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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인물열전 책 표지
▲ 중국사인물열전 중국사인물열전 책 표지
ⓒ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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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능했던 명나라의 가장 강직한 신하 

조선이 그토록 숭배했던 명나라는 기실 중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왕조였다. 황제들은 모두 무능의 극치를 달렸고, 고위 관료들은 그야말로 부패의 극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명나라에도 예외적인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해서(海瑞)였다. 그는 평생 수없이 파관(罷官)과 파직(罷職)을 당해야 했다. 그가 파직된 시간은 무려 16년이나 되었고 거기에 감옥까지 갔으므로 관직 생활보다 파직 생활이 더 길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방의 지위와 세력에 전혀 개의치 않고, 불의함을 보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맞섰다.

그는 당시 조정의 실권자이자 탐관오리였던 엄숭 일파에게도 전혀 굴하지 않고 법과 규정이 정한 원칙대로 사무를 처리하다 면직되었다. 그런데 엄숭이 실각하자 그는 부정한 거대 권력에 당당히 맞서는 인물로 숭앙되어 오히려 일약 영웅으로 부각되었고 바로 복직되었다.

그의 유일한 사치는 노모 생신을 맞아 고기 두 근을 사드렸던 일

그는 비록 지위는 높지 않았지만, 언제나 조정의 신하로서 마땅히 조정의 현실에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황제였던 가정제는 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불로장생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데만 골몰하고 있었다.

'지위는 낮으나 강직했던' 선비, 해서는 상서를 올려 당장 제사 모시는 것을 그만두라고 간언하였다. 상서를 본 가정제는 크게 분노해 해서를 곧바로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해서는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가정제는 사형 집행을 계속 미루었다. 몇 달 뒤 가정제가 죽었고,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고 해서는 석방되었다. 그는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는 다시 복직을 하고, 승진을 거듭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탄핵을 받아 사직을 당했다.

해서는 자식이 없었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초라한 방에 부서진 가구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는 벼슬에 있을 때도 관저 뒤뜰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을 주로 먹었고 술과 고기는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그의 유일한 사치는 노모 생일에 고기 두 근을 사드렸던 일이었다.

그의 일평생은 사실상 관료조직과의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결국 철저하게 패배한 그는 만년에 일곱 번이나 사직을 청했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부임지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가 치러진 날 사람들은 가게의 문을 닫아 애도하였고, 장지까지 따라오면서 곡(哭)을 하는 행렬이 무려 백여 리에 이르렀다.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해서파관'

훗날 1959년 4월, 마오쩌둥은 간부들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문제를 비판하면서 해서의 '강직하고 아부하지 않으며 직언하고 간언하는' 정신을 학습하라고 주창하였다. 베이징 부시장이며 저명한 명나라 역사가였던 우한(吳晗)은 9월에 "해서, 황제를 비난하다"라는 글을 발표하였고, 1960년에 '해서파관(海瑞罷官)'이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상영되었다.

그러나 1965년 11월 10일, <문회보(文匯報)> 신문에 야오원위안(姚文元)이 "해서파관을 평하다"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우한의 '해서파관'이 반당(反黨) 반사회주의의 독초이며, 마오쩌둥을 비판하여 실각한 펑더화이(彭德懷)를 찬미한 글이라면서 맹비난하였다. 이는 유명한 장칭(江靑)의 치밀한 계획 하에서 이뤄진 것이었고, 이것이 도화선으로 되어 곧바로 비극적인 문화대혁명으로 연결되었다.

역사는 인간 기록의 집합이다

역사란 결국 인간 기록의 집합이다. 역사는 개개인들이 하나의 집합체로서 혹은 하나의 흐름으로써 때로는 주도적으로 때로는 수동적으로 함께 공동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선정하여 기술한다는 것은 역사 구성의 한 방법론으로 된다. 또 그 작업은 이미 사라진 역사의 기억을 영화의 생생한 주인공처럼 오늘에 다시 생동감 있게 살려내 눈앞에서 다시 관람하면서 음미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어느 한 인물의 삶을 기술한다는 것은 그 인물이 처해있는 시대 전체와 해당 시기의 전후 상황까지 모두 종합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것을 명료하게 정리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역사의 진보'를 희망하며

필자는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제왕이나 명장 그리고 대문호들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와 사상가들까지 그들의 삶을 널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인물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하고 이 책의 인물만 살펴봐도 해당 시기의 사건과 주변 인물 그리고 시대적 조류를 쉽게 알아볼 수 있고 나아가 전후좌우의 역사적 흐름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특히 알려지지 않은 '민원왕' 농촌 할머니가 그 지역 현(縣)의 인민대표가 되기까지의 삶과 생각을 기술한 것은 역사는 민중이 만들어간다는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희망이 담긴 원칙'을 반영하고자 했다.

태그:#중국사 인물열전,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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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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