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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입사 때부터 두 대의 컴퓨터를 사용 중이다. 한 대는 데스크톱 PC로, 나머지 한 대는 외근을 많이 다니던 직군이었던 나와 같은 기술 직원을 배려해 노트북을 지급받았다.

시간이 가면서 노트북과 데스크톱 PC는 노후되어 회사는 새로운 사양의 노트북으로 교체해줬고, 회사 규정이 바뀌면서 개인당 PC 지급은 모두 노트북 한 대로 통일되었다.

결국 재작년에 데스크톱 PC 대신 고사양(?)의 노트북을 한 대 지급받았고, 사용 중이던 노트북 한 대는 새로운 노트북 교체나 반납 없이 그냥 사용하는 것으로 관리팀과 협의 결정하였다.

이렇게 사용 중이던 노트북이 어느덧 4년을 훌쩍 넘어 5년쯤 되니 기본적인 프로그램 이외에는 설치에 무리가 있었다. 결국 업무 백업용 서브 PC로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느려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작년부터는 재작년에 받은 노트북의 의존도를 높여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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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5년을 함께 한 노트북의 처지가 꼭 지금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측은했지만 업무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새로 받은 노트북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새로 받은 노트북은 중요도가 높은 문서 작업이나 메일 등의 중요한 포지션 업무 외에도 사소한 인터넷 검색을 할 때도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구형 노트북은 새로 받은 노트북의 서포터로서의 역할만 묵묵히 하게 됐다.

그러던 며칠 전 출근해서 새 노트북을 켰더니 윈도 업데이트가 시작됐다. 어쩔 수 없이 구 노트북(서브)을 사용해 출근 루틴에 맞춰 업무 준비를 시작했다. 속도가 느려 조금 답답했지만 그래도 5년을 손에 익었던 녀석이라 보내야 할 곳에 메일도 보내고, 업무 메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싶어 우측에 켜놨던 새 노트북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오늘따라 윈도 업데이트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그렇게 10여분이 넘는 긴 업데이트 후 PC는 정상적으로 부팅했고, 부팅 후에는 원래의 일을 묵묵히, 문제없이 처리했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하고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다. 평소 같이 새 노트북과 구형 노트북 둘 모두 전원을 넣고 나서 잠시 커피를 마시는 사이 구형 노트북은 이미 내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레디(Ready)' 상태가 됐지만 새 노트북은 하드웨어 제조사인 'SAMXXXX" 로고만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래된 녀석도 멀쩡한데 사용한 지 1년 조금 더 된 노트북이 왜 부팅이 안 되는 거야?"

최근 3개월간 업무 백업을 해놓지 않았던 난 너무도 당황했고, 급하게 노트북의 하드 디스크를 분리하여 하드 디스크에도 문제가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 다행스럽게도 업무 데이터를 담고 있었던 하드 디스크는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급하게 분리한 하드 디스크를 백업하며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오늘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업무 때문에 정신이 조금 '들락날락' 거리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난 백업한 일부 데이터를 구형 노트북으로 옮겨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다행스럽게도 느리다고 생각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큰 무리 없이 마무리해야 할 업무를 정상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새 노트북을 들고 AS센터에 방문했고, 다행히도 큰 문제는 아니어서 노트북을 정상적으로 복구할 수 있었다.

이번 일로 난 두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자주자주 업무용 파일들은 백업을 해야 한다는 것과 새로운 노트북이 빠르다고 한쪽에 치우쳐 업무를 보다 보니 새 노트북 불량이 생겼을 때 당황하고, 우왕좌왕했다.

그 날의 난 구형 노트북과 함께 한 5년의 시간과 과거 활약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출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최신 사양은 아니지만 나의 구형 노트북도 출시 당시에는 최신 사양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새 노트북이 없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막상 새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구형 노트북으로도 충분히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서도 비슷하다. 나이 많은 선배 직장인들은 사고의 판단과 행동이 조금 느려졌을 뿐이지 나이가 차서 능력이 사리진 건 아니다. 오히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업무 경험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는다.

그런 선배들도 한때는 빠릿빠릿한 신입 시절도 있었고, 팀의 에이스 역할과 같은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는 서포터 하는 역할로, 누군가는 회사의 중추적인 역할로 태어난 삶은 없다. 역량에 맞는 업무 분담은 조직에서 꼭 필요한 절차이지만 그것이 꼭 나이순일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내세우는 것만큼 미련하고,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현실에서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이 많은 선배들을 밀어낸 것을 마치 자랑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머지않아 똑같은 모습으로 자신이 밀려났을 때 뼈저리게 후회하지 말고.

덧붙이는 글 | 제 글은 개인 브런치에 함께 실립니다.


태그:#세월, #나이, #노트북, #업무,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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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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