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위기' 결단 앞둔 미얀마 소수민족의 고민

[분석] 버마족 중심 CRPH와 '반군부' 연합 논의 막바지, 내전으로 큰 피해 예상되지만...

등록 21.04.15 07:37l수정 21.04.15 07:37l소중한(extremes88)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3월 27~30일 소수민족인 카렌족이 머물고 있는 카렌주를 공습했다. 카렌민족연합(KNU)는 4월 2일 성명을 통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한 공습으로 어린이와 학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학교, 주택, 마을이 파괴됐다"며 "또한 공습으로 마을을 탈출한 1만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 페이스북 'Karen Unity Hope'

  
미얀마는 잔혹한 봄을 관통하고 있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벌어진 뒤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 이슈는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결합 여부다. 미얀마 주류인 버마족과 차별의 대상이었던 소수민족이 언제, 어떻게 반군부 깃발 아래 연합할 것인지를 두고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부에서 보기엔 거악 척결이란 대의로 양측이 쉽게 뭉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특히 소수민족 입장에선 이번 결정이 곧 민족의 운명과도 연결되기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소수민족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지 사정상 버마족 중심의 외신 보도가 다수고, 한국에 전해지는 소식 역시 그 외신을 기반으로 한 기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미얀마의 지리 및 인구 구성과 현대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얀마는 크게 14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고, 다시 7개의 구(division)와 7개의 주(state)로 구분돼 있다. 미얀마 국토 가운데를 관통하는 7개 구(사가잉·만달레이·마궤·바고·양곤·이라와디·타닌타리)엔 주로 버마족이 살고 있다. 미얀마 전체 인구는 약 5500만 명인데 이 중 70%가 버마족이다.
 
이외 국경 지역의 7개 주(카친·샨·카야·카렌·몬·라카인·친)엔 주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다(물론 각 구와 각 주별로 인구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7개 주는 주 이름이 곧 민족의 이름과 같다. 주의 개수와 별도로 미얀마엔 약 130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렌족의 무장조직 KNLA(Karen Nation Liberation Army)가 4월 10일 현지에서 직접 보내온 사진이다. ⓒ KNLA

   
미얀마 소수민족의 현대사는 곧 버마족을 상대로 한 투쟁의 역사다. 각 민족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대체로 1948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소수민족 역시 미얀마로부터의 분리독립 내지는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이로 인해 30여 개 소수민족은 흔히 '반군'으로 불리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부족한 전력이다. 군부는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래 소수민족을 학살 수준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해왔다.
 
군부가 선택한 '2월 1일'
 
군부는 왜 의회 개원일인 2021년 2월 1일을 쿠데타 날짜로 잡았을까. 대통령 간선제를 택하고 있는 미얀마는 의회에서 대통령을 지명하고 이후 행정부를 구성한다. 군부는 행정부 만료와 의회 개원 사이인 2월 1일 새벽, 즉 '권력 공백의 시간'에 쿠데타를 감행했다.
 
참고로 앞선 총선(2020년 11월)에서 군부 측 정당인 USDP(Union Solidarity Development Party)는 상·하원 의석 476석 중 33석을 얻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반면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는 396석을 차지해 2015년 총선에 이어 대승을 거뒀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주로 마주하는 반군부 세력 CRPH(Committee Represented Pyidaungsu Hluttaw)는 버마족 중심의 NLD 당선인으로 구성돼 있다. 군부는 쿠데타와 동시에 NLD 당선인들을 연이어 체포했는데 이때 체포를 피한 이들이 모여 CRPH를 만들었다. 선거를 통해 선택받은 이들로 구성돼 있으므로 CRPH는 '정당한 권력'이란 명분을 갖고 있고, 외부로부터 '임시정부'란 호칭도 얻고 있다.
 
