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가 고양 오리온을 꺾고 4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전자랜드는 16일 홈구장인 삼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강 플레이오프(5전 3선승제) 4차전에서 오리온을 87대77로 제압하며 5전 3선승제의 시리즈를 3승1패로 마무리했다.

전자랜드는 전반까지 오리온에게 끌려갔으나 전현우(22점. 3점슛 6개), 김낙현(15점, 3점슛 5개)의 외곽포가 불을 뿜는 등 무려 3점슛 15개를 적중시킨 데 힘입어 후반에만 58점을 몰아 넣고 역전승을 거뒀다.

전자랜드는 이로써 구단 역사상 6번째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했던 2018-19시즌에 이어 2년 만이다. 이중 2003-4시즌의 유재학 감독(현 울산현대모비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5번의 4강행은 모두 유도훈 감독이 이루어낸 업적이다.

또한 전자랜드는 정규시즌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6강에서 4위팀 오리온을 '업셋'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2014-15시즌 6강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가 당시 6위로 3위 서울 SK(3-0)를 제압하고 4강에 진출한 데 이어 무려 6년 만에 또 한 번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전자랜드는 아직까지 정규시즌-챔피언결정전 우승 경험이 전무한 유일한 구단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구단 매각이 확정된 전자랜드는 '마지막 시즌'에 4강행에 성공하며 다시 한번 우승 도전을 향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변수된 외국인 교체카드

전자랜드와 오리온은 양팀의 희비를 가른 결정적인 변수는 외국인 선수 교체 카드였다. 전자랜드는 시즌 후반기 외국인 선수 2명을 동시에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헨리 심스와 에릭 탐슨의 활약에 큰 문제가 없었고 팀 성적도 플레이오프 진출이 충분히 가능한 위치에 있었지만, 전자랜드는 플레이오프까지 고려하여 결단을 내렸다.

그런데 정작 외인 교체 이후 전자랜드가 정규리그에서 거둔 성적은 고작 6승 9패(이전 21승 18패), 국내 선수와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간 조직력에서 엇박자를 거듭하며 잘못 바꾼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진가는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드러났다. 전자랜드의 승부수였던 조나단 모트리는 NBA 댈러스 매버릭스와 LA 클리퍼스에서 정규리그 33경기를 소화하며 숀 롱(울산 현대모비스)-제러드 설린저(안양KGC)등과 함께 손꼽히는 경력을 가진 외국인 선수다. 뒤늦게 합류한 정규리그에서는 경기체력 문제로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평균 22분 12초간 18.1점, 7.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출전시간 대비 뛰어난 득점력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모트리는 오리온과의 6강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5.0점, 14.3리바운드, 3.5어시스트로 활약했다. 골밑은 물론 외곽까지 가리지 않는 폭발적인 득점력에, 국내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려주는 이타적인 패스플레이까지 왜 전자랜드가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그를 선택해야 했는지를 실력으로 보여줬다.

모트리가 가세하며 덩달아 국내 선수들의 활약상도 살아났다. 주전 가드인 김낙현은 모트리와의 2대 2플레이가 위력을 발휘하며 본인도 주특기인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게 한층 수월해졌다. 6강플레이오프에 아예 결장한 정효근을 비롯하여 이대헌-정영삼 등 주축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100%의 전력을 가동하지 못했지만 전현우-민성주-박찬희 등 남은 국내 선수들이 빈 자리를 잘 메우며 특유의 끈끈한 팀컬러를 다시 한번 과시했다.

전자랜드는 21일부터 열리는 4강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전주 KCC와 만나게 됐다. 두 팀은 2017-18시즌 6강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KCC가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전창진 KCC 감독과 유도훈 감독은 용산고 선후배 사이기도 하며 전 감독이 부산 KT 사령탑 시절이던 2011-12시즌에는 역시 5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유도훈 감독에게 패배의 아픔을 아긴 추억이 있다.

한편 오리온은 2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는 용두사미에 가까운 모양새로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시즌 최하위에 그치며 9년간 함께했던 추일승 전 감독과 결별한 오리온은 강을준 감독과 FA 이대성을 영입하며 새판짜기에 나섰다. '코트의 성리학자'로 유명한 강을준 감독은 오랜 현장 공백기와 지도스타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오리온을 KBL 컵대회 초대 우승에 이어 정규리그 4위로 이끌었다.

하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주춤했다. 정규시즌 막바지 4강직행이 가능한 2위 경쟁을 펼치다가 4위까지 밀려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정규시즌 순위와 상대전적에서 모두 우위를 점했던 전자랜드에게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아쉬웠던 이승현의 부상 공백

외국인 선수 문제와 이승현의 부상 공백이 발목을 잡았다. 오리온은 이대성-이승현 등 국내 선수들의 활약상이 무색하게 시즌 내내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개막부터 함께했던 장신센터 제프 위디는 공수에서 모두 아쉬운 기량을 드러냈고, 대체선수로 영입한 데빈 윌리엄스는 골밑보다 외곽지향적인 플레이스타일에 벤치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팀플레이에 위디보다 더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오리온은 윌리엄스를 다시 교체할 기회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구단 내부적인 이유로 무산됐다. 하필 시즌 막바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골밑의 수호신 이승현이 발목부상을 당한 것도 치명타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리온은 이미 6강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홈코트 어드밴티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자랜드보다 열세로 전망됐고, 결과적으로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오리온은 시리즈 내내 전자랜드에게 외국인 선수 대결에서 밀린 데다 수비 로테이션에서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디드릭 로슨과 이대성이 분전했으나 팀 야투율은 전체적으로 기복이 심했다. 오리온은 전자랜드와 싸우기도 벅찬 상황에서 아군인 강을준 감독과 윌리엄스가 내내 경기장 안팎에서 입씨름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을준 감독의 최고 유행어인 '니갱망'(니가 경기를 망치고 있어)에 데빈의 이름을 빗댄 '데갱망'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다. 모트리가 팀을 하드캐리한 전자랜드의 선전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을준 감독은 창원 LG 사령탑 시절을 포함하며 KBL에서 4시즌간 소속팀을 모두 봄농구로 이끌며 플레이오프 진출확률 100%라는 업적을 세웠다. 하지만 단기전에만 가면 작아지는 징크스 역시 되풀이했다. 6강PO 시리즈 전적 4전 전패에, 경기당 승률은 2승 12패에 불과하다.

벼랑 끝에 몰린 4차전에서는 부상으로 경기출전이 어렵다던 이승현마저 투입하는 초강수를 던졌지만 팀의 역전패로 빛이 바랬다. 이승현 본인의 의지가 강했다고 하지만, 선수보호가 중요하다던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점에서 강을준 감독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여러모로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강을준 감독과 오리온의 첫 시즌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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