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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모습
 22일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모습
ⓒ 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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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10년 가까이 일했다. 화려하고 깨끗한 공항과 비행기의 겉모습 아래 이들의 고된 노동은 감춰져 있었다. 드넓은 공항에 이들이 쉴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대기했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다 맞으며 일했다. 도착한 비행기가 다시 뜨기 위해 머무르는 시간은 고작 20분, 노동자들은 그 안에 그 큰 비행기의 청소를 다 마치기 위해 손가락이 다 휘는 걸 감수하며 일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쓰레기를 빨리 집어 담다 보니 손가락이 휘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재하청회사 아시아나케이오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영위기를 이유로 이들을 정리해고했다. 항공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는데,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보수적이라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통해 얼마든지 정리해고를 회피할 방법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각각 4월 30일, 5월 31일에 정년을 맞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 김정남 전 지부장, 기노진 회계감사를 만났다. 이들은 지난 13일부터 난생 처음으로 곡기를 끊었다.

"문재인 정부,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다" 

- 정년이 코앞인데 목숨 건 단식을 하고 있다.
김정남: "우리 정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정년 전 원직복직을 주장하는 이유는 부당해고를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직해도 얼마 며칠 일을 못 하지만, 후배들의 노동조건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는 재하청 업체다. 갑질과 횡포의 백화점이다. 최저임금 받아 가면서 일하는데 하루가 관리자들의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났다. '내 아들이 와도 이것보다 잘하겠다', '그렇게 일할 거면 집에 가라' 매일 이런 모욕을 견디며 일했다. 원·하청이 이윤 따먹기를 위해 사람을 줄였기 때문에 일이 힘든 것인데도 말이다."

기노진: "동료들을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이 생각하기엔 극단적인 선택인지 모르지만, 모든 걸 다 해 봤는데 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제 인생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선택했다."

- 정부와 노동부의 책임을 묻는 이유는?
김정남: "정부는 항공산업에 천문학적인 국민혈세를 투입했다. 아시아나가 기간산업안정기금 투입 대상 1호다. 기대했다. 고용안정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는 쓸모가 거의 없다. 하청노동자들은 아무런 방어막도 없이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를 당한다. 아시아나케이오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고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는데, 정부가 해고 금지를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

기노진: "이 정부만큼은 다르길 바랐지만, 과거 정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열심히 일했는데 코로나 터진 후 죄 없는 비정규직이 첫 번째 희생양이 되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억울하고 비통하다. 지노위, 중노위에서도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는데 노동부는 이 판정 이행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22일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모습
 22일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모습
ⓒ 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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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5월 11일 해고된 후 1년 가까이 싸웠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기노진: "거리에서 잠을 잔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2020년 여름엔 장마가 아주 길었고 비가 자주 왔는데 그 비를 다 맞으면서 길거리에서 잠을 잤다. 트럭에서 잠을 잤다. 자동차 소리, 술 취한 행인들의 욕설, 엠블런스 소리에 귀가 멍할 때가 많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단식 후에는 몸무게가 8kg 빠졌다. 그렇지만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복직하고 싶기 때문에 버틴다." 

김정남: "공권력의 폭력이 가장 힘들었다. 아시아나케이오를 소유하고 있는 금호문화재단의 이사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 박삼구다. 지금 계열사 편법 지원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어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본사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는데 세 번이나 철거당했다. 지난 13일 서울고용노동청장과의 면담이 있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들었고, 경찰에게 끌려 나왔다. 부당해고 판정이 났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는 것도 힘들었다."

-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판정의 의미는 무엇인가?
김정남: "경영위기라고 하는데 자본은 하나도 희생하지 않았다. 박삼구는 퇴직금만 64억, 상표권 사용료 120억을 챙겼다. 아시아나케이오는 돈이 없다고 하지만 수억 원의 수임료가 드는 김앤장 변호사 세 명을 선임했다. 부당해고 의미는 노조를 없애기 위한 표적 정리해고였다는 거다.

노조가 생기고 난 후 팀장들의 언어가 순화됐다. 수하물 같은 경우는 6시 출근인데 5시 40분까지 출근해 브리핑받는 일이 없어졌다. 휴게공간을 만들었다. 비행기 안 청소할 때 에어컨을 틀게 했고, 불을 켜게 했다. 맨손으로 독성화학물질을 사용했는데, 그걸 못하게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휴일을 빼먹으며 돈을 가로챘는데 체불임금으로 고발했다. 하나 바꾸려면 몇 개월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싸운 노동자들이 다 해고됐다."

- 21일 집회 때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하셨다.
기노진: "처음에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이 뭔지 몰랐다. 항공산업이 기간산업이고 공항이 국가기반시설이라고 하지만 소수의 원청 말고는 다 하청, 하청의 하청 구조다. 저야 정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이후에도 비정규직이 더 많이 양산될까 봐 걱정이다. 기성세대인 나로서도 큰 고민일 수밖에 없다. 제 자식 또한 비정규직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막으려면 노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당한 해고였는데 바로 잡아야 한다. 해고자를 탓하는 시선을 바꾸고 싶다."

김정남: "노동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부당해고 판정은 왜 내렸는가? 사측을 위해 시간만 끌어주고 있다. 코로나19 앞에서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럴 순 없다. 쓰러지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방치... 포기할 수 없다" 

4월 21일 동조단식을 함께 한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개신교 대책위' 전남병 목사는 이렇게 얘기했다.

"기독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종교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돌아올 때 나머지 양들도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부실하거나 섞이지 못하는 양 한 마리가 있으면 잡아먹으려 한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재하청 노동자들이다. 고용이 가장 취약한 2차 하청이다. 재난 상황에서 제일 먼저 잡아먹히는 대상이 되고 있다.

경영위기라면 경영자들이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경영자들은 고통분담도 하지 않는다. 자본가는 수십억의 배당금을 받아가면서 가장 취약한 고리에 있는 노동자들을 무급휴직으로 내몰고 정리해고한다는 것은 신앙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는 먹고 먹히는 구조에 대해 침묵하고 방치한다. 고용노동청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태그:##항공산업, ##아시아나케이오,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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