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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살 청년, 전북 순창군 인계면 탑리 임형섭 이장
 서른일곱 살 청년, 전북 순창군 인계면 탑리 임형섭 이장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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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인계면 탑리에서 나고 자랐다. 성인이 돼 일하러 떠났다가 부모님 곁으로 다시 돌아온 지 5년 정도 됐다. 올해 처음 탑리 이장을 맡아 그야말로 신출내기다. 군내 이장들 중에서 2번째로 나이가 어린, 서른일곱 살 청년 임형섭 이장을 지난달 5일 오후 마을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결혼하고 광주에서 공장도 다녀보고, 마트 일도 해 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저희가 농사를 그럭저럭 짓거든요. 아버지께서 연세도 있으시고 앞으로 농사를 이어갈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이장도 젊은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까 맡게 됐어요. 마을에 제 또래들은 아예 없어요."
 
"처음에는 주민들 성함도 되게 낯설었어요"
 
임 이장은 농사꾼으로 변신하랴, 이장 노릇 하랴 애를 쓰고 있다. 이제 2개월을 막 넘긴 초짜 이장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터. 그는 "지금 딱히 아는 것도 별로 없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처음엔 성함도 되게 낯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마을에서 저는 누구 엄마, 누구 할머니 이렇게 들어왔잖아요? 그런데 면사무소에서는 항상 (주민 명단이) 이름으로 나와 있어요. 이제 누구누구씨, 이름도 물어가면서 해요. 누구 엄마하고 이름이 매치(연결)가 안 되니까. 하하하."
 

임 이장은 "타 동네에는 농기계창고도 있고 폐지취합장도 있고 운동기구도 다 있고 그러는데, '아, 왜 우리 동네에는 이런 게 없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그동안 마을 일에 너무 관심이 없이 살았구나, 반성하게 됐다"고 의욕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는 중이다. 임 이장은 마을 땅 이야기에서 목소리를 다소 높였다.
 
"다른 마을을 보면, (마을 입구) 당산나무 옆에 넓은 토지 같은 마을 땅이 있잖아요? 저희 마을엔 그게 없어요. '생생마을 만들기'도 진행하던데, 처음에는 한 500(만 원)정도 들여서 마을을 꾸미고 점점 더 사업이 커져요. 알아봤더니 저희 마을은 인구가 적기 때문에, 효율성 면에서 채택이 안 되더라고요. 큰 마을 위주로 하다 보니까 작은 데는 어렵겠다고."
 
임 이장은 일곱 살, 네 살, 두 살 삼형제를 뒀다. 아내는 광주에서 일을 하며 삼형제와 함께 지낸다. 임 이장은 "순창이 교육이랑 그런 여건이 굉장히 좋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정도 나이가 되면 순창에 내려오자고 아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웃었다.
 
"시골에 오니까 도시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해요. 하하하. 무슨 일이 생기면 아버지한테 '저 오늘은 쉬어야겠어요', '아이들한테 가봐야 해요' 그렇게 말씀드리면 되거든요."
 
"농사는 노력한 만큼 나온다는 데에 만족"
 
도시와 시골에서의 경제적인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수입 그런 것보다는, 농사는 자기가 노력한 만큼 나온다는 데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요. 또, 아이들이 어리면 어릴수록 갑작스럽게 돌봐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기거든요.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그게 불가능할 텐데, 농사를 짓는 건 제가 시간 조율을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좋죠."
 
농사지어서 먹고 사는 문제와 아이들 양육까지 해결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두릅 농사 1정(3000평) 정도 짓고요, 하우스 농사, 논농사, 밭농사도 하는데 엄마랑 함께 아버지를 도와드리죠. 두릅은 인계면 농협에서 모두 취합해 (서울)가락시장에 나가고 있고, 하우스는 제가 공판장으로 출하하고 있어요. 농사지어서 아버지, 어머니, 저 먹고사는 건 문제 없어요."
 
순창 두릅은 품질과 맛이 좋기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임 이장은 "아직까지는 순창 두릅이 거의 전국 1등이라고 그런다(인정한다)"며 두릅 자랑과 우려를 동시에 이야기했다.
 
