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극본 한지훈 연출 윤상호)이 우여곡절 끝에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난 20일 최종회에는 주인공 평강(김소현)과 온달(나인우)이 역사에 기록된 비극을 넘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두 사람은 아단성 전투에서 활약하며 고구려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지만 매복해 있던 신라 병사들의 기습 공격에 온달이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여기까지는 역사 속 설화대로 비극적인 엔딩을 재현하는 듯했다.

하지만 결말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고구려는 훌륭한 성군이 된 영양왕(권화운)의 통치 하에 평화가 찾아오고, 평강은 과거 온달과 함께 살던 초막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기억을 잃고 살아가는 온달이 있었다. 온달은 앞서 스승 월광(조태관)에게서 배운 비기를 토대로 몸을 잠시 가사상태로 만들어 죽음의 위기에서 되살아났다. 온달은 처음에 평강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평강은 입을 맞추며 자신의 감정을 전하자 온달도 기억을 되찾는다. 평강과 온달이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는 장면으로 <달이 뜨는 강>은 막을 내렸다. 

<달이 뜨는 강>은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고구려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로맨스 퓨전사극으로 주목받았다. '바보와 결혼한 공주'라는 익숙한 설화속의 이야기를 비틀어 평강은 공주임에도 살수로서 살아가야 했으며, 온달은 고구려 장군의 후손이라는 설정을 부여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낸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달이 뜨는 강>은 오랜만에 등장한 고구려 소재의 사극이라는 역사적 화제성, 같은 방송사의 전작 <암행어사>에 이어 '퓨전사극'의 인기 열풍을 확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영 전부터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해외 190개국에 판권을 수출하는 것은 물론, 드라마계의 아카데미로 꼽히는 제49회 국제에미상에 출품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달이 뜨는 강>은 방영 내내 유난히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전체 20회분 중 약 1/3인 6회분이 방영될 무렵 주인공 온달 역으로 출연 중이던 지수의 학창시절 '학교 폭력 의혹'이 등장하며 위기에 처했다. 지수는 사실을 인정하고 드라마에서 중도 하차했다. 

일각에서는 한때 방영 중단-폐지설까지 돌았으나 <달이 뜨는 강> 제작진은 온달 역에 또다른 라이징스타인 나인우를 긴급 수혈했고 촉박한 시간 속에서 재촬영을 진행하며 끝내 방송 일정을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이미 방영된 6회분까지도 재촬영을 완료해내며 최악의 상황을 오히려 위기 극복의 모범사례로 전화위복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는 험난한 스케쥴과 체력적-금전적 부담을 감수하며 드라마를 위하여 기꺼이 헌신한 수많은 배우-스태프들의 희생과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쩌면 사전제작된 작품이 아닌 지극히 한국적인 드라마 제작환경이었기에 가능했던 대처였다.

방영 중반에는 중국 간체자 논란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14회에서 고건(이지훈)이 해모용(최유화)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내용이 한자 간체로 표기돼 있었다. 간체자는 중국에서 복잡한 한자 점획을 간단하게 변형시켜 만든 문자로 194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간체자에 등장하는 것은 당연히 시대 고증에도 맞지 않는 데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문화왜곡 현상까지 거론되며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작사 빅토리콘텐츠 측은 결국 고증상의 실수를 인정하고 VOD, 재방송 등에서 해당 장면을 삭제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달이 뜨는 강>은 최종회(8.2%, 닐슨코리아 기준)을 비롯하여 방영 내내 8%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며 동시간대 선두로 드라마를 종영했다. 초반 최고 시청률 10%를 기록한 후 하락세를 겪기는 했지만 각종 논란 속에서도 배우들의 연기력과 제작진의 발빠른 대처로 상황을 빠르게 수습한 덕에 선방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남자 주인공들에게 워낙 이슈가 몰리다보니 상대적으로 약간 묻힌 감이 있지만, 실제로 <달이 뜨는 강>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바로 여주인공 김소현이었다. 평강이라는 인물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공주로 변모하는 모습, 그리고 온달과의 애틋한 로맨스에 이르기까지, 서사의 범위와 감정의 진폭이 클 수밖에 없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해를 품은 달> 등 여러 인기드라마에서 아역 출신으로 활약하며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김소현은 <달이뜨는 강>에서 액션과 멜로를 넘나드는 외유내강의 평강공주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 연기자로서 한 작품을 충분히 이끌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대타로 투입된 나인우는 배역을 준비할 틈이 부족했음에도 짧은 시간에 배역에 빠르게 녹아들며 자신만의 온달 역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소현과 나인우는 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각각 TV부문 최우수연기상과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연기력을 입증받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작품 자체로만 보자면 오히려 논란 때문에 더 주목받은 측면도 있다. <달이 뜨는 강>은 사실 드라마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기도 했다. 고구려 왕궁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암투나 주인공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 아군과 적의 경계를 넘나드는 라이벌,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액션 연출 등 주요 캐릭터나 설정은 이미 <주몽>, <해신>,<선덕여왕> 등 이미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의 익숙한 클리세를 반복하는 면이 강했다. 

간체자 논란 외에도 역사 고증 역시 아쉬운 부분들이 지적받으며 최근 도마에 오르고 있는 여러 퓨전사극들의 문제점을 되풀이했다는 평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드라마를 어떻게든 완주했다는 자체는 높이사야 하지만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이쩌면 <달이 뜨는 강>의 완주가 남긴 진정한 의미는, 작품 자체의 매력보다는 오히려 드라마 외적으로 더 많은 교훈을 남겼다는 데 있을 것이다. 주연배우의 인성과 사회적 책임감이 주는 무게, 최근 넘쳐나는 퓨전사극의 고증 문제와 역사인식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엄격해진 눈높이, 살인적인 촬영일정 속에서 고스란히 그 부담을 배우-스태프들에게 돌려 무한 희생을 요구하는 제작 시스템 등은 생각해볼 만한 여지를 남겼다. 단지 어려움 속에서 완주에 성공했다는 자화자찬만으로 끝날 게 아니라, 다시 드라마 현장에서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달이뜨는강 월화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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