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괴로운 영생을 사는 존재와 너무 살고 싶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대조적인 설정에 끌렸다."
영화 <도가니> < 82년생 김지영 > <밀정> 등 언제나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선택해왔던 공유가 이번에는 삶과 죽음을 논하는 영화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지난 14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공유를 만났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서복>은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선고 받은 전직 국정원 요원 민기헌(공유 분)이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을 옮기라는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에서 민기헌은 과거 벌어진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시시각각 다가오는 두통과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늘 신경질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공유는 이러한 민기헌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영화 속에서 묘사된 기헌의 모습과 처음 본인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구상했던 기헌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고 고백했다.
"준비 단계에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생각했던 이미지는 지금 영화 속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저는 좀 더 극단적으로 기헌을 바라봤다.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듬어진 기헌이가 됐다. 영화 속 기헌은 감독님이 '공유의 모습이 기헌에게 투영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탄생한 거다. 감독님은 민기헌이 인간적인 캐릭터로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줘야 한다고 보셨던 것 같다."
이어 그는 시나리오에는 있었지만 찍지 않은 민기헌의 장면을 살짝 귀띔하기도 했다. 공유는 "민기헌의 고통을 보여주는 시퀀스였는데, 죽음을 선고받은 기헌이 할 수 있는 수많은 행동들 중에 하나였을 것 같다. 몸에 좋다고 할 만한 모든 약을 먹어보고, 찾아다니고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장면이었다. 그런 몽타주가 있었다"며 "이 외에도 여러 가지로 (기헌의 고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최종 편집본에서는 포인트만 보여주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복제인간 서복을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이자, 인간에게 영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로 설정한 <서복>은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공유는 "시나리오를 처음 다 읽고 덮을 때 머리가 좀 아팠던 기억이 난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평소에도 사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털어놓은 그는 "막상 촬영을 할 때는 기헌의 감정에 집중하느라 고민할 새가 없었지만, 촬영이 끝나고 영화를 보면서 요즘 부쩍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영화에서 (관객에게) 물어보는 질문에 명확하게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아마 더 나이가 들고 눈을 감는 순간이 오더라도 인간은 삶과 죽음의 문제나 영생의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다. 조금이라도 뭔가 깨우치는 바가 있다면 그것도 복이고. 그런 잡생각들을 하고 있다 요즘."
한편 공유는 올해 하반기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 촬영을 마친 상태다. 수명 연장에의 꿈을 이야기 하는 <서복>에 이어, <고요의 바다> 역시 SF 장르로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우리에게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SF 장르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라면서도 "요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콘텐츠를 부쩍 많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는 넷플릭스만 있었지만 요즘은 워낙 여러 루트로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저같은 사람에겐 행복한 시기다. 회사마다 독점으로 계약된 작품들도 다 다르니까, 저는 모든 서비스에 다 가입돼 있다. 최근 근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를 재밌게 봤다. 또 예전에 좋아했던 <블랙미러>라는 드라마도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폐해, 근미래에 벌어질 인류의 위기 등 우리가 상상해볼 법한 것들을 구현한 작품이었다.
제가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더라. 일어날 법한 일들을 소재로 다루면서, 폐해도 보여주고 풍자하기도 하고 블랙코미디도 있고. 보면서 걱정이 되는거지. <블랙미러> 중에 SNS가 사람들이 미치는 폐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저는 그걸 보고 실제로 걱정을 한다. 그렇다보니 시나리오를 볼 때도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더 눈이 가는 것 같다. 제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경계심을 갖고 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올해로 데뷔 20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공유는 "이제 숫자에 대한 큰 감흥은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해를 거듭할수록 '내가 얼마나 오래 됐구나'를 생각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저한테 크게 다가오는 느낌은 없다"며 "무탈하게 같은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전에는 스스로에게 많이 인색했는데 그게 좋을 게 없더라. 요즘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지나간 건 돌아오지 않는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복>에 이어 영화 <원더랜드>,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오징어 게임>까지 이미 부지런히 촬영을 마쳐 둔 그는 앞으로도 "지금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들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나이 드는 것을 어떻게 거스르겠나.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또 모르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청춘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이가 더 들어도 괜찮은 것 같다. 여전히 격한 운동을 좋아하고 농구도 좋아한다. 다만 요즘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건 약간 관절이 옛날처럼 미덥지 못하다는 느낌은 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