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건축학개론>을 통해 멜로 영화 돌풍을 일으켰던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전혀 새로운 장르의 영화로 관객을 찾아왔다. 15일 개봉한 영화 <서복>은 죽음을 목전에 둔 정보국 전 요원 민기헌(공유 분)이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온라인 화상으로 만난 이용주 감독은 "(개봉이) 너무 오랜만이라 긴장된다"며 "지난해 초에 코로나가 창궐할 때쯤부터 이미 <서복> 흥행에 대한 기대는 내려놨다.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흥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영화가 남았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전했다.

"시나리오 좋아야 한다는 강박 있었다"
 
 영화 <서복> 이용주 감독 인터뷰 이미지

영화 <서복> 이용주 감독 인터뷰 이미지 ⓒ CJ ENM

 
이용주 감독은 <건축학개론> 이후 차기작이 늦어진 데 대해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2016년 1월까지 3년에 걸쳐 초고를 완성했다는 이 감독은 "저도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건축학개론>이 흥행에 성공하고 나서 그 부담감이 컸었나 보다. 더 좋은 영화,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시나리오가 좋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극 중에서 서복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이자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실험체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용주 감독은 개인적인 경험을 계기로 이러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변에 돌아가신 분들이 좀 있었다. 가까운 가족도 있었고. <불신지옥> 찍을 때는 영화사아침의 정승혜 대표님이 돌아가셨다.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분들이고 어찌보면 제 삶의 한 축이었던 분도 계셨다. 무엇보다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다 목도했는데 그게 정말 힘들었다. 지켜보는 제가 그 정도였다면 본인은 오죽했을까.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마지막은 어떨까. 이런 고민이 어둡거나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복>을 쓰는 건 오히려 그게(죽음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꼭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서복은 성인의 모습이지만 성장속도가 빨라 실제로는 10세에 불과하다. "영원하다는 건 어떤 거예요?", "죽는다는 건 어떤 건데요?", "당신은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 극 중에서 서복이 어린 아이의 눈으로 민기헌에게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래서다. 서복의 이러한 질문들은 어른이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기도 하다. 이용주 감독은 직설적이지만 불편한 이 질문들이 영화에 꼭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너무 직설적이지 않냐, 너무 영화가 거기(철학적인 주제)에 매몰된 게 아니냐는 욕을 먹기도 하더라. 하지만 저는 (비판을) 각오하고 썼다. 저한테는 (그 질문이) 필요했다. 에둘러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직설적인 질문은 늘 불편하지. 기헌도 (극 중에서) 불편해 한다. 흔히 죽음을 이야기하면 '그런 얘기를 왜 해'라고들 말하지 않나. 죽음을 통해 결국 삶을 이야기하는 건데, 외면해선 안 되는 문제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다.

제게 (인생에서)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럴 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두려움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 결국은 그 안에 욕망이 숨어 있고 그 욕망을 충족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게 컸다. 물론 해답을 찾은 건 아니고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시나리오 쓰는 과정이 저한테 힐링이 됐다. 그래서 사실 BEP(손익분기점)를 넘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안 그러면 이기적인 기획이 됐을 수도 있지 않나. 저는 항상 항변하지. CJ에 시나리오 보여주고 계약한 거다. 제가 강요하지 않았다(웃음)."


영화에서 영생을 꿈꿨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용주 감독은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지옥이 아닐까. 사람이 태어나고 또 죽고, 그렇기 때문에 한정된 재화로 경쟁을 하지 않나. 돈 많은 사람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공평한 죽음이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체념하고 새로운 욕망에 자리를 내주고. 그게 저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장벽이 뚫려버리면 결국 인간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뉴스에 보면, 50년 뒤엔 인간 수명이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고 죽지 않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던데. 그래도 되나? 인간이 안 죽으면 인류가 멸망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게 통제가 될까? 인간성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것 같다. 바벨탑이지. 인간이 죽지 않으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서는 사회가 구성이 안 되겠구나. 끔찍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살인의 추억>으로 영화인생 시작"
 
 영화 <서복> 이용주 감독 인터뷰 이미지

영화 <서복> 이용주 감독 인터뷰 이미지 ⓒ CJ ENM

 
한편 건축학도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용주 감독은 20년 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연출부로 일하면서 영화계에 입성했다. 이 감독은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너무 힘들었던 때"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어 "'나는 뭐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서복의 마음과 같았다"고 덧붙였다.

