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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주노동자는 기계에 손등이 눌려 뼈와 근육 등의 손상을 입었다.
 한 이주노동자는 기계에 손등이 눌려 뼈와 근육 등의 손상을 입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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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는 노동자가 업무로 인하여 당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나 이주노동자 당사자에게 물으면 대체로 산업안전보건법이 말하는 중대 재해나 A급 재해(중상)쯤 돼야 산재라고 말합니다.

중대재해는 화학공장 폭발, 건설공사 추락, 붕괴사고 등과 같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일시에 다수의 사상자를 유발하는 재해를 말합니다. A급 재해는 12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나 질병에 걸리거나 신체 기능이나 신경계통 장해가 예상되는 재해입니다. 

상당수 사업장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일을 준비하거나 휴식 시간에 사고가 난 경우에 산재가 아니라고 우기고, 산재 사망사고를 목격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도 그것을 산재라고 보지 않습니다. 일하다가 다리가 부러지거나 손가락이 잘려서 병원에 입원해야 산재라고 합니다. 

이처럼 고용주들이 산재 범위를 법이 정한 규정보다 더 좁게 보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은 농후합니다. 고용주들은 휴업일수가 12주 미만의 인적 재해인 B급 재해일 경우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입원 치료를 거부하거나 치료한다 해도 '공상 처리'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러한 시각은 이주노동자들도 비슷합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산재 상담을 할 때마다 고용주들로부터 듣는 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게 왜 산재야! 아 그냥 공상 처리할 거니까, 간섭하지 마시오."

공상 처리는 회사에서 병원비 등의 손해를 배상해 주고 합의하는 것입니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해서 승인 났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에 준하는 금액을 사업주가 직접 보상하는 방식입니다. 공상 처리를 하면 사고로 인한 장해가 발생했을 경우나 질병이 재발할 경우에 사측에서 비용 부담을 거절해도 해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반면, 산재 처리를 하면 재요양과 장해보상, 치료 기간 휴업 급여 신청 등을 통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기 치료를 필요로 하거나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산재 처리를 하는 게 유리합니다. 

산재 사업체에서 공상 처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처벌과 보험료 상승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상 처리하겠다는 사측 요구에 이주노동자들은 마지못해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상 처리를 고집하는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취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산재 신청을 거부하는 고용주들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 들기보다 사고의 책임 소재부터 따지려 듭니다. 산재 피해자가 잘못해서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피해자를 압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피해 노동자는 자기로 인해 회사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죄책감에 빠지게 되고 공상 처리에 동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일하다 다쳤는데 되려 "미안하다"고 말했던 피해자

삼계탕 전문집에서 일하던 중국동포 K씨는 복날 점심시간에 평소보다 많은 양의 그릇을 쟁반에 올려놓고 뛰다시피 일하다가 주방에서 넘어졌습니다. 평소 주방 입구에 놓였던 대형 선풍기를 식기 세척하던 다른 직원이 더위 때문에 가까이 당기면서 바닥에 깔려있던 콘센트 전선이 발목 높이까지 높아진 까닭이었습니다. 뛰어가다가 전선에 걸린 K씨 쪽으로 선풍기가 넘어졌습니다. 

그 선풍기는 공장에서 공업용으로 쓰던 것으로 선풍기 날개가 철제로 돼 있었는데 앞덮개가 없었습니다. K씨는 쟁반이 넘어가는 와중에 선풍기를 잡으려고 하다가 오른손가락이 두 개나 손톱이 빠질 정도로 잘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손톱이 벗겨지고 피가 뚝뚝 떨어지자 A씨는 어쩔 줄 몰라서 왼손으로 사고 부위를 꾹 잡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사장이 목격했습니다. 이어진 대화는 이랬습니다.

"아니, 하필 오늘 같은 날 웬일이래. 주방에서 무슨 사고 날 일이 있다고 이 난리래. 식당에서 피 보다니 말이 돼."
"사장님, 남의 집 영업장에서 피 보여서 미안해요."


사장은 K씨를 병원에 입원시켰고, 최초 치료비용을 댔습니다. 하지만 치료받는 기간 동안 치료비 일체와 휴업 급여 등은 지급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K씨는 퇴원 후 통원 치료받는 동안 비용 때문에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았는데, 장해가 남을지 여부를 따질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쉼터에서는 사장에게 산재 처리를 요구했는데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사람은 불법이라 산재 안 돼요."

