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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들은 인상적인 말이 있다. 20세기에 인류가 이룩한 기술적 진보가 그 이전에 도달한 진보의 총량을 넘는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20세기 마지막 3년의 성취는 나머지 97년을 능가한다. 이런 일반화가 사태의 핵심을 적절하게 잡아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격변의 20세기를 지나, 21세기 20년대를 살아간다.

오늘날 시점에서 보면 20세기의 변화와 진보는 어쩌면 상당히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무선 호출기 삐삐가 이동통신으로, 손편지가 문자로, 국제 우편이 전자우편으로 바뀌는 속도는 견딜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월드와이드웹과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지구촌은 그야말로 분초의 거리로 좁혀졌다. 와중에 등장한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은 어떤가?

오늘날 스마트폰은 호모사피엔스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뒤바꿔버렸다. 불과 1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경천동지할 정도여서 '디지털격차'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앞으로도 이런 격변이 가속 페달을 밟을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문제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고립감을 호소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바르데츠키의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바르데츠키의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 걷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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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도전

독일의 심리 상담가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은 시대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설파한다. 부제에서 우리는 서책에 관한 기본정보를 포착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변화에 무력감이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심리학 조언'. 변화를 대하는 마음가짐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변화는 싫든 좋든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명제는 동서양 곳곳에 있다. 열반에 들기 전에 붓다는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라고 했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에게 바친 반지에 새겨진 글자는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이것은 이슬람의 <수피 우화>에도 나온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판타 레이'(만물 유전)를 주장했다.

문제는 변화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사실이다. 결혼을 앞둔 청춘들의 심리적인 불안이나 해외여행을 목전에 둔 여행객들의 남모를 불안을 떠올리시라. 사뭇 긍정적인 변화이자 도전임에도 우리는 떨치기 어려운 불안과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지금까지와 다른 관계와 상황의 변화가 불러오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원인 제공자다.

지은이는 변화와 도전에 담긴 함의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변화는 인생에서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를 바꾸며, 평생 발전시키는 구실을 한다. 과거에 갇혀 있지 말고, 변화를 유연하게 다루는 적응력을 발전시켜라. 도전 없이 매일 같은 삶을 살기에 인생은 너무도 풍요롭고 다채로우며 소중하다." (p.64~83)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인도의 시골에서 원숭이 잡는 방법이 흥미롭다.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이 있고, 속이 보이는 격자형 상자에 바나나를 매달아 놓는다. 바나나를 본 원숭이가 손을 집어넣고 바나나를 꺼내려 한다. 바나나를 놓지 않으면 원숭이 손은 구멍을 빠져나올 수 없다. 사람이 다가가도 원숭이는 끝까지 바나나를 놓지 못하고 잡히고 만다.

원숭이 이야기로 지은이는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제시한다. 오래되고 낡은 것, 예전의 고통이나 슬픔, 분노 같은 것이다. 절대 바꾸지 못할 지나간 일이나,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고 고정돼있는 사람들과도 작별하는 편이 좋다고 지은이는 충고한다. 과거의 덫에 걸린 자신과 타자는 과감히 버리라는 얘기다.

반면에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것은 지금과 여기다. 우리에게 친숙한 '카르페 디엠'이 가장 적절한 수식어가 될 것이다. 오늘을 포착하고, 오늘에 유의하면서,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 1년이나 10년 후의 일을 앞당겨서 지레 괴로워하지 말고, 변화를 추동하고 견인할 현재에 집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지나간 실패와 놓쳐버린 인연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어제 흘러간 강물로 오늘 우리의 발을 씻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오지 않은 미래의 시공간에 대한 망상과 몽상은 우리의 중요한 선택과 행동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름지기 눈 앞에 펼쳐지는 우리의 현재에 몰두해야 한다.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놓아주고, 목표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고수하라!" (p.108)
 
변화를 대하는 몇 가지 방법

'변화'를 주제로 삼은 책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에서 지은이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점은 불가피한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부터 명확하게 구분하라고 충고한다. 바꿀 수 없는 것에 굳이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지은이 생각이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격언은 우리를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출구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구원은 예기치 않게 우리를 찾아온다. 그렇기에 어떤 악조건과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온전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한다. 지은이는 분노를 적절하게 해소하고, 관용과 절제를 일상화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다가 기회가 오면 즉시 그것을 포착해야 한다. 베르데츠키는 '카이로스'라는 단어로 이런 상황을 구체화한다.
 
"독일어로 '카이로스Kairos'는 유리한 순간, 결정적인 찰나, 특별한 기회를 뜻한다. 카이로스는 발달과정에서 생기는 사고력, 직관, 인내를 바탕으로 성숙해진다. 카이로스는 눈 깜짝할 새에 놓칠 수도 있다. 카이로스는 느닷없는 선물 같고,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기회가 왔을 때,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p.223)
 
거대한 격변에 즈음하여

언제부턴가 봄이 오면 온갖 꽃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사자성어가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거대한 사회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체감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나날이 커지고 증폭된다.
 
"사회의 커다란 변화는 해결해야 할 엄청난 도전과제다. 디지털화와 인공지능, 기업의 비용 절감 조치와 파산으로 인한 금융위기, 제로금리, 이민자의 범람까지." (p.264)
 
21세기에 발생한 지구 전반적인 변화와 위기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간 것은 대규모 감염병 코로나19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호의와 긍정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끝없이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을 비하하고 책망하며 평가절하한다면, 어떤 긍정적인 변화와 성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과 관심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와 감정을 유지하고, 세상의 문제를 홀로 짐 지지 않으려는 자세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와 고민만 해결하는 일도 때로는 벅차기 때문이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해보는 과감한 자기 긍정이야말로 사회적 격변을 극복하는 첩경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박제헌 옮김, 걷는 나무, 2021.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 피할 수 없는 변화에 무력감이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심리학 조언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은이), 박제헌 (옮긴이), 걷는나무(2021)


태그:#바르데츠키, #변화 , #디지털격차, #카이로스,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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