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3 13:23최종 업데이트 21.05.13 13:23
  • 본문듣기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섞여 있는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 권우성

 
지난 4월 26일 국민은행 리브온에서 발표한 '월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을 돌파했다. 2017년 3월 처음 6억을 돌파한 후 4년 만에 11억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아파트를 사느냐 마느냐 한순간의 선택이 순식간에 서울시민들을 벼락부자와 벼락거지로 나누어놓았다. 순간의 선택으로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무주택자들은 박탈감에 절망하고 있다. 부동산가격 상승과 하락은 주기적으로 반복되기에 언젠가는 가격이 가라앉을 것이라며 정신승리로 버티기도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가 무주택자인 2030세대들이 코인에라도 희망을 걸지 않고서는 박탈감을 다스리기 쉽지 않다. '빚투', '영끌', '묻지마 코인 투자'를 보면서 청년들의 사행심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한 나라에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행심이 만연해지면 불평등의 문제를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 동력에도 심각한 훼손이 일어나기에, 별다른 노력 없이 수억의 자산가격 상승을 경험한 이들도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다. 급격한 자산양극화가 사행심의 만연, 근로의욕 상실, 성장동력 훼손 등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태도가 필요한 시절이건만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부족주의가 심화되고 있다.

지금은 없고 그때는 있는 것

부동산가격 폭등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1980년대 말 저금리·저유가·저달러라는 3저 호황이 만들어낸 부동산가격 폭등은 당시 노태우 정부가 대한민국에 혁명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급등하는 집값, 전셋값으로 인해 1990년 봄 이사 철에는 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 17명이 자살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적어도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인한 미안함이라도 표현하는 사람이 있었다. 집값이 폭등하던 1989년,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쓴 칼럼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디 산다고 말해야 할 때 이미 쭈뼛쭈뼛해지는 것도 나의 못 말릴 소심증이다. 지난 일년 사이에 곱절이나 값이 뛴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불로소득한 액수까지 계산하면 내가 속한 사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 1989년 5월 11일 <한겨레> 칼럼 '소심한 사람의 한마디' 중에서
 
박완서 선생님은 집이 있었지만 '지난 일년 사이에 곱절이나 값이 뛴' 집값에 환호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불로소득한 액수'를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꼈다. 적어도 그때는 염치가 있는 이들이 있었다는 방증이리라.

무주택자, 청년들은 치솟는 집값에 희망을 잃고 있다. 청년들이 코인 투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것 외에는 중산층이 될 희망이 없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성공 확률이 희박한 코인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들을 생각한다면 아파트 가격이 올라서 몇억 벌었다고 기뻐하기보다는 치솟는 집값에 절망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염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대안이 되고픈 정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특위 1차회의에서 머리를 맞댄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없는 사람의 불평불만을 대변하고, 인간다운 생활로 기어오를 수 있는 현실적인 계단을 제시해 줄 새로운 세력의 대두가 불가피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당장 그런 세력이 제도권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는 없다 해도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생겨나고 자라나는 걸 도와주는 길만이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 1989년 5월 11일 박완서 <한겨레> 칼럼 '소심한 사람의 한마디' 중에서
 
30년 전 박완서 작가의 칼럼이 마치 최근 쓴 글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강남 3구 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늘 보유세 완화를 외치는 야당은 그렇다 쳐도,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고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마저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전전하고 불법 방 쪼개기 원룸에서 반듯이 몸이 뉘이는 수십만 청년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대출금액이 모자라 10억 아파트를 사지 못하는 이들과 집값이 4년 만에 집값이 수억 오르는 바람에 종부세 몇십만 원을 내는 것이 힘든 이들에 대해서만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리라.

기존 정당이건 새로운 정당이건 '없는 사람의 불평불만을 대변하고, 인간다운 생활로 기어오를 수 있는 현실적인 계단을 제시해 줄 새로운 세력'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아는 역지사지의 태도,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염치이다. 그때는 있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 염치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