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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원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수원화성을 한 바퀴 돌 차례이다. 약 5.7km의 성곽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가벼운 운동화와 편한 옷을 갖춰 입고 출발지인 팔달문, 보통 남문으로 불리는 곳으로 향했다.

걷기만 해도 화성의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보기 때문에 솔직히 수원 시민이 부럽기만 하다. 흔히들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들인 피렌체나 로마, 세비야, 드레스덴 등은 걸어서 1시간 이내에 모든 명소가 몰려 있어 도시의 밀도를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도시의 명소들은 외곽지역에 떨어져 있어 자차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 도시의 이미지가 딱히 각인되질 않는다. 하지만 수원은 대부분 명소가 화성 성곽 주위에 몰려있어 인프라만 잘 갖춰지면 세계 유수의 역사 도시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수원 화성의 성벽길은 산과 평지, 강을 따라 나있다. 그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구간은 팔달산 구간이라 할 수 있는데 비록 힘들지만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팔달문에서 팔달산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수원 화성의 성벽길은 산과 평지, 강을 따라 나있다. 그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구간은 팔달산 구간이라 할 수 있는데 비록 힘들지만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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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다 보니 어느새 팔달문 오른편에 성곽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더불어 그 성곽길은 바로 팔달산으로 이어지는데 성벽을 따라 올라가는 경사길이 상당히 급격해 보였다. 화성 성벽길에서 제일 난도가 높은 팔달산 구간이다.

비록 128미터의 낮은 산이라서 등산을 취미로 다니는 사람은 쉽게 오를 만하다. 하지만 등산을 1년에 한두 번 아니 계단조차도 싫어하는 사람은 고난의 장벽이 아닐 수 없다. 굳이 산을 오르지 않겠다면 팔달산 구간을 과감하게 제외해도 상관없지만 자연과 어우러지는 수원 화성의 전경을 보려면 반드시 오르길 추천한다.
 
팔달산의 허리부근에는 팔달산로가 뜷려있다. 특히 봄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화려하게 피어있어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팔달산 중턱을 따라 뜷려있는 팔달산로의 풍경 팔달산의 허리부근에는 팔달산로가 뜷려있다. 특히 봄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화려하게 피어있어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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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성곽이 산의 능선을 타고 지나가는 팔달산은 수원의 주산(主山)으로 옛날에는 탑산으로 불렀다. 산의 지금의 명칭으로 바뀐 것은 고려말의 학자인 이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은퇴한 이고가 속세를 떠나 이 산자락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공양왕이 사람을 보내 근황을 묻자 "집 뒤에 있는 탑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산정에 오르면 사통팔달하여 마음과 눈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어 즐겁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왕조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뒤에 태조가 이고에게 출사를 권하자 이고는 이를 거절했다. 태조는 이고가 은거하는 산의 모습이 궁금해 화공을 시켜 탑산을 그려오게 하였는데 태조가 그림을 보고 "과연 사통팔달한 산이다"라고 한 데서 이 산이 팔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팔달산 초입에 나왔던 남치를 거쳐 산의 허리쯤 올라오면 갑자기 산의 중턱을 가로지르는 널찍한 길이 나타난다. 팔달산로라 불리는 도로인데, 꽃이 피는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벚꽃과 개나리들이 어우러져 봄의 정취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성곽으로 오르는 산길을 진달래와 개나리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능선길이 나타나면서 좀 더 편하게 성곽길을 즐길 수 있다.

능선길은 폭이 넓고 걷기 좋은 흙길이 쭉 나타난다. 성벽과 나란히 걸으면서 그 당시 병사들과 장수들이 되는 느낌으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가는 길 중간에는 수원시에서 설치한 효원의 종이라는 종각이 나오고 이윽고 팔달산의 정상 지점인 서장대에 도착한다.
 
팔달산 정상 수원화성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서장대는 방화로 인한 화제로 인해 수모를 겪었다. 주위가 확 트여 멋진 전망대의 역활도 하고 있다.
▲ 수원 화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서장대 팔달산 정상 수원화성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서장대는 방화로 인한 화제로 인해 수모를 겪었다. 주위가 확 트여 멋진 전망대의 역활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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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는 군사 지휘소로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 지휘를 하는 역할을 수행하던 곳이다. 대표적으로 남한산성에는 수어장대가 남아있고, 수원화성에는 동장대와 여기 서장대가 있다. 팔달산의 가장 높은 위치에서 성곽 전체를 굽이 보고 있다.

