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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국무회의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국무회의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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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국 이기주의가 전세계 코로나 백신 수급을 어렵게 만드는 모양새다. 세계 백신의 4분의 1 이상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그 밖으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생산량의 60% 이상을 수출하는 중국, 절반 가까이를 수출하는 유럽연합(EU)과 대조적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부스터 샷'(백신 효과 보강을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추가 접종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전 세계 확진자의 5분의 1 이상이 미국에 있어서 부득이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미국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5억 명 분량의 백신을 확보해둔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인 2월 5일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해 백신 원료의 수출을 통제했다. 이것이 '세계 백신 공장'인 인도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일·프랑스·영국·일본이나 중국·러시아 등과 달리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지도국가를 자처한다. 전 세계 주요 지역의 역내 현안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개입하고 있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서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같은 것만 빼놓고 개입자 내지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난지나해(남중국해) 문제에서 나타나는 중국의 패권적 행동에 대해선 마치 교사가 학생 다루듯 나무라기도 한다.

세계 지도국가의 역할을 스스로 행하고 있기 때문에, 백신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상당한 물량을 확보해놓고도 백신을 독과점하려는 모습이나, 3회 차 접종을 추진하는 모습은 '지도국가'를 자처하는 나라가 할 만한 행동은 아니라는 평가다.

백신 확보가 아니라 마스크 확보 경쟁이 치열했던 2020년 3월 31일, 상하이 공항에서 프랑스로 향하던 마스크 6000만 장 중에서 200만 장이 이륙 직전 미국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들은 프랑스가 계약한 금액의 3배나 되는 현찰을 지불하고 마스크를 가져갔다.

4월 3일에는 안드레아스 가이젤 베를린주 내무장관이 "베를린경찰국에서 사들인 FFP-2 마스크 20만 장이 방콕공항에서 몰수됐다"며 "이 사건은 미국 정부에 의해 시행된 마스크 수출 금지와 관련 있다고 믿는다"고 표명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미국 기업 3M이 독일 지방정부에 판매한 마스크가 미국 수중에 들어간 것.

1970년대 미국 그리고 석유

마스크와 백신 문제로 인해 이같은 양상을 보이는 미국이 1970년대에 직면했던 비슷한 사정이 있다. 당시의 석유 수급 사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기 미국은 백신 확보 경쟁만큼이나 치열한 석유 확보 경쟁에 나서야 했다. 오늘날에는 셰일오일 개발에 힘입어 입장이 달라졌지만, 당시의 미국은 석유 수입에 많이 의존했다. 그래서 여느 국가 못지않게 석유 확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 기업인 엑슨·모빌·걸프 등과 영국 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같은 국제석유자본(석유 메이저)이 중동 유가를 결정하던 관행에 종지부를 찍고자 1960년에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창설하고 1968년에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를 출범시킨 중동 산유국들은 1973년 제1차 오일쇼크(석유파동) 및 1978년 제2차 오일쇼크를 일으켜 세계 경제에 충격타를 가했다.

제1차 쇼크는 중동전쟁 와중에 벌어졌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틈을 타서 아랍석유수출국기구가 생산 및 수출 제한 조치를 발동했고, 이것이 석유 파동으로 번지면서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에도 충격을 안겼다.

그해 11월 3일 치 <조선일보> 기사 '석유전쟁은 어디까지 4'는 "아랍권의 중동 산유국들이 전쟁의 혼란을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원유 공시가 인상 및 감산 조처를 단행하자, 주요 석유 소비국들의 원유확보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며 "걸프오일을 비롯한 메이저(국제석유회사)의 주요 간부진들이 전쟁의 포화가 멎기도 전에 중동행 짐을 꾸리고 있으며 유럽 제(諸)국들도 저마다 페르샤만 산유국에 대해 내밀한 미소(smile) 외교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산유국들은 자신들의 자원이 민족적 이익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며 석유 메이저들에 맞섰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자의적이고 일관성 없는 태도도 나타났다. 누구는 후대하고 누구는 박대하는 태도를 보인 것.

위 기사는 "중동 제국의 원유공급 감소 정책은 모든 국가와 석유회사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무차별정책이 아니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예외와 특혜가 주어지는 데 묘한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원유확보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산유국들에 매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압박을 가하는 방식을 병행했다. 산유국들의 농산물 무역을 곤란케 만들겠다는 위협도 가했다. "미국 정부는 중동 산유국들이 급작스런 원유 공급 조처를 취할 경우 중동에 대한 잉여농산물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위 기사는 전한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도 압박 대열에 직접 가세했다. 1974년 9월 23일 디토로이트 제9차 세계 에너지회의 때 그는 산유국들을 겨냥해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 거론했다. 9월 24일 치 <경향신문> '에너지회의·유엔총회서 석유가 인하 강력 촉구'에 따르면 그는 "에너지 문제는 절박한 '최후의 심판일'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거론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또 "산유국들이 만약 유가 인하를 거부한다면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터무니없는 유가는 세계적인 경제공황과 함께 세계질서와 안보 파탄의 위험을 몰고 올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과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우호적인 국제기구도 동원했다. 그해 10월 4일 치 <매일경제> '세계경제질서를 위협'은 포드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한 뒤 "저명한 국제경제 전문가들이나 국제경제기구 대표자들이 이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며 IMF(국제통화기금),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등은 공식 보고서를 통해 석유파동의 여파로 야기된 국제경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지도국가' 미국의 앞날
 
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접종 중인 화이자 백신
 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접종 중인 화이자 백신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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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국가적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또 다른 모습도 보여줬다. '세계 지도국가'답다고 할 만한 면모가 그것이다. 영국·프랑스의 자국 이기주의에 제동을 걸고 국제사회 공동의 노력으로 석유 확보에 나서자고 촉구했던 것이다.

1974년 2월 11일 국무성에서 석유소비국회의를 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날 발행된 <매일경제> 기사 '워싱턴서 석유소비국회담 개막'은 "미국은 이들에 대해 독자적인 노력을 지양하고 공동 노력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나, 이들이 미국의 이러한 호소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파란곡절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공정성의 가치도 내세웠다. 석유 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촉구했었다. 제2차 오일쇼크 때인 1979년에는 국가기관 보고서를 통해 '산유국들의 집단행동은 공정한 석유분배를 저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표출했다.

이런 보고서를 낸 곳이 중앙정보국(CIA)이었다. AP 및 합동통신 보도를 그대로 실은 1979년 5월 18일 치 <조선일보> '세계 석유쟁탈전 일 듯' 등은 <런던 오일 리포트>에 인용된 CIA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이 같은 석유생산 둔화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석유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공정한 석유 분배를 위한 국제협정은 효력을 상실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IA 보고서를 통해 '공정한 석유 분배'를 거론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석유 수입국들과 비슷한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형상으로나마 세계여론과 같은 편이 될 수 있었기에, 석유 확보와 관련된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가 미국의 지도적 위상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일쇼크보다 훨씬 심대한 코로나 쇼크, 백신 쇼크 상황은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만 부각시키고 지도적 위상은 깎아내리는 기능을 하고 있다. '백신을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부분은 미국의 강점이다. 백신 전파에 앞장서고자 할 때는 이 강점이 미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다'는 점이 이 강점을 무용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미국 지도국가의 위상이 깎이고 자국 이기주의가 두드러지고 있다.

백신 공급과 관련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은 '미국을 덜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 오일쇼크 이후에 미국의 위상보다 코로나19 이후에 미국의 위상이 훨씬 낮으리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태그:#코로나 19, #코로나 백신, #오일쇼크, #석유파동, #미국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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