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더라인> 포스터

영화 <보더라인> 포스터 ⓒ THE 픽쳐스

 
살다 보면 다양한 순간들을 만난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가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그런 순간의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보더라인>은 그런 창작의 고통을 사랑이야기와 함께 화면에 담아낸 작품이다. 런던에서 생활하는 작가 지망생 안나(안나 알피에리)는 우연히 만난 로빈(아가트 페레)에게 끌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시작되다. 

영화가 그들의 모습을 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들의 만남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고 현재 시점에서 로빈과 헤어진 안나의 모습, 첫 만남과 데이트 장면들을 중간중간 보여주고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을 섞어놨다. 마치 연인과 헤어진 안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관객은 안나와 로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대략적으로 짐작만 한 채 영화를 따라가게 된다. 실제 연인과 헤어진 이후 남겨진 사람의 고통과 상실감이 화면에서 느껴진다. 안나가 길을 걸을 때 들려오는 거리의 소음,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 그가 떠올리는 과거의 추억들은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다.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건 그가 하는 행동을 과거 상황과 연계하여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혼자 샤워하는 장면에선 바로 로빈과 함께 샤워했던 순간들을 보여주고, 다른 데이트 상대를 찾을 때, 로빈과 데이트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특별히 플래시백 효과 없이 바로 장면 전환이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영화 <보더라인> 장면

영화 <보더라인> 장면 ⓒ THE 픽쳐스

 
또한 그들이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데이트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역시 이것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모호하게 구성되어 있다. 사실은 안나의 상상으로 보이는데 그 화면 안에서 안나와 로빈은 매우 행복한 연인으로 그려진다. 여행지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와 몸짓들에는 현실에서의 고민이나 아픔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안나가 꿈꾸는 이상향의 모습이 화면에 펼쳐지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따스하다. 이런 완벽한 모습은 너무 이상향에 가까워 오히려 이것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안나의 일탈 장면도 너무 극단적으로 치닫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인지 알기 어렵다. 

안나는 로빈과 만난 뒤 글을 잘 쓰지 못해 우울함에 빠진다. 그들이 헤어지기 직전 로빈은 긍정적인 생각과 활동을 계속 전달하려 했지만, 안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런 과정을 거친 현재의 안나는 창작을 할 수 있는 영감을 받았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안나는 여전히 종이 위에 무엇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는 글을 쓰는 대신 로빈의 페이스북 피드를 확인하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헤어짐, 그리고 사랑과 아픔의 경계선에 대한 감정
 
 영화 <보더라인> 장면

영화 <보더라인> 장면 ⓒ THE 픽쳐스

 
영화 <보더라인>은 연인과 헤어진 직후, 사랑과 아픔의 경계에 놓여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지만 영화 안에서 그들의 사랑이 특별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두 사람의 반응을 보여준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나 <캐롤> 등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사랑을 망설이고 그럼에도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보여줬다면, <보더라인>은 막 헤어져 남겨진 사람의 방황을 중점적으로 담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가진 애틋한 감정보다는 상실감과 혼란스러운 감정에 더 집중한다. 

안나가 느끼는 그 감정은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그의 곁을 떠난 로빈도, 그에게 다른 방식의 관계를 선사하는 다른 친구도 그가 느끼는 감정을 덜어줄 수 없다. 결국 자기 자신의 문제다. 영화는 연인 사이의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헤어진 뒤 실연의 아픔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걸 글로 표현하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영화 <보더라인>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이 깨진 직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안나 알피에리 감독은 이탈리아 국적으로 영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다가 첫 장편 <보더라인>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영화를 통해 이별의 아픔과 창작의 고통 속에서 느끼는 감정적 소용돌이를 영상으로 잘 표현했다. 또한 주인공 안나 역으로 출연하여 좋은 연기도 같이 보여줬다. 작품은 일정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상으로 구성한 시 같아 보이기도 한다. 다소 난해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연인의 만남과 사랑, 이별 그리고 극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담겨 의미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보더라인 독립영화 사랑 아픔 창작의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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