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가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모든 존재는 애처롭다는 거다. 이 세상에 생명을 움트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작은 벌레든, 말 못 하는 짐승이든,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이든 모두 애처롭고 애잔하다.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인생의 전성기를 지나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황혼의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겐 더 마음이 쓰인다. 
 
얼마 전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나빌레라>를 우연히 보게 됐다. 웹툰으로 이미 유명한 작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웹툰에 흥미가 없던 나로서는 '제목이 참 독특한 작품'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시리다.
 
할아버지에게 필요했던 용기

일평생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후 노년의 삶을 살던 일흔의 심덕출 할아버지(박인환 분)는 발레를 하는 이채록(송강 분)을 보고 운명처럼 발레에 이끌리게 되고, 발레를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미 장성해 번듯한 가족을 이룬 자식들 앞에서 발레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는 할아버지에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tvN <나빌레라> 한 장면.

tvN <나빌레라> 한 장면. ⓒ tvN

 
남몰래 간직한 당신의 꿈을 뒤늦게 시작하려는 용기, 발레를 배우겠다는 말을 꺼내는 용기, 사람들의 황당한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용기,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산책이나 하며 살아가라는 가족을 설득해야 하는 용기, 남들과는 다른 당신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하고 감수하는 용기. 
 
발레를 배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며 노발대발하는 아내, 늙어서 무슨 발레냐며 부끄럽다는 자식들, 왜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하냐고 묻는 선생님까지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할 상대 뿐이다.

나이가 들면 꿈을 꾸고 도전하는 것도 미안해해야 할 일인 걸까. 드라마 속 인물이라는 걸 잊은 채, 나는 TV를 부여잡고 '할아버지, 기죽지 마시고 싸워서 이기세요!'라고 응원하고 있었다. 홀로 고군분투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가끔 짠한 마음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한다. 나는 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는 발레를 했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참 어렵다. 배곯지 않는 것이 최고 소원이던 시대를 살아 낸 할아버지에게 꿈을 지켜나가는 일보다 포기하는 일이 훨씬 쉽고 당연하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걸 해본 적이 없다"는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어렵게 꺼낸 그 용기가 그래서 더 가슴 저리다. 
 
순탄치 않은 23살의 방황하는 청춘을 그려낸 송강의 연기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심덕출을 연기하는 박인환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순수한 웃음과 서글픈 눈물, 어설프지만 진심 어린 몸동작에 더 마음이 간다.
 
 tvN <나빌레라> 한 장면.

tvN <나빌레라> 한 장면. ⓒ tvN <

 
키가 작고 배가 볼록하게 나온 심덕출 할아버지는 여느 발레리노와는 많이 다르다. 할아버지도 23살의 채록이가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해내는 발레를 보며 순간순간 좌절에 빠지기도 하지만, '발레 무식쟁이'인 내가 볼 때는 심덕출 할아버지의 손끝 발끝에서도 발레의 아름다움과 예술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23살 채록이가 자기의 인생을 찾아 방황하며 하루하루 성장하듯이 심덕출 할아버지도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고 있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나는, 그래서 할아버지의 성장이 반갑고 기쁘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날아오르고 싶다"는 심덕출 할아버지의 꿈을 너무도 간절하게 응원한다. 백 가지 잡다한 일들을 빨리 끝내놓고 본방을 사수하는 것은 그를 향한 나만의 응원법이다. 
나빌레라 박인환 송강 발레 일흔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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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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