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투데이' 만든 MZ세대 부부 "한국 지지 큰 도움"

[인터뷰] 페이스북에 미얀마 소식 매일 업데이트 하는 녜인 따진·최진배씨

등록 21.04.13 07:37l수정 21.04.21 11:52l소중한(extremes88)

한국-미얀마 국제결혼 부부 최진배씨와 녜인 따진씨는 미얀마 민주화운동 상황을 한국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뉴스 그룹 '미얀마 투데이'(Myanmar Today)를 운영하고 있다. ⓒ 권우성

 
"많은 미얀마인이 한국을 사랑하기에, 우리에겐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도움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군부는 인터넷을 통제하는 등 미얀마를 외부와 차단하고 있다. 많은 미얀마인이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받고 있다."
 
1991년생 미얀마인 녜인 따진(Nyein Thazin)씨는 2017년 미얀마 만달레이 농업관개국에서 일하던 중 자신보다 네 살 많은 한국인 최진배씨를 만났다. 최씨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를 통해 미얀마로 파견을 가 있던 상황이었다. 2년 간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은 2019년 11월 결혼해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평화롭던 두 사람의 일상은 지난 2월 1일 갑작스럽게 흔들리고 말았다. 녜인 따진씨의 고국인 미얀마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혼란에 빠진 아내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고향 소식을 받아볼 수 있는 휴대폰만 바라봤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부부는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이어가던 두 사람은 3월 15일 'Myanmar Today(미얀마 투데이 https://www.facebook.com/groups/1603092429887617/)'란 이름의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고, 이곳에 미얀마인들로부터 전달받은 사진·영상과 그들의 메시지를 올리고 있다. 

온라인 미디어에 능숙한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아우르는 말)인 부부 덕분에 많은 한국인이 폐쇄적인 현지 사정, 익숙하지 않은 언어 등의 문제를 극복하고 비교적 신속하고 정확한 미얀마 정보를 제공받는 중이다.
 

녜인 따진씨가 시위 현장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벌이다 사망한 시민을 추모하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권우성

 
1인 시위뿐만 아니라 온라인 활동까지 이어가고 있는 녜인 따진씨는 '두렵지 않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에 있는 저야 안전하지만, 고향의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해줬단 말을 전하며 자신의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오히려 지지해줬다. 아버지의 경우 1988년 반독재 민주화운동(8888항쟁) 참여했었는데 '나쁜 일이 생겨도 괜찮으니 걱정 말고 미얀마 사정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라'라고 북돋아주더라."
 
어린 시절 가족들과 봤던  드라마 <주몽>을 기억하고 최근에도 <이태원클라쓰> OST와 아이유의 노래를 즐겨 듣는 녜인 따진씨는 "그런 한국이 지금 어려움에 처한 미얀마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내의 고국을 위해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최씨는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그는 "이 문제가 내전의 형태로 긴 시간 이어질 것 같아 걱정스런 마음이 있다"면서도 "민주화 투쟁이 성공을 거뒀다 하더라도 그들이 어려움일 겪을 수 있는 만큼  미얀마도 새로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래는 지난 9일 서울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부부가 페이스북 그룹을 만든 이유
 
- 2월 1일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나.
 
최진배 :  "당일 오전 8시 30분(한국 시각)부터 페이스북에 줄기차게 관련 소식이 올라올더라. 사실 전조 증상이 좀 있었다. 아내의 가족이 미얀마에 있는데 며칠 전부터 장갑차가 오가는 사진을 보여줬었다. 그때만 해도 '2021년에 설마'라는 생각이었는데 결국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큰 충격을 받았다."
 
녜인 따진 : "수업을 듣다 남편의 문자를 받고 급하게 기사를 찾아봤다. 2,3일 동안 사태 파악이 잘 안 돼서 '진짜 벌어진 일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휴대폰만 쳐다봤다.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지금도 초조하고 불안한 상황이다."
 

한국-미얀마 국제결혼 부부 최진배씨와 녜인 따진씨는 미얀마 민주화운동 상황을 한국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뉴스 그룹 '미얀마 투데이'(Myanmar Today)를 운영하고 있다. ⓒ 권우성

 
- 미얀마에 있는 가족들은 안전한가.
 
녜인 따진 : "아직까진 그렇다. 거주지가 상대적으로 도심 지역이 아니라 직접적인 군경의 탄압에선 벗어나 있다. 하지만 군경이 동네 안까지 들어와 총격을 가한 적도 있고 여러 사람을 체포하기도 했다. 특히 남동생이 시위 현장에 자주 나가고 있다. 원래 자율소방관으로 활동했는데 이번 일이 터지며 부상자를 후송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 자율소방관이 무엇인가.
 
녜인 따진 : "공무원 소방관이 있지만 물자와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원봉사단원들이 그 업무를 돕고 있다. 거의 상설로 운영된다." (관련 기사 : 구급대원까지 무자비하게... CCTV 화면에 미얀마 '분노' http://omn.kr/1sai5)
 
- 걱정이 클 것 같다.
 
녜인 따진 : "비슷한 나이대의 희생자가 나오면 덜컥 겁이 난다. 미얀마에서 나온 영상을 보다가 동생과 비슷한 체형의 사람이 피를 흘리고 있으면 집에 전화부터 건다. 하지만 동생을 마냥 말릴 수 없는 상황이다. 젊은이들이 빠지면 현재 민주화운동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정적으론 뒤로 빠졌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지만 꼭 필요한 일이란 생각 때문에 나가지 말란 이야기도 못하고 있다."
 
- 페이스북에 'Myanmar Today'라는 그룹을 만들어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최진배 : "3월 15일에 개설했다. 원래 미얀마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취미삼아 운영하던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었다. 1년 8개월 정도 운영하다 관리를 못하고 있었는데 많은 미얀마인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달라'며 페이스북 메신저로 사진과 영상을 보내오더라. 처음엔 사진·영상과 그들의 메시지를 번역해 언론사에 보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서 스스로 채널을 만들었다."
 
