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 JTBC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대답에 머뭇거리게 된다. 돌아가고 싶은 시점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때문이다.

다만 오늘 하루를 잘 살아 내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안다. 하지만 자의건 타의건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면, 입장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때로 돌아가 소중한 사람을 살리고 싶을 것이 자명할 테니 말이다. 소중한 사람을 살리고 자신은 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의 주인공 서해(박신혜) 역시 소중한 뭔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살던 '디스토피아 미래'를 떠나왔다. 오고 가고를 반복하는 타임슬립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미래를 떠나 현재에 도착해 있다. 현재에 와있지만 믿을 사람은커녕 아는 이조차 단 한 사람이 없다. 고립무원의 현재에서 서해는 어떻게 살아남아 미래를 바꿀 것인가.
 
미래로부터 공격당하는 서해와 태술
 
<시지프스>의 또 다른 주인공 태술(조승우)은 가공할 기계인 업로더를 만들게 되고, 이 거대한 무기이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암투가 벌어진다. 서해는 태술을 구해야만, 업로더의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아야만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태술을 보호하려 몸을 던진다. 이 둘이 단속국에 쫓기며 직면하는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 드론의 추격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 인류에게 닥친 위험을 경고한다.

이미 살상을 전제로 개발된 최첨단 무기 드론이 지난해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솔레이마니를 표적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며 공포를 자아내지 않았던가. 서해와 태술이 최첨단 무기 드론에게 쫓기는 장면은 스릴 만점의 액션을 펼침과 동시에, 인류가 맞닥뜨린 공포, 즉 표적이 되는 순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테크놀로지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인류를 구원하리라 믿은 테크놀로지는 그 통제권을 상실하는 순간, 인류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된다.
 
자신의 수첩에 적힌 메모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 서해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태술로 인해 위태롭다. 단속국과 미래 악당인 시그마에게 쫓기며 목숨을 위협받는 태술 역시 혼란스럽다. 형의 생존을 믿지만 아무도 이를 믿어주지 않고, 믿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낯선 서해는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을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 JTBC

 
태술에게 형은 아픈 손가락이다. 자신의 비틀어진 욕망이 형을 잃게 했다고 자책하기 때문이다. 죄책감으로 쓰라린 태술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설득하는 서해가 믿기지 않지만, 차츰 퍼즐처럼 맞춰지는 의문의 조각들은 서해의 말이 진실임을 가리킨다. 둘은 죽음의 위기를 몇 고비 넘기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 통틀어"(태술) 둘밖에 없음을 직감한다.

둘이 의기투합하는 과정 속에 드라마는 전쟁 속에 피는 꽃, 사랑이라는 로맨스를 어김없이 가미하려 한다. 미래 어느 순간에 찍었을 둘의 결혼사진을 비춤으로써 두 사람 관계의 진정성을 증명하려 하지만, 왜 이 둘이 강력히 결속하려 하는가를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아슬아슬한 추격과 도피 서사의 몰입을 방해하는 드라마 속 성인지 감수성의 부재도 옥에 티다. 태술을 압박하기 위해 단속국 황현승(최정우)이 "내일 미투 기사 나갑니다"라고 협박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성 폭력을 증언한 미투의 피해자들은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태술이 갑자기 나타난 서해의 정체를 캐물으며 "원 나이트 이런 거냐"며 꽃뱀화하는 장면은 남성 중심의 만연한 여성 혐오가 여과 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미래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드라마 속 대사는 제작진이 새겨야 할 경구여야 한다. 목전의 여성 혐오를 극복하지 못하고서, 미래에 출몰할 여성 혐오를 무슨 수로 막겠는가.
 
인류는 값비싼 대가 치를 준비가 되어있는가
 
태술은 현재에서 생일을 맞은 서해를 놀이공원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서해는 그토록 보고 싶던 현재의 엄마를 마주한다. 성장한 미래의 딸을 알아볼 수 없는 엄마와 우연한 부딪침을 가장해 타인처럼 이야기 나누는 서해의 마음은 기쁘고도 슬프다. 핵 전쟁으로 멸망한 미래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가족을 구한 엄마의 자리는 서해에게 얼마나 우뚝하겠는가. 그래서 엄마(가족)를 죽지 않게 하는 일은, 범박한 오늘 하루를 그저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일과 같은 것이다. 서해가 "미래는 바뀌어. 난 바꿀 수 있"다고 다짐하고 믿고 헌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테넷>의 주인공들 역시 인류 멸망을 저지하기 위해 미래를 바꾸는 작전을 실행한다. 악당 사토르(케네스 브래너)가 핵폭탄으로 세계 3차 대전을 야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주인공들은 최첨단 기술 인버전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고군분투한다. "미래로부터 공격당하고 있"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 위험천만한 "시간을 이용한 협공"을 벌인다. 한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라는 대전제를 바꾸지 않는 영화는, 그렇다면 바꿀 수 없는 "일어난 일"을 어떤 대가를 치름으로써 운명의 흐름을 뒤집을 것인가를 재우친다. 일어난 일을 막을 수 없다면, 무한 반복되는 인버전을 감행하는 영화 속 지난한 작전은 무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일어난 일"은 누군가의 숭고한 희생으로만 대속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JTBC 수목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 JTBC

 
지난해 방영된 MBC 드라마 < 365 : 운명을 거스르는 1년 > 역시 과거로의 복귀(리셋)를 통해 무엇을 바꾸고 싶다면, 소중한 무언가를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주인공들은 1년 전 과거로 돌아가지만, 불행하게도 자신들의 운명(죽음)을 바꿀 수 없는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다. 또한 드라마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당사자가 욕망을 본질을 탈각하지 않는 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냉혹히 말한다.

이 드라마 역시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임을 강하게 환기시키며, 죽음이라는 자신의 극단적인 운명을 바꾸는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기 힘든 과정임을 주지시킨다. 즉 각자도생이라는 고립과 독단으로는 얽히고설킨 너와 나의 운명에 출구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운명의 흐름을 뒤집기 위해선 타인의 숭고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암시하는데, 이는 타인의 운명에 대한 나의 역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운명을 전환시키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걸고 개입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결정이던가. 결국 절체절명의 순간을 되돌려놓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름으로써 서로에게 기대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이 불가해한 정신 영역인 자기희생은 인류의 가장 큰 아이러니지만, 어떤 역사가 증명하듯, 운명의 변곡점엔 누군가의 웅숭깊은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서해와 태술 역시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라는 전제를 두 어깨에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복해서 굴러 내리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신화 속 시지프스의 고달픈 운명은 서해와 태술의 미래를 바꾸려는 무모한 모험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혹독한 운명에 맞짱 뜰 인간의 유일한 무기인 자기희생을 서해와 태술은 과연 어떻게 맞이하게 될 것인가.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시지프스> 핵 전쟁 자기희생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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