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한 장면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한 장면 ⓒ tvN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7회에서 심덕출(박인환 분)씨가 '알츠하이머'였음이 드러났다. 

덕출씨는 기승주가 데려간 발레단에서 잠시 공연을 선보이며 자신감을 되찾았지만, 그 덕분에 아내와의 약속에 늦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던 덕출씨는 그간 채록(송강 분)의 매니저를 자청하며 그의 모든 것을 기록하던 수첩을 떨어뜨리고 만다. 덕출과 함께 있던 채록은 "할아버지는~~"이라며 수첩을 집어 들었는데, 제일 앞 장에 심덕출씨의 사진과 연락처, 그리고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70세, 친구의 죽음 이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보고 싶다' 했던 노옹의 소원은 7회를 통해 국면을 달리한다. 그저 더 나이들기 전에 발레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아 자신에게 그리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나선 길이었던 것이다.

그간 왜 그렇게 덕출씨가 조급해 했는지, 비지땀을 흘리며 홀로 연습을 했는지 보다 명확해 진다. 나이들어서 시간이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알츠하이머'라 시간이 없는 건 다른 것이니까.

'엔드 게임' 

'엔드게임'은 <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의 저자 이현수씨의 말처럼 '어벤져스' 시리즈의 부제가 아니다. '첫 늙음'을 감지한 그 순간부터 시작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각자의 게임이다. 

"기억, 운동, 감각, 언어, 신체 등에서 예전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오류가 일어나기"(<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 중) 시작하면 우리는 엔드 게임에 들어선 것이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공간이 시간으로 재단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들어"선 이 게임의 시간에 그 누군들 억울하지 않으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공원 벤치에 앉은 덕출씨 눈 앞으로 주마등처럼 살아온 시간이 스쳐지나간다. 그의 마음은 발돋움을 하여 처음 발레 공연을 보고 혼자 거리에서 다리를 쭉쭉 뻗던 그 어린 시절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70세 덕출씨가 울먹인다.

"아버지, 어머니, 나 어떻게 해요."

'엔드게임'의 노년기는 불가항력일까? <나는 나답게 나이들기로 했다>는 이에 대해 태도를 말한다. "'못 먹어도 고'의 상황에 놓인 자신을 충분히 자각하고, 아쉬워하고 나면 오히려 용감해지고 단단해진다고 한다. 선택의 폭이 좋아지면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치열하게 밀도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치열하고, 밀도있게 

야심차게 발레를 시작하는 노년의 심덕출씨를 보며 막연하게 그 '꿈'의 앞길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말 그대로 '엔드게임'의 여정에서 심덕출씨의 꿈에 무슨 그리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거기다 조금씩 무언가를 잊는 모습을 보여주는 덕출씨의 일상을 통해 <나빌레라>가 결국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고 예감했다.

그런데 7회 마지막 수첩에 적힌 '나는 알츠하이머다'를 통해 <나빌레라>는 지금까지 치매를 다뤄왔던 다른 드라마와 다른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걸 알게 된 덕출씨는 공원에 앉아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자신에게 들이닥친 병마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어쩌면 암보다도 더 무서운 병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덕출씨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덕출씨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안타까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남은 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집중의 결과물이 발레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밀도있는 삶을 향한 여정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한 장면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한 장면 ⓒ tvN


70세 노인이 동네 아줌마가 '춤바람'이라 지칭하는 발레를 선택하는 게 어디 쉬웠을까. 당장 7회에서도 덕출씨는 '주책'이라는 말에 움츠러든다. 채록이는 연습만 해도 빛이 나는데, 덕출씨는 연습복을 입은 모습부터가 스스로 무안하다. 나이듦은 추레하고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빛나는 젊음과 다르게 무엇 하나 '폼'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덕출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운전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차를 손녀에게 선물한 덕출씨는 그럼에도 식전 댓바람부터 연습실로 향한다. 선생님 채록이가 없어도 온종일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한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쓰는 기자도 매일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운다. 그런데 1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뻣뻣하다. 연식이 유연성을 향한 훈련을 앞지른다. 한 달 된 젊은 처자들이 쭉쭉 몸을 뻗는다. 반면 난 구부러지지 않는 허리로 끙끙거리는 처지다. 그런 처지여서 그런가, 다리 한 번 들면서 부들거리는 덕출씨에게 공감하게 된다. 다리 하나, 팔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하지만 덕출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 꿈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아서이다. 

이모부님이 덕출씨와 같은 병마에 시달리신다.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최고의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던 분이다. 뭐든 배우고자 하면 스스로 독학을 해서 뚝딱 해치우시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속절없이 변해가신다. 제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한 일이 많아도 '나이듦'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그 속수무책의 시간에 덕출씨는 그냥 앉아서 자신의 병에 당하는 대신, 평생의 '로망'에 자신을 던진다. 드라마는 엔드 게임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어떤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가는 결국 각자에게 달렸다고 전한다. 

거기에 더해 나이듦의 미덕도 놓치지 않는다. 나이가 드는 건 모든 게 다 나빠진다는 것이다. 신체적 기능도, 정신적 기능도 약화된다. 하지만 딱 하나 좋아지는 게 있다고 한다. 바로 지혜다. 다리를 다쳐 다가올 콩쿠르에 나갈 수 없어 좌절하는 채록을 기승주도, 은 교수도 달래보지만 쉽지 않다. 그 때 덕출의 조언이 채록의 불안을 다독인다. 다음이 있다는 말, 그 평범한 말에 실린 덕출의 '지혜'가 채록에게 한 발 물러설 용기를 줬다. 

나이듦은 본의 아니게 KTX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는 상황과도 같은 것이다. 심지어 그 갈아탄 열차의 종착지가 아주 다르다. 하지만 그 여행길을 어떻게 가는가는 탄 사람에 달렸다고 <나빌레라>는 말한다.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과감하게 보낼 수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지난 1,2년 사이 열차를 갈아탄 듯하다. 그래서일까, 덕출씨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무모하게 용감해졌다. 나에게 찾아온 인연을 받아들였고, 그저 하고 싶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었다. 그래서일까, 발레를 향한 덕출씨의 눈빛에 공감 백배다. 그건 사랑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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