다만 군부와 대적할 실질적 힘이 없다는 게 CRPH가 처한 현실이다. 때문에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소수민족이 CRPH에겐 절실한 상황이다. 소수민족 입장에서도 무자비한 군부는 타도해야 할 대상이므로 서로 명분은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CRPH가 오랜 기간 소수민족을 핍박해 온 버마족 중심의 조직이기 때문에 양측 사이에 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이 4월 5일 양곤 알론(Ahlone)에서 시위 중 사망한 이들을 기리며 행진하고 있다. ⓒ MPA

 
아무튼 최근 분위기는 순풍을 탄 듯하다. CRPH와 일부 소수민족이 모인 PPST(Peace Processing Steering Team)는 큰 틀에서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점에 뜻을 모았다. CRPH 대변인 우 예 몬(U Yee Mon)은 현지 언론 <이라와디(The Irrawaddy)>와의 4월 5일 인터뷰에서 "새로 만들어질 정부 NUG(National Unity Government)는 NLD와 비NLD 인원, 특히 소수민족 지도자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소수민족 단체인 카렌민족연합(KNU, Karen National Union)의 외무장관 소 타 니(Saw Taw Nee)도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는 버마족을 대표하는 조직인 CRPH와 협력할 것"이라며 "그들과 협력해 싸울 것이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관련기사 : [단독] 미얀마 소수민족의 결단 "버마족과 함께 군부에 맞설 것" http://omn.kr/1sqe3).
  
버마족,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도 소수민족을 향한 인식 변화가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서울에서 만난 녜인 따진(Nyein Thazin)씨는 "미얀마가 한창 폐쇄적이던 1991년에 태어났고 군부의 선전에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라며 "군부는 소수민족을 '반란군'이라고 폄하하며 그들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규정했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이 사태 전까지 소수민족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라며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저와 비슷한 세대는 오랜 기간 이어져온 소수민족 차별정책에 대한 공식적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단 생각을 갖게 됐다. 특히 수구 세력을 몰아내 새로운 연방군이 창설되면 그곳에서 소수민족과 함께 군복무를 하고 싶다는 젊은 남성도 많아졌다"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렌족의 무장조직 KNLA(Karen Nation Liberation Army)가 4월 10일 현지에서 직접 보내온 사진이다. ⓒ KNLA

 
'최악의 시나리오' 각오하나
 
그럼에도 현재까지 양측은 최종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 특히 소수민족 입장에선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직접 군부와 무력으로 맞부딪혀야 하므로 피해 규모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인적·물적 피해를 넘어 '제노사이드(genocide, 학살에 의한 절멸)' 수준의 탄압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소수민족 근거지에 자행되고 있는 군부의 잇단 공습은 그 추측이 마냥 추측이 아님을 증명한다. 시내 시위대가 총을 피해 몸을 숨겨야 했다면, 소수민족 사람들은 전투기 폭격에 불탄 주거지를 떠나 난민이 되고 있다. 현지에선 '군부가 버마족 100명을 죽였다면 소수민족은 1만 명을 죽이겠단 뜻'이란 말까지 나온다. 소수민족으로서 CRPH와의 연합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군부를 몰아내 내전이 종식된다면 그때의 상황을 구상하는 것도 소수민족에겐 중요한 문제다. 분리독립부터 자치권 획득까지 소수민족 별로 그 의견을 달리하지만, 어쨌든 소수민족으로선 내전 종식 후 버마족 및 미얀마 중앙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3월 27~30일 소수민족인 카렌족이 머물고 있는 카렌주를 공습했다. 카렌민족연합(KNU)는 4월 2일 성명을 통해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에 대한 공습으로 어린이와 학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학교, 주택, 마을이 파괴됐다"며 "또한 공습으로 마을을 탈출한 1만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 페이스북 'Karen Unity Hope'

 
군부는 쿠데타 직후에 이어 지난달 말에 다시 소수민족에 휴전을 제의했다. 이는 사실상 '디데이(D-day)'를 통보한 것과 다르지 않다. '남은 기간 동안 잘 선택하라'고 협박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크고 작은 소수민족 무장조직 30여 개 중 약 20개가 반군부 세력에 합류하지 않았다. 군부는 그 틈을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군부는 소수민족에 이권을 줘가며 그들을 분열시켜왔다. 또 자신들에 따르는 소수민족 무장조직을 국경수비대(BGF)에 편입시켜 같은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데 이용했다. 이번 내전에서도 국경수비대가 탄압의 전면에 나설 거란 전망이 나온다.
 
통상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낮기 마련인데, 현재 미얀마의 상황은 내전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는 분위기다. 슬프게도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미얀마인이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각오하는 듯하다.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총사령관. 이번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 내 최고 권력자가 됐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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