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 나무위키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는 지역이 좁으니 인재가 드물게 나서, 대개 예부터 걱정하였다. 그리고 이조에 들어와서는 사람을 쓰는 길이 더구나 좁다. 세족(世族)으로서 명망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높은 벼슬에는 통할 수 없었고, 바위 구멍, 띠풀지붕 밑에 사는 선비는 비록 기이한 재주가 있어도 억울하게 쓰이지 못한다. 과거출신이 아니면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으며, 비록 덕업(德業)이 훌륭한 자라도 경상(卿相)에는 오르지 못한다.

하늘이 재주를 태어 주는 것은 고른데, 세족과 과거로써 한정하니 항상 인재가 모자람을 병통으로 여기게 됨도 당연하다. 예부터 지금까지는 오랜 시일이고 세상이 넓기도 하나, 서얼이라 하여 그 어진 이를 버리고, 어미가 개가했다 하여 그 인재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가 천하거나 개가했으면 그 자손은 아울러 벼슬길에 충수되지 못한다. 변변찮은 나라로서, 두 오랑캐의 사이에 끼어 있으니, 모든 인재가 나의 쓰임으로 되지 않을까 염려해도 오히려 나라일이 이룩되기를 점칠 수 없다. 그런데 도리어 그 길을 막고는 이에 자탄하기를,

"인재가 없다, 인재가 없어."

한다. 이것이야말로 월남(越南)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백성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허균의 "호민론". <성소부부고> 권 11에 실려 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 연세대학교

관련사진보기

 
이런 것은 이웃나라에게 알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부인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은 그를 위해 감상(感傷)하는데. 하물며 원망하는 남정과 홀어미가 나라 안에 반이 넘으니 화평한 기운을 이루기는 또한 어렵다.  옛날에는 어진 인재가 미천한 데에서 많이 나왔다. 

그 때에 만약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법을 썼더라면 범문정(范文正)이 정승으로 되어서 공업(功業)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고, 진관(陣瓘, 송나라 간관)과 반양귀(潘良貴, 송나라 간관)는 강직한 신하로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司馬, 제나라 사관)ㆍ양저(穰苴, 제나라 사관)와 위청(衛靑, 한나라 장수) 같은 장수도, 왕부(王府, 동한 선비) 같은 문장(文章)도 마침내 세상에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늘이 낳아 주는 것을 사람이 버리니 이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명수(命數)를 영원하게 한 자는 없다. 나라를 경영하는 자가 하늘을 받들어서 행하면 큰 명수도 또한 맞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허균,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지식인 134인 시국선언' 주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