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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금요일부터 경암동 철길 마을로 실전 나갑니다, 어르신들."

담당 직원이 말했다. 항상 미루어 왔던 일, 드디어 실전에 투입된다. 어떤 일이 생길까, 조금은 설레이기도 하고, 궁금했다.

지난주 금요일(23일)부터 경암동 철길 마을에 나가서 여행 오는 분들에게 엽서와 편지 봉투에 꽃그림을 그려 주고 있다. 아직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고 있지만 날이 따뜻해지면서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이나 아이들도 부모님 손을 잡고 간간히 찾아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항상 설렌다. 

경암동 철길 마을은 군산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추억 여행을 하기 위해 잊지 않고 찾아오는 곳이다. 철길은 1944년에 운행을 시작하였다. 그 주변에 북선제지가 있었고 그 후 고려제지 맨 나중에는 세대제지라는 이름으로 바뀐 종이 공장이 있었다. 철길은 제지 공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철길은 제지 공장과 군산역을 오고 가는 기차였다. 군산역에서 제지 공장으로 실려간 원목은 신문지가 되어 다시 군산역 화물칸에 실려 먼 곳으로 실려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대 방 한 칸 없던 서민들은 국유지인 철길 옆에 무허가 집들을 짓고 살기 시작했었다. 집은 바로 도로 옆이라서 철길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당 역할도 하고 이웃 간의 음식도 나누어 먹는 소통의 장소였다. 또, 아이들에겐 놀이터로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철길이다.

그들은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도 잘 알았다. 세월은 흘러 제지 공장이 사라지고 기차는 64년 만에 2008년에 멈추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일상을 살아냈다. 집집마다 저녁이면 오손도손 가족이 모여 살아가는 정을 나누던 마을이었다.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추억을 안고 떠나고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관광객을 맞는다. 관광객은 추억 속으로 들어가 여행을 한다.

나는 일 년 가까이 시니어 클럽에서 붓글씨와 그림을 연습을 해왔다. 이제는 현장에 나가서 실전을 해야 한다.

시니어 클럽이란 이런 거다. "2001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지역사회 시니어클럽 (CSC: Community Senior Club)' 사업으로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것으로 노인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돕기 위한 사업이다. 수시로 회원을 모집하며, 일정 교육을 이수하고 난 후 숲 생태보호 지도자, 거리 봉사대, 거리환경 지킴이 등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지난 1월, 춥고 코로나 확진자가 많았을 때만 쉬고 시니어 클럽을 계속 나갔다. 한 달에 10일, 아침나절 잠깐 나가서 붓글씨도 쓰고 그림 연습을 해 왔다. 일주일에 3번 정도,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무료하지 않아 좋다. 시니어 클럽에는 일하는 분야가 많다. 나는 83세의 어른과 붓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소속은 예술단이다. 나이 많아도 자기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의 활력이다.

일 년 가까이 실내에서 그림과 붓글씨 연습을 해왔다. 코로나가 멈추기를 기다렸지만 멈추지를 않는다. 이제는 철길 마을에 오시는 분들에게 예술단들이 봉사하려고 나가기 시작했다. 음악 하는 분들은 트럼펫과 여러 악기로 노래를 연주하고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나와 짝인 어른은 붓글씨로 가훈이나 좋은 글을 한문으로 써준다.
 
관광객에게 용돈 봉투에 그림을 그려 나누어 준다.엽서에도,
▲ 꽃그림 용돈 봉투 관광객에게 용돈 봉투에 그림을 그려 나누어 준다.엽서에도,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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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거나 어른들에게는 엽서에 작은 꽃그림을 그려주고, 용돈 편지 봉투에도 꽃그림을 그려 준다. 그림이라야 조그마한 꽃그림이라서 어려울 게 없다. 나이 든 노인이라고 집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무료할까 싶다. 이 나이에 나는 할 일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세상은 변하여 사는 게 편리해졌지만 살아가는 일상은 더 복잡하고 힘들어졌다. 나이 든 부모라도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을 한다. 나는 내 여력이 있는 한 되도록 자녀들에게 삶의 무게를 덜어 주고 싶다.

노인도 자기 의지대로 삶을 개척하고 사회에서 쓰임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전하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과거의 생활에서 탈피해서 지금이란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려고 한다. 옛날의 나를 버려야 지금의 나를 만난다.

지난 5월에 그림일기를 배워 도전했던 것이 시니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망설이지 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찾아 활기 있는 삶을 살다가 내 인생을 의연하게 마치기를 나는 희망한다. 찾아보면 세상 밖에 즐거운 일이 많다. 나이 들었다고 움츠리지 말자. 몸만 건강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신나게 살고 싶다. 인생은 유한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경암동 철길 마을, #시니어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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