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벚꽃 관측 이래 이렇게 빨리 꽃이 핀 건 100년 만이라고 합니다. 언제 피었는지조차 모르는 틈에 만개한 벚꽃들이 봄을 알려온 것입니다. 만개한 꽃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꼭 이맘때지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월. 그렇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7주기 입니다. 우리는 그날 이후 봄이 오면 다시 세월호를 길어 올립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일찍 찾아온 봄, 영화를 통해 조금 서둘러 그날을 떠올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그날, 나는 바다에 있었다. 군산 하제마을. 행사는 그곳에서 시작됐다. 행사를 촬영하러 간 길이었다. 군산 하제마을은 미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전투기 소음 때문에 사람들은 이미 그 마을을 떠난 지 오래였다. 한 번씩 들리는 엄청난 전투기 소음에 나는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둘러봐도 내 눈앞에는 망망대해 파란 바다와 하늘뿐이었다.
 
굉음을 견딜 수가 없어, 나는 차 안으로 들어왔다. 차 안에서는 굉음이 그나마 덜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속보가 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단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속보로 떴을 정도니 '구조선이 떴겠지' 구조될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함께 촬영 갔던 감독에게 그 뉴스를 보여줬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어서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듣고 우리는 마음을 놓았다. 어쨌거나 배가 침몰했다니, 무서운 일이었다. 구조된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면 너무 추울까봐 걱정됐다. 4월이었지만 날씨는 아직 매서웠고, 예상컨대 바닷물은 얼음장이었을 것이다. 전투기 굉음은 계속 귀를 울려댔고 내 마음은 이상하게 계속 울렁거리고 불안했다.
 
그래서인지 4월 16일이 되면 나는 이상하게 전투기 굉음이 내 마음 폭을 찢어놓고 가는 듯한 환청에 시달린다. 뉴스에 너무나 많이 나왔던, 바다에 배가 무기력하게 반쯤 잠겨 있는 모습보다도 항상 같이 들리는 그 헬리콥터 프로펠러의 둥둥둥 소리가 더 무서웠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큰 딸은 수학여행을 1주일 앞두고 있었다.
 
그 숱하고 숱한, 새털같이 많은 날들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아침 풍경을 이렇듯 오롯이 기억하는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그냥 잊을 수 없는 날. 잊히지 않는 날.
 
유가족·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이미지.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당신의 사월>은 유가족이 나오지 않는 세월호 다큐멘터리다. 4월 16일 그 날을 기억하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유가족이나 피해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그들의 삶 속에 알게 모르게 많이 스며들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4월 16일로부터 한 발자국도 떠나오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한때는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가끔 잊고 살기도 했던 그들은 어느새 나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맞아, 나도 그랬어' '나도 저랬는데'라며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아무도 세월호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카페 사장, 인권활동가, 대학을 졸업한 기록가, 중학교 영어선생님, 진도의 한 어부.  다큐멘터리는 이 다섯 명이 풀어놓는 '나의 2014년 4월 16일과 그 후'에 대한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그들은 세월호에서 희생자 학생의 시신을 건져 올린 어부였으며, 매일 인천항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세월호 희생자 또래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이었으며, 밤샘 시위를 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따뜻한 물과 라면을 제공한 커피집 사장이었으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고3이어서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대학생이 된 후, 그들의 기록 작업에 함께 한 기록가였으며,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 곁에 같이 있으려 했던 인권활동가였다. 그들의 삶의 궤적이 세월호와 아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그들의 생활과 삶의 가치에도 세월호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한바탕 국민적인 애도가 지나간 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진상조사,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한 모욕적인 막말, 수모 등을 바라보며 느꼈던 좌절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함께 지지해주고 공감을 표하던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싸늘하고 메마른 눈빛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을 바라보며 모진 말을 뱉어내는 경우도 있단다.
 
 "세월호, 이제 다 해결된 거 아냐?"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말 한마디가 세월호 유가족을 다시 차가운 바닷바람 속으로 내몰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고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버텨야' 한다. 혼자 기억하고 혼자 버티려면 힘드니까 서로 연대하고 서로 북돋우며 기억해야 한다.
 
벽에 걸린 <당신의 사월> 포스터를 본 지인이 말했다. "사람들이 '또 세월호네' 그러면 어떡하지?" 주현숙 감독이 말했다. "또 세월호인데, 또 다른 세월호지." - <시사인> 2021.4.6.
 
그렇다. 10명이 있으면 각자에게 10개의 세월호가 있는 거다. 극장을 나서는데 나를 포함해 총 4명이 이 영화를 봤다. 영화 상영 내내 훌쩍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명이 4개의 세월호와 만난 것이다.
 
"해마다 4월 16일이 오는 걸 어떻게 해요"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이미지.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 이미지. ⓒ (주)시네마달

 
다큐멘터리 속 커피집 사장 박철우씨가 "4월 16일이 해마다 오잖아요. 오는데 어떡해요"라고 했듯, 해마다 오는 4월 16일, 그것을 어찌 막을 것인가. '또 세월호네, 또 세월호 얘기야?' 하지 말자.
 
해마다 오는 4월 16일. 추모식에 참여하거나 추모행사에 참여하는 게 쑥스럽다면 그냥 잠깐 그들을 한 번씩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잊지 않고 있다고.

그리고 4월 16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리거나 무덤덤해진 사람들, 혹은 부채감에 아직도 슬픈 사람들, 그냥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 모두 2014년 4월 16일을 같이 겪은 사람들이란 사실을 떠올리자. 이제는 그런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기억함으로써 서로 치유하고 회복해 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7년이면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을까.
세월호 당신의 사월 리멤버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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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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