당당한 위엄을 풍기는 2층 누각의 서장대는 유난히 수난을 많이 겪었다. 20대 청년이 술을 마시고 서장대 안에서 자다가 술김에 추워서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서 불을 질러 태워먹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바람에 정조가 친히 쓴 글씨였던 서장대 현판까지 전부 다 불타버렸다.

항상 문화재를 바라보고 있자면 과연 보존이 우선인가 많은 사람이 찾게끔 활용을 폭넓게 가져가야 할까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문화재의 활용 폭을 넓어 찾는 시민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최고의 시나리오겠지만 그러려면 문화재를 아끼는 시민의식이 더욱 높아져야만 한다.

한편으로 건물은 사람들의 온기가 있어야 제 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 서울의 고궁들도 대부분 내부 입장이 불가하고 겉에서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기 때문에 그 점이 무척 아쉬웠다. 최근에 경복궁 집옥재의 도서관 활용과 경희루 내부 입장, 창덕궁 궐내각사의 전시관 활용 등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문화재를 아끼는 시민의식이 좀 더 높아졌음 하는 바람이다.

서장대에서 팔달산을 조금씩 내려간다. 산을 따라 끊임없이 성곽길이 이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미처 글에서 전부 다루지는 못하지만 화성 성곽길 곳곳에 있는 포루와 암문 그리고 돈대 등 각종 군사시설을 살펴보는 것도 성곽길 순례의 또 다른 재미다. 다양한 형태의 성곽 시설물을 한꺼번에 종합 선물세트로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수원화성뿐이다. 
 
수원 화성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화서문과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인 공심돈의 조화가 무척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화성에는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 많다.
▲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풍경 수원 화성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화서문과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인 공심돈의 조화가 무척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화성에는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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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구간을 내려오면 평탄한 구간이 내내 이어지는데 그 초입에 화성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화서문이 보인다. 화서문을 둘러싸고 있는 반달형의 옹성과 우뚝 솟은 서북공심돈(공심돈 :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의 조화가 화성 전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무척 아름답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한국전쟁 때 성벽 일부가 훼손된 걸 빼면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장안문, 팔달문보다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간결하고도 섬세한 구조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제 성벽을 따라 직선으로 쭈욱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곧게 뻗은 성벽은 거리의 운치를 더해주고 다른 도시와 차별성을 부여해준다. 성벽을 마주하고 있는 거리엔 어느새 루프탑을 갖춘 카페들이 점점 들어서고 있다. 조만간 화서문에서 장안문으로 이어지는 거리가 핫플레이스가 될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크기가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고 웅장하다. 한때 성벽이 끊겨 외로운 섬같은 처지였지만 복원공사로 인해 다시 성벽이 이어져 있다.
▲ 수원 화성의 정문이자 북문인 장안문 수원 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은 크기가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고 웅장하다. 한때 성벽이 끊겨 외로운 섬같은 처지였지만 복원공사로 인해 다시 성벽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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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북문이자 수원화성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장안문에 도착했다. 보통은 남문이 정문일 테지만 왕이 북쪽에 계시기 때문에 정문으로 정해진 것이다. 서울의 숭례문(남대문)보다 규모가 큰 대문답게 정말 웅장한 규모다.

게다가 옹성을 갖춘 구조이기에 성벽의 두께가 더욱 두꺼워 보였다. 비록 도시 규모가 커지면서 성 한쪽이 끊어졌지만 육교 형식으로 성벽을 불안전하게나마 계속 살리게 되었다. 산도 넘고 성벽을 가로지르며 화성의 절반쯤 온 것 같은데 배꼽시계가 갑자기 울리며 나의 몸에 신호를 보낸다.

마침 북문에는 간단히 허깃 거리를 해결할만한 유명한 분식집이 있다. 야구장에도 인기리에 입점한 보영만두의 본점이 바로 장안문 맞은편에 있다. 쫄면과 군만두로 유명한 집인데 가격 대비 맛이 깔끔하고 괜찮아 화성답사 때마다 한 번씩 들르는 집이다.

분식집이라 만두 맛은 크게 기대를 안 하는데 바삭바삭하게 튀긴 군만두와 상큼한 쫄면의 조화가 정말 일품이다. 맞은편에는 맛집의 옆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보용만두가 있다. 이름도 비슷해서 카피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여기도 맛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다음에 화성을 한 바퀴 돌면서 여기도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일주일 후 작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ugzm87와 블로그 https://wonmin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강연, 취재, 출판 등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ugzm@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글을 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시면 탁피디의 여행수다 또는 캡틴플레닛과 세계여행 팟캐스트에서도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경기도, #경기도 여행, #수원, #수원여행,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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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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