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숨은 아이의 눈, 미얀마 소수민족 '처참한 현실'

계속되는 군부 폭격에 난민 줄이어... 우기 맞은 밀림에서 의식주 상황마저 최악

등록 21.04.19 20:02l수정 21.04.19 20:02l소중한(extremes88)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소수민족 거주지 공습이 계속돼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사진은 미얀마 남부 소수민족 카렌족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 ⓒ 페이스북 'Myanmar Today'

   
"마을 한 가운데에 포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곳을 적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미얀마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이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위 사진은 미얀마 남부 소수민족인 카렌족 아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이는 땅굴 밖으로 기어나와 총탄을 막기 위해 쌓아둔 흙포대 뒤에서 경계심 가득한 눈만 내놓고 있다. 쏟아지는 폭격에 근거지를 떠나 밀림을 떠돌고 있는 소수민족 난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증명하는 사진이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특히 소수민족을 상대로 잔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쿠데타 세력은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인이 사는 지역을 전투기를 동원해 공습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거주 시설은 물론 학교와 의료시설 등 마을 전체가 처참히 파괴되는 중이다.
 
이에 소수민족 사람들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포탄을 피해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고, 밀림에 숨거나 땅굴을 파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기까지 시작돼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군부는 왜 유독 소수민족에 잔혹할까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3월 27~30일 소수민족인 카렌족이 머물고 있는 카렌주를 공습했다. 카렌민족연합(KNU)는 4월 2일 성명을 통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한 공습으로 어린이와 학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학교, 주택, 마을이 파괴됐다"며 "또한 공습으로 마을을 탈출한 1만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 페이스북 'Karen Unity Hope'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3월 27~30일 소수민족인 카렌족이 머물고 있는 카렌주를 공습했다. 카렌민족연합(KNU)는 4월 2일 성명을 통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한 공습으로 어린이와 학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학교, 주택, 마을이 파괴됐다"며 "또한 공습으로 마을을 탈출한 1만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 페이스북 'Karen Unity Hope'

 
미얀마 주요 도시에서 벌어지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도 끔찍하지만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미얀마 국토 외곽 지역의 피해 사례는 이미 전쟁 수준에 이르렀다. 폭격에 대한 인명·재산 피해는 집계조차 어려운 상황이고 난민 숫자도 수 만 명 이상이다. 

쿠데타 세력은 왜 소수민족에 유독 잔혹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미얀마 인구의 70%는 버마족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역시 미얀마 주류인 버마족이고,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 Committee Represented Pyidaungsu Hluttaw)와 그들이 꾸린 국민통합정부(NUG, National Unity Government)처럼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세력 역시 버마족 중심이다. 군부 입장에선 소수민족 탄압을 결정하고, 이에 잔혹한 수단을 동원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 셈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소수민족 거주지 공습이 계속돼 처참한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미얀마 북부 소수민족 카친족의 모습. ⓒ 페이스북 'Myanmar Today'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소수민족 거주지 공습이 계속돼 처참한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미얀마 북부 소수민족 카친족의 모습. ⓒ 페이스북 'Myanmar Today'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은 NUG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갖고 있다. 바로 군사력이다. 물론 쿠데타 세력에 의해 턱없이 부족한 전력이지만, 소수민족은 길게는 70년 동안 분리독립 내지는 자치권을 요구하며 자체 군사조직을 갖게 됐다. 현재 미얀마엔 크고 작은 30여 개 소수민족 무장조직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성패는 '명분'을 쥐고 있는 버마족 중심의 NUG와 '군사력'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이 얼마나 잘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양측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NUG 결성 전 CRPH와 소수민족 측 모두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힘을 합치겠다는 메시지를 내왔고, 실제 NUG 내각에 버마족뿐만 아니라 소수민족 측 인사가 포함됐다. 버마족 청년들 중 스스로 소수민족 군대에 자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세력 입장에선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소수민족을 더욱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군부는 전투기까지 동원한 폭격을 통해 소수민족에 공포감을 심고 그들에게 '저항하면 전쟁이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고 있다.
 
"사람 죽는 걸 지켜보는 국제사회"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렌족의 무장조직 KNLA(Karen Nation Liberation Army)가 4월 10일 현지에서 직접 보내온 사진이다. ⓒ KNLA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의 소수민족 거주지 공습이 계속돼 처참한 피해가 발생했다. 사진은 미얀마 북부 소수민족 카친족의 모습. ⓒ 페이스북 'Myanmar Today'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란 것이다. NUG의 활동이 본격화되고 쿠데타 세력과 소수민족 사이의 전투가 본격화된다면 탄압의 강도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가장 처참한 상황에 놓인 이들은 살던 곳을 떠나 국경 인근을 헤매고 있는 소수민족 난민들이다. 이들은 텐트, 식량, 이불, 옷 등 기본 생활을 위한 의식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밀림을 헤매고 있는 처지다. 여러 단체를 통해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지만 이마저도 국경에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미얀마에 우기가 찾아오면서 난민들의 삶에 본격적인 위기가 닥쳤다. 동남아 우기의 밀림 생활은 우리로 치면 혹한을 산속에서 보내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고 한다.
 
대나무와 야자수를 이용해 가까스로 만든 거주지는 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는 중이고, 일부는 고육지책으로 땅굴을 파 머물 곳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 나무가 물에 젖어 불을 피우기도 어려워 추위를 피하거나 음식을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높은 습기와 큰 일교차는 앞으로 각종 질병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질병은 어린이나 노약자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더욱 치명적이다.
 
페이스북 그룹 '미얀마 투데이(Myanmar Today)'를 만들어 현지 상황을 전하고 있는 녜인 따진씨는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어 유엔(UN)의 군사적 개입 등이 어렵단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시민들이 몸을 숨기거나 정치적 망명을 하도록 통로를 만들어주는 건 인도적 차원의 문제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경지대에 수많은 난민들이 몰리고 있는데 그들을 구제하는 문제는 국제정치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다"며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왜 지켜보고만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4월 17일 다웨이(Dawei)시에서 비가 오는 와중에도 시위를 벌이고 있다. ⓒ M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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