"아래 지방 두릅과 순창 두릅이 나오는 게 15일 가까이 차이 나요. 아래 지방이 봄나물로 먼저 나오니까 최근에는 (순창 두릅이) 조금씩 치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시장 점유율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는 건데, 드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품질로는 순창 두릅을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종자는 같아도 향이 다르대요. 아무래도 제때 나오는 순창 두릅이 더 좋겠죠."
 
두릅 수확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일까. 임 이장은 두릅 수확 질문에, 몸은 고되어도 수입이 좋은 때문인지 신바람이 났다.
 
"3월 끄트머리부터 4월, 5월 초까지 수확해요. 보통 4월에 수확을 시작하는데, 위쪽 순을 수확하고 15일 정도 기다렸다가 옆 순이 나오면 그때 또 수확하죠. 두릅 수확은 모내기 농사철하고 시기가 겹쳐요. 두릅만 수확하기에는 일손 문제도 있고 맛도 영향이 있고 해서 5월 초면 모두 끝나요. 두릅 수확이 한창일 땐 새벽 5시에 나와서 12시에 집에 가고 그러죠. 하하하."
 
지난해 인계면의 신생아는 두 명 
 
임형섭 이장이 둘째 아들 인권이를 안고, 어머니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임형섭 이장이 둘째 아들 인권이를 안고, 어머니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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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 앞에서는 '진권'(임 이장의 둘째)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다가가서 물었다.
 
"시골집이 좋아요?"
"네."
"광주보다 좋아요?"
"네."
"할머니, 할아버지와 있으니까요?"
"네."
"근데 여기는 친구가 없잖아요?"
"친구 있어요. 어린이집에 있어요."
"몇 살이에요?"
"인제, 네 살이에요."

 
임 이장 어머니는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멋쩍게 웃었다.
 
"우리 인계면에서 작년에 신생아가 두 명 태어났는데, 그 두 명이 우리 집이에요. 친손자, 외손녀 그렇게. 하하하."
 

임 이장의 막내아들, 여동생의 딸은 인계면 출생부에 2020년생으로 이름을 올린, 단 두 명의 동갑내기 사촌으로 기록됐다.
 
"가르치는 건 시골이 더 낫다고 봐"
 
사진을 찍고 있자니, 대형견 한 마리가 무심히 일가족을 지켜봤다. 어머니는 "못난아? 이리 와~ 사진 찍자"고 불렀다.
 
"애 이름이 '못난이'여, 새끼 때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오래 살라고 못난이라 이름 지어 줬더니, 정말 제일 오래 사네. 열한 살이 넘었을걸. 지금까지 못난이가 낳은 새끼만도 100마리가 넘어. 많이 낳을 땐 아홉 마리씩도 낳았으니까."
 
임 이장 아버지는 아들이 이장 맡은 것보다 손자 보는 게 좋은지 연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묻지도 않은 말을 아들이 들으라는 듯 무심하게 툭 던졌다.
 
"아이들이야 좋지 뭐.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차가 다녀 뭐가 다녀? 맘껏 뛰어놀지. 나는 뭐 애기들도, 지금 도시나 시골이나 차이점이 뭐가 있어? 가르치는 건 사실상 나는 시골이 더 낫다고 봐."
 
임 이장은 진권이를 안은 채 포부를 밝혔다.
 
"막상 이장이 되니까 신경 써 드려야 하는 일들이 많아요. 내가 너무 마을에 대해서 몰랐구나, 관심이 없었구나, 반성을 했죠. 젊은 사람이 와서 마을을 위해 무언가 바꿔 가는,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죠. 이것저것 해 보고 싶어요."
 
사냥견 ‘못난이.’ 그동안 낳은 새끼만도 100마리가 넘었단다.
 사냥견 ‘못난이.’ 그동안 낳은 새끼만도 100마리가 넘었단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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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4월 1일 보도된 기사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태그:#전북 순창, #임형섭, #인계면, #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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