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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마스크를 쓰고 눈으로 소통하는  세상을 표현한 그림
 코로나19 이후 마스크를 쓰고 눈으로 소통하는 세상을 표현한 그림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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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을 앞둔 엄마를 수요일에 만난다. 설렌다.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이런 방법도 있구나 싶다. 거의 반년이 넘도록 엄마의 손을 잡지 못했다. 얼굴을 맞대고 비비지 못했고, 가까이 눈을 마주하고 앉아 얘기 나누지 못했다. 생이별이 따도 없다. 코로나19가 가져온 현실이다.

치과 치료를 하기 위해 의료원에 엄마를 모셔가기로 했다. 뿌리가 약해진 앞니가 툭 튀어나와 식사하는 데 걸리적거려 불편할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께 문의해 보고 이를 뽑아도 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잡힌 약속이다.

치과 치료도 중요하지만, 엄마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코로나 속 절호의 기회(?)여서 더 기다려지는 게 사실이다. 물론 마스크를 쓴 상태로 만나야 하지만 이게 어딘가.

투명 아크릴판을 사이에 둔 2미터 남짓의 거리 두기, 마스크를 낀 상태로 휠체어에 앉은 엄마는 마치 밖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면 눈웃음 지으며 맞이하던 모습 그대로 요양원에 찾아오는 자식을 눈으로 맞아 주었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서글픈 만남 

요양원에 모신 지 몇 달 되지 않아 코로나 상황이 왔다. 생전 마스크 한번 써보지 않고 살았던 엄마의 입에 마스크가 걸려 있고, 서로 마스크를 쓰고 마주해야 하는 일이 낯설고 어색했다. 나이 든 엄마는 쉽게 이해하지 못할 풍경이다. 게다가, 아무 때나 가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요즘은 비접촉 면회다. 당연히 예약해야 하고, 1회에 2인까지만 가능하며, 반드시 KF94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한다. 접촉도 안 되고, 음식물 섭취도 안 된다. 이제는 철저한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한다.

백내장 수술을 받은 엄마는 시력이 괜찮아서 멀리서도 우리를 쉽게 알아보지만, 연로하거나 시력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은 자식들 얼굴도 또렷하게 볼 수 없다고 한다. 희미하게 보이는 자식들을 향해 더듬더듬 애타는 손짓을 하며 자식들의 목소리에 힘껏 귀를 기울이며 몸을 숙인다.

면회 왔던 자식들이 훌쩍 가고 나면 어르신들의 상심이 크다는데,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사회복지사님의 우려 또한 코로나19가 가져온 어이없는 현상 중 하나다. 자식들을 맘껏 보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다 보니 우울해하시는 분들도 많이 생긴다고 한다. 코로나 블루는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도 겪는 일이 되었다.

엄마를 잠깐 모시고 있을 무렵 마침 텔레비전에서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두어 번 본 영화였으나 볼 때마다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틀어 놓았다. 귀가 약간 어두운 엄마를 위해 장면 설명을 해줬다.

여주인공이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였던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나 보다. 그걸 본 엄마가 한마디 한다.

"앞길 구만리 같은 것이 어찌 한숨이냐."

나는 쉰일곱이란 나이를 통과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 눈에 내 나이는 아무 걱정 없이 살 나이라고 생각한 것일 수 있다.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나이가 주는 정체성과 삶에 대해 회의하고 흔들린다. 엄마는 당신 보다 한참이나 젊다고 생각한 딸이 무엇을 해도 가능한 나이를 살고 있다고 여겼을 법도 하다.

베란다 밖에서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우리도 날 따뜻해지면 휠체어 타고 커피 마시러 가자 엄마!"
"그려!"
"2월인데 눈이 내리네.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어. 엄마!"

  
엄마와 함께 가곤 했던 봄이 오는 길
 엄마와 함께 가곤 했던 봄이 오는 길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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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노인주간 보호센터를 다니던 엄마는 고단함을 눕히며 금세 코를 골며 단잠으로 빠져들곤 했다.

아이가 성장을 향해 가는 과정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면서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과정에도 삶의 마디마다 그런 '결정적 시기'가 있다.

구순을 앞둔 엄마도 지금 그 과정을 걷고 있다. '내가 이 집을 벗어나면 갈 곳은 요양원밖에 없으니 많이 움직이면서 하루하루 잘 살아내야겠다'던 아는 분의 말씀처럼 엄마는 모든 삶의 순간순간을 다 통과하며 주어진 여생을 사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는 결국 먼저 산 사람들의 삶을 쫓아가는 일에 불과하다. 각자의 개인차는 있으나 비슷비슷하게 살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보면 누구도 삶이라는 거시적인 틀에서 예외 없다.

사람을 만질 수 있다는 것. 가깝게 앉아 맘껏 웃고 울며 감정을 교류한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한 것이 코로나19다.

엄마에게 꼭 '특급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엄마의 나이가 아흔 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에 식사도 잘하고 별 기저질환도 없으나 생물학적인 나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어느 날부터 간절한 바람 한 가지가 생겼다. 엄마가 코로나19를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것이다.

"내가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냐. 내버려 둬도 저절로 먹은 것이 나인가 보다!"

엄마는 가끔 자신의 나이를 들으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라곤 했다. 이번에 만나면 당신의 나이를 말해주면서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해줄까 보다.

엄마가 계신 요양원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일정이 3월 30일~4월 13일 기간 동안 총 3회로 나누어 65명의 어르신과 종사자를 대상으로 접종이 진행된다'라는 안내를 받았다.

백신 접종을 무사히 잘하고 별 탈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하루빨리 마스크 없이 맘껏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를 만난다.

그동안 못다 한 말들 다 쏟아놓을까? 그것도 아니면 엄마도 코로나19를 씩씩하게 잘 견뎌내고 있다고 얼굴이나 한번 쓰다듬으며 특급 칭찬을 해줄 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코로나19, #마스크,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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