올해로 41년째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아직 광주학살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는 없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만이 2019년부터 올해까지 3년째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참배하고 있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투사 정태춘씨는 지난 2016년 12월 100만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자리에서 이렇게 외쳤었다. "내가 사는 나라는 선이 악을 물리치고 염치가 파렴치를 이길 수 있는 나라여야 합니다."

정태춘 씨가 작사·작곡한 518에 나오는 가사가 필자의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518 광주 학살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없는 한 우리들의 오월은 영원히 끝나지 않았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억울하게 피 흘리며 죽어간 오월의 영령들이 떠오른다. 학살자들이 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받은 훈장을 회수해서 꽃잎처럼 떨어져 나간 무고한 희생자들의 무덤 앞에 반납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태그:#518, #전두환, #41주년, #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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