"IMF 때였는데 주변 사람 다 잘려나가고. 환멸을 느꼈지. 건축 설계 사무소의 여러 직원들 중에 한 명이었고 도면 그리는 일을 했었는데 그때 꿈은 건축가로서 제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요원하게 느껴지더라. 서복의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뭐가 될 수 있지, 나는 뭐가 되고 싶은거지?' 건축을 계속했던 것도 내 표현을 하고 싶었던 건데, 막상 일을 해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그러다가 대학생 때 사진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좋아했었는데, 그 생각이 나더라. 고민하다가 단편 영화를 찍고 나서 <살인의 추억> 연출부에 들어갔다. 영화를 찍어보니까 영화를 해야겠다 싶더라. 시나리오 쓰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렇게 영화 인생이 시작된 거다. 그 이후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숱한 후회를 했지(웃음)."
 
극 중에서 서복은 끊임 없이 뭔가 되고 싶어 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용주 감독에게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낯 뜨거운 말이지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훗날 제가 스스로 묘비명을 쓸 수 있다면, 내가 찍은 영화들을 써 달라고 하고 싶다고.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찍는다. 그래서 영화에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 감독은 스스로 찍은 영화를 보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외의 고백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 찍을 때마다 항상 쑥스럽다. 창피하기도 하고. (관객이) 모르고 넘어갔으면 좋겠는 것도 있는데 그걸 지적 받으면 너무 아프고. 저는 사실 개봉하면 극장에서 제 영화를 안 본다. 못보겠다. 얼굴이 빨개진다. 항상 그랬다. <건축학개론>은 7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볼 수 있겠더라. <서복>도 7년 안에는 못 볼 것 같다. 저는 항상 저의 한계, 제 능력의 극단까지 가서 겨우 영화 한 편을 찍는 느낌이다."

<서복>은 한국영화 최초로 OTT 플랫폼(인터넷으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티빙과 극장 동시 개봉을 시도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앞서 영화 <사냥의 시간>, <승리호> 등 여러 작품들이 코로나 19로 인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OTT 넷플릭스로 직행하기도 했지만 극장 상영을 병행한 것은 <서복>이 처음이다.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1년 넘도록 이어지면서 극장 관객 수가 급감했고 많은 영화들은 OTT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용주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음악에 비유하며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저는 옛날 생각이 나더라. 1990년대에는 음악을 들으려면 CD를 사야 했다. 그때는 CD가 있으면 서로 빌려주고 리어카에서는 마음대로 녹음한 테이프를 팔고 그런 게 흔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저작권 개념이 없었지. 그런데 MP3가 등장하고 소리바다, 냅스터가 등장하면서 아무도 CD를 안 사니까 난리가 났다. 그때 냅스터(미국의 디지털 음원 공유사이트)가 폐쇄됐다. 소리바다도 폐쇄되고. 그런데 지금은 스트리밍 음원으로 다들 (저작권법을 준수하며) 듣지 않나.

당시에 영화는 파일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지. 이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영화도 그렇게 된 거다. CD를 사다가 MP3를 듣다가, 이제 음원사이트에서 듣는 것처럼 그 흐름을 영화가 조금 늦게 따라온 것뿐이다. 데이터 용량 때문에. 처음엔 MP3 음질이 CD 음질보다 나쁘다는 얘기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하는 사람 없다. 저는 영화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극장과 OTT 동시 개봉이 앞으로 계속 이렇게 될 거라기보다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과도기의 어느 한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서복>이 처음으로 한 거고.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런 게 참 궁금하다."
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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