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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원의 빗장이 드디어 풀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월 1일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최근 2년간 각 군 성범죄 판결문 158건을 전수분석했다. 국정감사 때마다 등장하는 군사법원 '솜방망이 처벌'의 실체와 판결문 속에 만연한 '군 중심주의'를 파헤쳤다. 8회 연속보도를 통해 군사법원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편집자말]
 군사법원 성범죄 판결 속 빈번한 주취감경.
 군사법원 성범죄 판결 속 빈번한 주취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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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한미연합 폭발물처리 실습 훈련 기간. 미군 여군 C는 일과를 마치고 훈련에 참가한 군인들과 삼겹살로 1차 회식을 하다가 호텔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한국군 8명, 미군 4명이 훈련에 참가했고, 방은 각각 국적별로 다른 층을 썼다.

새벽 2시, 누군가 반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 더듬기 시작했다. 1인 1실로 배정된 방. 들어올 동료는 없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회식 자리에서 마주쳤던 한국군 A가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비명을 지르자 A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방 밖으로 비틀비틀 걸어 나갔다.

주취감경 허용지대

"한미 동맹국 신뢰에 악영향을 끼친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 A는 실형을 피했다. 2019년 8월 고등군사법원 제1부(군판사 대령 신동욱 소령 방지혁 중령 최정윤)가 원심인 공중전투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형 선고를 파기하고 벌금 1천만 원으로 감형했기 때문이다.

"소주 1병 또는 맥주 2병" 정도. 항소심 판결문에는 '인정되는 사실'로 A의 주량 초과 여부와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이 들어 있었다. A에게 주거침입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없는 이유엔 "술에 취해 인지 능력이 떨어진 상태"였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의도로 (범죄장소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한 피고인 측의 심신 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서도, 양형 이유에서 "추행하려는 의도 하에 이뤄진 게 아니라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사실상 주취 상태를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였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의 주취 작량 감경. 2013년 이른바 조두순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할 때, 국회는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 장애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범한 때는 감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17년 '주취 감경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이 21만 명을 돌파했을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술 먹고 성 범죄를 저질렀다고 봐주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감시망 밖 군사법원에선 주취 감경이 가능했다. 위 사례뿐이 아니다. 

'대학 합격'이라는 이유를 살펴 감형 요소로 참작한 항소심 판결도 있었다. 재판부는 이 판결에서 원심 제6군단 보통군사법원이 내린 징역 6개월 형을 파기하고 벌금 1천만 원으로 감형했다. 피해자는 난생 처음 본 가해자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고, 그의 깁스한 손에 맞아 상해를 입은 상황. 

고등군사법원 1부(군판사 대령 신동욱 소령 방지혁 중령 최정윤)는 2019년 2월 판결에서 "최근 주취 상태에서 이뤄지는 범행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어 이를 엄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이어진 '유리한 정상'이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대학에 합격해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니 평소 주량보다 과도한 음주를 했다가 이 사건 범행에 이른 범행 경위에 참작할 부분이 있다"면서 더 나아가 "아직 젊은 청년으로 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회 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군사법원 성범죄 판결 중 주취감경 대목이 등장하는 판결문엔 반복적으로 이 문구가 등장했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됐고"(2019년 6월 20일 고등군사법원 2부 군판사 대령 김상환, 중령 이정민, 중령 김혜리), "술에 취해 이성적 판단을 못하고 범행한 것으로 보이고"(2019년 5월 24일 고등군사법원 특별부 대령 김상환, 중령 최정윤, 소령 방지혁) 등의 기술이다. 

피해자는 '엄벌', 부대원은 '탄원'... 2차 피해 증명하는 판결들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 재판이 재개됐던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2014년 9월 16일 오전 모습.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경기도 한 사령부의 보통군사법원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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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원 성범죄 판결에서 또 흔히 등장하는 '감형 요소'는 소속 부대원들의 '탄원서'다. 피해자가 엄벌에 처해달라거나 재판 종료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해도 피의자 동료들의 읍소는 대부분 유리한 정상으로 통했다.

2018년 3월 군 사단장이 같은 사단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피해자를 일과 시간 이후에 따로 불러 차량 안에서 강제추행한 사건의 경우, "다수 부대원들의 탄원서가 제출 된 점"이 유리한 정상으로 항소심까지 참작돼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앞서 재판부가 "피해자가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며 "법정에 이르기까지 원만히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적시한 부분이 무색한 대목이다. 2019년 10월 고등군사법원 1부의 판결이다.

군 밖에서 저지른 범죄도 마찬가지다. 초등학생 조카를 수차례 유사 간음한 또 다른 가해자는 1심 징역 8년에서 2018년 11월 고등군사법원 2부(군판사 대령 김상환 중령 김혜리 중령 이정민) 판결을 통해 징역 4년으로 감경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 회복을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도, "가족과 동료들이 피고인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고 있고 평소 성실하게 근무해온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봤다. 피해자의 합의나 탄원은 없었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저지른 성범죄의 경우, '군 복무 경력'이 유리한 정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노래방으로 불러 블루스를 추며 추행하고, 부대로 복귀하는 택시 안에서 손을 더듬었다. 고등군사법원 2부는 2019년 11월 초급 간부를 대상으로 강제추행을 저지른 상급자를 원심과 동일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하며 "군에서 20년 이상 복무한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언급했다. 피해자는 끝까지 엄한 처벌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군사법원 판결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군 인권 전문가들은 군사법원 자체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 판결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본질적으로는 군사법원이 군 관련 분야가 아닌 성범죄 판결을 다루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장은 "군 자체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 문제로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약한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고등군사법원의 경우, 그나마 여론을 인식하는 1심과 달리 국방부 외엔 신경 쓸 대상이 없어 오히려 죄가 감경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군사법원은 군 관련 외의 사건은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서 "군사법원 판결에서 피해자 권리를 위해 재판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해군 대위 출신이기도 한 방 팀장은 "(판결들을 보면) 술 탓을 하는데, 그래서인지 (일부 부대에선) 여군들 보고 회식에 참여하지 마라는 공지도 내려온다"면서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술이 문제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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