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한국프로농구연맹)은 지난 9일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 6라운드 페이크 파울(Fake foul) 현황을 공개했다. 6라운드에서는 총 8건의 페이크 파울이 나와 5라운드(15건)와 대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KCC 이정현과 유병훈, 정창영, 창원 LG 의 정성우, 강병현, 한상혁, KGC 변준형, SK 안영준 등이 페이크 파울 명단에 등재됐다.

페이크 파울은 선수가 과도한 몸동작으로 반칙 판정을 끌어내는 등 심판과 팬들을 속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또다른 농구용어로는 플라핑(Flopping)이라고도 불리며, 농구팬들 사이에서 과장된 연기를 한다는 의미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통하기도 한다. KBL은 페이크 파울에 대한 선수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공정한 경기 운영을 강화하기 위해 2018-2019시즌부터 페이크파울 제도를 도입했고 매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페이크 파울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KBL은 페이크 파울 적발 시 처음에는 경고 조치하고 2~3회째를 기록한 선수에게는 벌금 20만원을 부과한다. 이후 4~5회 30만원, 6~7회 50만원, 8~10회 70만원 순으로 벌금이 늘어나며 11회 이상 적발된 선수는 1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는 정규리그만이 아니라 플레이오프에서도 누적된다. 선수와 구단들은 벌금도 벌금이지만 페이크 파울을 저지르는 횟수와 실명까지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팬들 앞에서 망신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조심하게 된다.

2020-2021시즌 정규 리그에서 불명예스러운 최다 페이크파울의 주인공은 이정현이었다. 총 10차례로 유일하게 두 자릿수 페이크 파울을 저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브랜든 브라운(kt)과 이대성(오리온)이 각각 6번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정현은 올해 페이크 파울 벌금으로 총 410만원을 KBL에 기부한 셈이다. 여기에 소속팀 KCC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4강에 직행한 만큼 플레이오프에서는 앞으로 페이크파울이 1번 추가될 때마다 100만원씩을 내야할 수도 있다.

이정현은 KCC의 간판스타이자 2010년대 이후 KBL과 국가대표팀을 대표하는 정상급 슈터로 꼽힌다. 하지만 이정현은 페이크파울 제도가 도입되 기전부터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플라핑의 대명사로 꼽혀왔다. 

오죽하면 KBL이 페이크파울 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을 때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이정현 방지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올시즌 초반 이정현이 2라운드에서만 무려 4회의 페이크파울을 저질러 플레이스타일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정현은 지난해 1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페이크 파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정현은 "팬들이 안 좋게 보는 것은 선수로서 고쳐야 할 문제다. 농구가 몸싸움이 많은 종목인데 플라핑이 많이 나와서 좀 더 생각하고 경기에 임해야 할 것 같다"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다. 실제로 이정현은 2라운드까지 무려 6번의 페이크파울을 저질렀지만, 이후로는 횟수가 크게 급감하며 어느 정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소속팀 전창진 감독은 "이정현은 팀의 주 득점원이고 공격 횟수가 많은 만큼 상대에게 집중적으로 마크를 당한다. 이러한 부분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비난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선수를 옹호하기도 했다.

페이크파울은 사실 농구의 오래된 악습이라고 할 수 있다. NBA(미 프로농구)에서도 제임스 하든, 르브론 제임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조차 종종 과도한 눈속임 동작으로 파울을 끌어내는 습관 때문에 도마에 오른 경우가 여러 차례였다. 한국농구에서도 이정현 이전에 이상민(서울 삼성 감독), 문경은(서울 SK 감독) 등 지금은 감독이 된 유명 스타들도 현역 시절에는 요즘 시대의 선수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플라퍼로도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페이크파울 제도가 없었던 1980, 1990년대 기준이라면 1시즌은 고사하고 단 한 경기에서도 두 자릿수 플라핑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시대 상황과 변화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한다. 과거에는 에이스에 대한 집중견제와 거친 플레이에 대응하여 선수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대의 심리전을 역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리 파울을 유도하는 것이 마치 '지능적인 플레이'처럼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다.

뛰어난 공격수들은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항상 상대 수비에 집중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보다 신체접촉에 더 관대했던 과거에 마이클 조던, 허재, 서장훈 등은 아예 격투기에 가까운 상대의 폭력성 플레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부상 위협에 시달린 경우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핸드체킹과 언스포츠맨라이크 파울 등 관련 규정이 강화되고, 농구중계의 기술의 발전 등으로 사각지대에서의 보이지않는 파울이나 비매너 행위가 엄격한 제재를 받게 되어 공격수들에게 훨씬 유리한 환경이 됐다. 반면 그만큼 공격수들도 정면승부가 아닌 불필요한 잔재주로 파울을 이끌어내는 꼼수는 쓰기 어려워졌다.

지난 2019-2020시즌 김종규(원주 DB)은 중요한 승부처에서 별다른 신체접촉이 없었는데도 과도한 액션으로 파울을 이끌어내며 비판받기도 했다. 김종규가 원래 페이크파울이 많았던 선수가 아님에도 유독 비난이 쏟아진 것은, 오늘날의 농구 팬들이 그만큼 성적이나 결과보다 '공정과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종규는 그 해 올스타전에서 피카츄 의상을 입고나와 자신의 페이크파울을 셀프 패러디하는 모습으로 반성의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여기서 '파울을 유도하는 능력'과 '파울을 창조하는 능력'은 아예 범주가 다른 기술이다. 전자가 일급 공격수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면, 후자는 농구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페어플레이 정신에도 위배된다. 기술과 신체접촉으로 상대에게 파울하지 않고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은 선수의 역량이지만, 특별한 접촉이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비명을 지르고 팔을 허우적거리고 엄살을 부리는 것은 연기의 영역이자 농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농구 팬들이 애정 어린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이정현 정도의 선수라면 페이크파울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해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현은 KCC를 넘어 한국농구를 대표할만한 스타플레이어의 위상을 지닌 선수 중 한 명이다. 많은 후배 농구 유망주들이 이정현같은 선수를 롤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코트 위에서 보여지는 경기 매너와 페어플레이에도 그만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특정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구계 전반에 페이크파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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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페이크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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