-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나.
 
녜인 따진 : "한국에 있는 저야 안전하지만, 고향의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고 걱정스럽다. 그런데 가족들이 오히려 지지해줬다. 아버지의 경우 1988년 반독재 민주화운동(8888항쟁) 참여했었는데 '나쁜 일이 생겨도 괜찮으니 걱정 말고 미얀마 사정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라'라고 북돋아주더라."
 
- 민주화 이후에도 군부독재 세력이 청산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녜인 따진 : "70년 정도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곳곳에 군부의 손이 뻗쳐 있다. 군대는 물론이고 경제, 정보, 통신 등을 장악하다 보니 민주화 정부가 출범했어도 말이 좋아 '군부와의 공존'이었지 사실은 허수아비였던 셈이다. 특히 2008년 군부가 개정한 헌법은 이러한 구조를 아예 바꿀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버지의 경우 1988년 반독재 민주화운동(8888항쟁) 참여했었는데 '나쁜 일이 생겨도 괜찮으니 걱정 말고 미얀마 사정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라'라고 북돋아주셨다'" 녜인 따진. ⓒ 권우성

 
"소수민족에 감사, 그들에게 사과해야"
 
- 최근 쿠데타 세력의 대변인 조 민 툰(Zaw Min Tun)이 CNN과 인터뷰에서 미얀마의 현 상황을 시위대 탓으로 돌리는 주장을 폈다.
 
최진배 :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발언이다. 군부는 이전부터 거짓정보를 여럿 유포해 왔다. 특히 '아웅산 장군(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이 지금의 미얀마와 딸을 보고 어떤 말을 할까'란 기자의 질문에, 조 민 툰이 '어리석은 딸'이란 식으로 답해 큰 파장이 일었다. 이는 국민과 민주정부를 군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많은 미얀마인이 '독재체제에 저항해 싸울 힘이 생겼다'는 말을 하고 있다."
 
녜인 따진 : "인터뷰 내용이 영어로 번역되다 보니 그나마 완화돼 알려졌다. 조 민 툰이 미얀마어로 한 이야길 알아들을 수 있는 저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대변인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쓴 언어도 슬랭(slang, 비속어)에 가까웠다.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공무원들을 짐승에 비유하며 깎아내리는 등 미얀마인들이 들으면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내용이 많았다."
 
- 버마족 중심의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와 소수민족 측이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버마족과 소수민족은 갈등을 벌여왔다. 
 
녜인 따진 : "저는 미얀마가 한창 폐쇄적이던 1991년에 태어났고 군부의 선전에 영향을 받아왔다. 군부는 소수민족을 '반란군'이라고 폄하하며 그들을 공존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규정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한 선전에 영향을 받았고, 저도 이 사태 전까지 소수민족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그들이 왜 무장까지 해가며 오랜 시간 투쟁했는지 깨달았다. 또 긴 시간 버마족과 갈등을 벌여왔음에도 지금 미얀마라는 큰 틀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며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저와 비슷한 세대는 오랜 기간 이어져온 소수민족 차별정책에 대한 공식적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단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수구 세력을 몰아내 새로운 연방군이 창설되면 그곳에서 소수민족과 함께 군복무를 하고 싶다는 젊은 남성들도 많아졌다."
 
- 국제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녜인 따진 :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어 유엔(UN)의 군사적 개입 등이 어렵단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몸을 숨기거나 정치적 망명을 하도록 통로를 만들어주는 건 인도적 차원의 문제 아닌가. 국경지대에 수많은 난민들이 몰리고 있는데 그들을 구제하는 문제는 국제정치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왜 지켜보고만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최진배 : "CRPH를 정식 정부를 인정해줘야 한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반란세력이다. 쿠데타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미얀마 군부는 2008년 자신들이 만든 헌법까지 위반해가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들은 테러리스트 단체다. 국제사회는 군부가 아닌 CRPH와 협상하고 교류해야 한다."
 

쿠데타군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나선 미얀마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준비하며 광화문에서 벌어진 대규모 촛불집회 사진을 사례로 사용하고 있다. ⓒ 권우성

 
- 한국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녜인 따진 : "폐쇄된 미얀마 사회에서 TV는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TV를 틀면 하루 종일 한국 드라마가 나왔었다. 어쨌든 그로 인해 미얀마는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받아들였다. 한국 사람들은 밖에 있다 집에 들어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잖나. 집에 오면 그냥 데면데면하던 미얀마 사람들 사이에 서로 인사하는 문화까지 생겼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저도 어렸을 때 드라마 <주몽>을 재밌게 봤었다. <주몽>이 방영할 때면 동네가 다 조용하고 가족들과 오순도순 모여 TV를 봤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지금도 <이태원클라쓰>의 OST와 아이유 노래를 즐겨 듣는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여느 미얀마인들처럼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보며 심리적으로 가깝단 생각을 했었다. 그런 한국이 지금 어려움에 처한 미얀마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많은 미얀마인이 한국을 사랑하기에, 우리에겐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도움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군부는 인터넷을 통제하는 등 미얀마를 외부와 차단하고 있다. 많은 미얀마인이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받고 있다."
 
최진배 : 한국의 각계각층에서 많은 관심을 주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다만 이 문제가 내전의 형태로 긴 시간 이어질 것 같아 걱정스런 마음도 있다. 또 민주화 투쟁이 성공을 거뒀다 하더라도 어려움을 겪으며 미얀마도 새롭게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때문에 이 문제를 길게 보고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관련기사] 미얀마에서 온 사진 http://omn.kr/1sq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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