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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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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의 어느 일요일 새벽, 어린 아들과 나는 제주도로 출장을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있었다. 공인회계사인 남편은 회계감사 시즌이 되면 으레 출장과 야근의 연속이었기에 특별할 거 없는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남편은 아버님의 생신선물로 전복을 구입하면서 친정에도 함께 보낸다며 마지막 통화를 하였다. 다음날 아침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도 한참 연락이 없어 궁금하던 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남편의 사무실 직원의 전화였는데 남편이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고 멍해졌지만 직접 남편을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기에 제주도로 곧장 날아갔다. 그 후의 기억은 꿈 속 같이 아득하기만 하다. 병원 영안실에서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하고 부검을 한 뒤 장례식이 진행됐다.

어린 아들과 젊은 부인을 두고 떠난 안타까운 장례식이었기에 많은 동료 회계사분들과 친구들이 애써 찾아와 줬다. 그 중에 노무사분도 계셨는데 산재를 신청해야 한다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였다.

나는 그제야 '산재'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남편의 회사 측에서 모든 장례 절차를 함께하며 산재 준비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주위에서 출장 중 과로로 돌아가셨기에 당연히 산재가 될 거라고 얘기를 해서 안심했지만, 막상 준비를 해보니 어려움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모든 산재 인과과계의 입증은 유가족이 해야 했으며 노무사 선임을 하였어도 내가 모든 일을 직접 나서서 챙겨야 일이 진행이 되었다. 우선 회사에 노트북의 업무 로그 기록과 업무 스케줄, 출퇴근 기록을 요청하고 동료 회계사들의 진술도 받으러 다녀야 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듯이 불안하고 힘든 나날이었다. 이때 먼저 산재 승인이 된 유가족들의 응원과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산재승인이 되면 나처럼 이런 힘든 산재 준비과정을 겪지 않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산재준비과정 매뉴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둡고 긴 터널 같은 9개월이 지나고 비로소 '산재승인'이라는 결과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 동안 산재승인을 위해서 애도할 겨를도 없이 모든 걸 집중하며 지나왔는데 막상 결론에 도달 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산재승인 후 제일 먼저 아들에게 그 동안 못 사주었던 장난감을 사주며 아빠가 하늘에서 보내 온 선물이라 하였다.

산재승인 후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과로사' 관련 기사검색을 하며 과로사 현황과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12살이 된 아들에게 아빠의 과로사 사망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아들이 아빠의 '과로사'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여 아빠를 명예롭게 생각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들이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성장하여 일터에서 안전을 중시하고 지키는 일을 해주었으면 하는 욕심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도움이 되지 못해 송구스럽다. 이 책이 출판됨으로써 산재를 준비하는 유가족들에게 어둠 속에 등불이 되어 희망과 길잡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모임의 이X아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태그:#그리고우리가남았다, #과로사, #과로자살,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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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죽음 유가족들이 산재법 공부, 심리 치료 등을 함께하며 교류하는 자조모임으로 2017년 결성했다. 고인을 애도하고 과로죽음으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며 과로죽음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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