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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족 단톡방에 아빠가 뜬금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서방은 잘 지내지? 밥은 잘 먹고?' 남편이 들어있지도 않은 단톡방에서 남편 안부를 묻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메신저가 되어야 하는 내가 '잘 지낸다'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나는 아빠가 남편의 안부를 묻고 관심을 갖는 것이 싫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빠는 사춘기 이후 나에게 다정하게 안부나 근황을 물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대화하지 않는 부녀

아빠는 내가 결혼한 뒤 내가 남편의 내조와 뒷바라지를 잘 해내지 못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내가 혼자 친정에 오면 남편 밥은 누가 챙겨주냐고 안절부절이고, 명절에는 친정에 안 와도 좋으니 시가에 오래 있으라며 당부를 한다. 처음에는 우리 부부는 동등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아빠에게 설명하려고도 해봤지만, 아빠와 대화가 길어지면 늘 결국 싸움으로 끝이 나고, 우리는 끝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을 멈추고 만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와 근황 토크를 해본 적도 없는 아빠가 결혼한 뒤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내 역할만을 자꾸 강조하는 게 나는 당황스럽고 의아했다.

아빠가 남편에게만 유독 친절한 얼굴을 보여주는 이유를 나는 모르고 싶으면서도 알 것도 같다. 명절에 시가에 가거나 생신상을 차리는 등의 전형적인 며느리 도리를 하고 있지 않은 나에 대한 아빠의 평가는 너무나 야박해서, 아빠는 내 남편이 나를 반려자로 맞이하는 엄청난 희생을 했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래서 남편에 대한 아빠의 친절은 한편으로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길 바라는 아빠로서의 애정일지도 모른다. 정작 내게는 늘 화만 내던 아빠가, 내 남편에게는 잘난 것 없는 딸을 잘 봐달라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딸 가진 아버지로서 사위에게 저자세를 취하며 대신 점수를 따주는 게 아니라, 그럴 바엔 귀하고 잘난 딸이라고 차라리 허세라도 부려주는 것이었다. 시아버지가 나에게 '설거지 한번 안 시킨 아들'이라며 내게 당당하게 뒷바라지를 요구하시는 것처럼. 나는 그런 시아버지에게 말대꾸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들 잘 키웠으니 거리낄 것 없다는 그 당당함이 부러웠다.

나는 아빠의 서툰 표현 방식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워한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일평생을 바쳐 일한 책임감 있는 가장이면서, 동시에 자식과의 유대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 전형적인 외로운 중년 남성이다. 아빠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면서도 그런 아버지의 고된 삶을 반추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납득하며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려 애쓰는 것은 자식에게 남겨진 몫이다.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한 채로 내 상처를 혼자 매만질 뿐이다.

우리 가족은 정상일까
 
아들을 업고 있는 사유리
 아들을 업고 있는 사유리
ⓒ 사유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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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발적 비혼모가 되어 아들을 키우고 있는 방송인 사유리가 육아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오며 논란이 되고 있다. 요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지금, 공영방송이라도 올바른 가족관을 제시하고 정상적인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야 하는데 비혼모를 등장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네티즌 사이의 논쟁도 거세다. '정상 가족을 누가 규정하는 것이냐'는 반대 의견이 있는가 하면 '비혼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며 청원에 동참한 이들도 1600여 명이 넘는다.

어쨌거나 나의 친정 가족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에 따르면 엄연한 '정상 가족'이다. 엄마, 아빠, 딸 하나에 아들 하나. 강요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훈육하는 아빠와 틀에 갇히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딸의 궁합은 엉망진창이었고, 온기 있는 대화를 나눠본 지 최소한 20년이 넘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별문제가 없으니 이 역시 형식미를 따지자면 '올바른 가족관'의 예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말하는 '정상 가족'이란 눈 가리고 아웅하기와 다를 바 없다. 가정이 구성되었다고 해서 모두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혹은 동화처럼 '그 이후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꼭 이혼 등으로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는 경우가 아니라 해도 어느 가정이나 크고 작은 불화와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감싸 안고, 누군가는 무엇을 희생하고, 누군가는 아는 것을 모르는 척하며 묻어둔 채 살아간다. 심지어 부부간에 폭력이 있어도 이혼을 하지 않으면 그 가족은 사회가 말하는 '정상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단지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 구성원이 다 채워져 있다고 해서 그것을 당연하고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오히려 기만이 아닐까? 우리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이고 올바른 가족이란 무엇인지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가족이 올바르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자체보다 구성원의 역할과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오직 1인으로서만 훌륭히 기능할 수도 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진심으로 원해서 아이를 가진 사유리와 충분한 사랑으로 태어난 아들 젠이 올바른 가족이 아닐 이유가 없다. '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강요는 다양성에 대한 억압이자 앞으로 행할 차별에 대한 폭력적인 선언에 가깝다.

비혼을 부추기면 왜 안 되나요
 

다소 비약일 수도 있겠으나, 자발적 미혼모 사유리의 방송 출연이 비혼을 부추긴다는 주장에서 나는 사회의 어떤 불안감을 느낀다. 국민의 지적 수준은 낮을 때가 좋았고,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지 않았을 때가 좋았고, 아무도 진정한 자유를 열망하지 않을 때가 좋았다는 어떤 권력자들의 불안감. 결혼하지 않는 자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자유가 침범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존에 선택권 없이 걸어야만 했던 길이 실은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일까?

무엇을 부추기는 것이 가능하려면 그것이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여야 한다. 사유리의 삶을 본 사람들이 만약 그것을 부러워하고, 추구하게 된다면 그게 사유리의 잘못일까. 결혼했으면 당연히 부당한 일을 겪어내고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해온 사회적 관념과, '결혼은 현실'이라며 결혼 후의 삶을 무덤처럼 그려내던 미디어와, 출산과 함께 개인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등의 제도적 문제가 아니라?

그토록 비혼이 아닌 결혼을 부추기고 싶다면 적어도 결혼이 비혼보다는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 결혼 당사자들의 노력만으로는 결혼으로 잃는 것을 다 메꿀 수 없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정상 가족'을 꾸린다 한들 그 구성원들 모두가 만족스러운 가정 내의 삶을 누린다는 완벽한 보장은 없다. 아빠 역할을 하지 않는 아빠라도 있는 것과, 아빠 없이도 완전한 가정을 선택한 엄마와의 삶 중 아이는 무엇이 행복할까. 그것은 우리가 바깥에서 보고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결혼한다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까?
 결혼한다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까?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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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어떤 삶은 정상, 어떤 삶은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사회를 받아들인다면, 가족 구성원 중 하나만 정상 궤도를 벗어나도 그 가정은 굳건한 공동체의 원 밖으로 밀려나 차별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위험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사회가 나는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수를 권력으로 착각하곤 한다. '비혼모가 되는 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방송에서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은 사회가 인정한 '정상 가족'으로서 그 외의 형태를 억압할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뜻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언제든지 '보통'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차별을 서슴지 않겠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 권력의 입지가 영원할 거라는 굳은 확신에서 비롯된 섣부른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정상'의 길이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모두 인생의 수많은 갈래에서 비정상에 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의 범주를 한정하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안전해지고 자유로워지는 일이지 않을까. 사유리를 비정상의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는 사회적으로 언제나 가장 안전한 지대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족이란 가장 사적인 공동체이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한 그것을 가장 행복한 형태로 꾸릴 자유가 있다. 

태그:#비혼모, #사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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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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