근로기준법은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여 이주노동자도 산재보상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체류 자격이 미등록이라 해도 산재 처리가 가능합니다. 사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산재 처리하면 출입국에 벌금 물어야 하는 등 자기만 피해를 본다며 산재 신청을 거부했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일 경우 체류 자격으로 인한 신분적 불안감 때문에 사측에서 '당신 때문에 피해본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죄책감을 유발하며 부당한 요구를 하면 수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식당 사장은 산재 처리를 하는 게 비용적인 면에서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산재 신청을 했습니다. 

물리치료 계속할 거면 회사 그만두라는 사장
 
두 개 손톱이 전부 빠졌다가 아문 상태.
 두 개 손톱이 전부 빠졌다가 아문 상태.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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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치료 중인 이주노동자들이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 복귀를 재촉받는 일은 예사입니다.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H는 기계에 손등이 깔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물리치료를 받는 병원에서는 앞으로 2주 더 치료가 필요하고, 경과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H에게 사장은 2주 더 치료받을 거면 퇴사 조치하겠다며 빨리 일을 시작하라는 식이었습니다. 

H는 사고당하기 전에는 네 번이나 임금체불이 있었고, 이직을 요구할 때마다 회사에서 붙잡았다고했습니다. 그랬던 회사가 치료 중인 H에게 당장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산재 피해자에게 이렇게 모질게 하는 회사가 있겠느냐 하겠지만, H가 당하고 있는 일은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H는 외국인 고용허가 체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을 채용할 회사가 있겠냐고 하소연하며 쉼터 이용을 문의했습니다. 아직 치료기간이 남았는데도 그는 회사와 싸울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산재 현장에서 겪는 일은 대동소이한데 사업장 이동을 제한받는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횡포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산재 치료가 끝난 노동자를 한 달 이내에 임의로 퇴사 조치해서는 안 됩니다. 법 조항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H씨 고용업체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쉼터에서는 단호하게 대응했습니다. '법대로 하시죠!'라는 말에 업체는 꼬리를 내렸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산재

복층유리공장에서 일하던 MD와 S는 회사 2층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순간, 먼저 식사를 마치고 바깥에서 쉬고 있던 동료 두 명이 죽는 장면을 2층 계단에서 목격했습니다. 죽은 동료들은 복층유리를 적재하기 위한 유리 운반대 앞에서 쉬고 있다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지게차 운전자가 유리 운반대를 들었는데, 대형 판유리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MD와 S는 판유리에 깔린 친구들이 피범벅이 되어 죽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둘은 사고를 떠올릴 때마다 구토를 했고, 신경쇠약과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와 불안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1개월 이상 위와 같은 증상이 지속되고 작업과 일상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두 사람에게 고작 며칠간 인근 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허락한 것 외에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고, 퇴사 요구 역시 묵살했습니다. 그 일로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산재 신청을 하자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는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는 두 사람이 사고 당사자도 아닌데, 그게 왜 산재냐고 따졌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회사 동의 없이 산재 신청하겠다고 하자, 그때야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퇴사 조치를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제안에 MD와 S는 동의했습니다. 

산재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두 사람이 죽었고, 두 사람의 이직을 허락하면 회사 인력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치료받을 것을 권했지만, 둘은 퇴사 후 근무처변경으로 충분하다 해서 상담을 종결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전제일'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많은 교육을 해 왔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교육은 소방대피훈련교육이었습니다. 지역 소방서에서 온 강사는 모든 교육을 마치면서 불났을 때 제일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지 이주노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불이야'를 외친다거나, 소화기로 불을 끈다는 등 저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런데 강사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원칙을 말했습니다. 

"불난 거 보면 무조건 도망가세요. 가장 빨리 피하는 게 원칙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화재를 발견하면 제일 먼저 '불이야!'라고 큰소리로 외쳐서 다른 사람이 대피하도록 경고하고 소화기로 소화활동을 합니다. 이때 5분 내 진화가 어려우면 소화활동을 포기하고 대피하는 게 원칙입니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은 소화기로 불을 진화해 본 적이 없고, 화재 현장에서 당황하기 쉽기 때문에 평소에 아무리 소화와 대피 연습을 했다 해도 적절한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난 거 보면 우선 도망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생명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소방교육 강사는 오랜 경험을 통해 인명사고가 왜 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교육을 시켰던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주노동자들은 자기 권리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마지못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이주노동자들이 안전제일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직무환경을 개선하고 재해를 예방하려면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자기주장을 우리사회가 지지해야 합니다. 정당한 권리마저 말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안전제일'이라는 구호는 무의미합니다. 

태그:#산재, #이주노동자, #권리, #산업재해, #안전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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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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