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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배우기 백 번 낫네.
 영어가 배우기 백 번 낫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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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불어를 배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어가 세계공용어였으면 어쩔 뻔했어? 영어가 배우기 백 번 낫네.

영어는 문법적 성도 없고 존댓말/반말도 없고 문법도 간결하여 뜻이 명확한 편이다. 영어 알파벳도 간단하고 쓰기 쉽다. 노르만 정복 전의 고대 영어에서는 남성, 중성, 여성의 세 가지 성이 있었으나 현대 영어에서는 사라졌다.

불어는 모든 명사에 여성/남성이 있어서 따로 외워야 하고, 성/수/인칭에 따라 동사변형이 달라지며, 시제도 많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축약과 자리바꿈도 많다. 알파벳에 악썽(accent: Ç ë é è â 같은 것)도 있어서 쓰기 번거롭다. (단, 발음 면에서는 영어가 극도로 불규칙해서 불어보다도 까다롭다. 영어 발음이 불규칙적으로 불규칙적이라면, 불어 발음은 불규칙적으로 규칙적이라고나 할까.)

영어가 완벽한 언어는 아니지만 꽤 중립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존댓말/반말이 없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한국어에 뿌리박힌 연령주의, 서열주의, 신분주의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생들 중에 한국어의 존댓말과 반말이 어렵지만 매력적이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눈에 씐 콩깍지 때문에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모든 것이 '쿨'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복잡한 호칭과 어미마저 다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이런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존댓말과 반말에 대해 물어올 때, 나는 속으로 난감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존댓말-반말이 싹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 "No! Stop! Don't!"를 외치라고 가르치는데, 한국어로 이 표현들이 번역될 때 '존댓말 패치'가 자동으로 붙는다는 문제가 있다. 가해자에게 안 된다고, 싫다고, 멈추라고 외칠 때도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고 존댓말로 외치는 연습을 하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면 공손과 순응이라는 상반된 태도 속에 저항과 거부라는 메시지를 담게 되어 그 효과가 약화한다. 지금 나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가해자에게 존댓말이 웬 말인가?

영어로 말할 때는 십 대 청소년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칠십 대 어른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같은 말투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는 오직 동갑끼리만 즉시 친구가 될 수 있고, 한두 살 차이만 나도 '언니, 오빠, 누나, 형'이라고 부르며 친구가 아닌 사이로 분류된다.

동갑이 아닌 사람들끼리 진짜 친구가 되기로 하려면 특별히 친밀해졌다는 상호 간의 결의하에 이제부터 친구 사이임을 선포하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 영어로 말할 때는 50살 차이가 나도 친구가 될 수 있는데, 한국어로 말할 때는 한 살 차이만 되어도 일단 언니 동생 사이였다가 정 친해지고 싶으면 힘들게 친구 하자고 새롭게 합의를 맺어야 하다니!

히딩크는 이런 연령주의가 한국 축구의 치명적인 단점임을 간파했다. 공을 이쪽으로 패스하라는 신호는 오직 나이 많은 선수에서 나이 적은 선수 쪽으로만 간다는 것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이러면 경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설명했다. 그래서 경기장에서는 무조건 서로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 뒤로 경기력이 상승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언어에 새겨진 어두운 과거의 유산을 걷어낼 수 있을까?

한국어에만 과거의 잔재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어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쓰는 단어부터 다르다. 중국어에는 온갖 안 좋은 특성은 다 여자에게 몰아넣었다. 간음(姦淫), 질투(嫉妬), 간사(奸邪), 요망(妖妄) 방해(妨害) 등의 한자에 여성혐오의 유산이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외할머니와 더 친밀한데도 외할머니는 外할머니이고 친할머니는 親할머니이다.

영어에서도 옳은(right) 쪽은 오른(right)쪽이고, 왼쪽은 불길한(sinister) 쪽이라,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다. 앞서 말했듯 문법적으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문법적 성은 많은 언어에 남아 있어 불필요한 고정관념을 생기게 하고 언어 학습을 어렵게 만든다.

인도의 뿌리깊은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직업, 결혼, 거주지역 등 모든 분야에 박혀 있고 인도 언어에도 역시 카스트의 유산이 깊이 잔존해 있다. 카스트에 따라 단어, 존댓말/반말, 속담 같은 관용적 표현 등이 달라지고 언어 자체에 편견과 악습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달리트(불가촉천민)들은 제도뿐 아니라 언어로도 속박당한다. 이 때문에 인도의 전통 언어를 버리고 영어를 배우자는 달리트 활동가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차마르(불가촉천민의 일종)처럼 훔치지 마라'(chori-chamari na karna) 같은 속담은 편견과 혐오를 담고 있다. '방기(청소부 카스트)로 만들어버릴 거야!'(I'll make you a bhangi!)는 협박으로 쓰인다. 이렇게 달리트에게 상처를 주는 표현이 드라마에 나와도 제작진은 개의치 않는다. 항의하는 사람은 속담 갖고 과민하게 구는 것으로 치부된다.

프라남(pranam)이라고 말하며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는 인사를 달리트들은 받지 못한다. 프라남 인사를 받는 사람은 축복받을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달리트들에게는 그 권리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 인사 굿모닝(Good morning)은 평등하게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다.

인도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영어의 여신

이런 점에서 달리트 사상가, 저술가이자 활동가인 찬드라 반 프라사드는 달리트들을 향해 카스트 차별을 담고 있는 인도 언어를 버리고 영어를 자신들의 모어로 삼자고 주장했다. 달리트들에게 영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인도 북부의 방카라는 마을에서 영어의 여신을 위한 신전도 만들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문맹인 민중들에게 한글을 전파하기 위해 각설이패, 부적, 어린이들의 동요 등을 활용하는 장면과도 겹친다.)

이 여신상은 전통적인 의상을 거부한다는 상징의 큰 모자를 쓰고 펜과 책을 들고 있다(관련 기사 링크). 달리트들도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써 있는 인도의 헌법 책이다. 여신은 컴퓨터 위에 서 있는데, 영어가 사회경제적 사다리를 오르는 수단이 되어준다는 의미이다.

힌디어, 마라티어, 타밀어, 탈루구어, 벵갈어, 말라얄람어 같은 인도 언어는 카스트 제도와 얽혀 있어 한두 마디만 하면 이미 말투와 단어 사용으로 카스트가 티 나지만, 영어는 카스트 제도에서 자유롭고 중립적이다. 게다가 인도의 공식 언어이기도 하다. 영어를 못 하면 좋은 직업을, 나중에는 직업 자체를 구하지 못하게 되는 쪽으로 인도 사회가 변하고 있다.

달리트 어린이들은 영어를 배워야 사실상 세습되는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 의사, 엔지니어, 교사 등의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영어를 해야만 한다. 카스트는 직업과 혈통 모두에서 고착화되어있는데, 영어를 쓰는 달리트가 세습 직업에서 벗어나면 혈통 세습에서도 벗어날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 찬드라 반 프라사드의 주장이다.

민주사회에 어울리는 민주적인 언어가 따로 있을까?

인도네시아 공식언어는 '바하사 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어)'라고 불린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바하사 인도네시아 단어는 아마 '나시 고렝'(볶음밥)일 것이다. 제국의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가 식민지 독립 후에도 공용어로 남은 많은 나라들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어를 몰아내고 새로운 공식언어를 선택했다.

독립투쟁 중이던 1928년 젊은 민족주의자들이 모여 선언한 '청년의 맹세(Sumpah Pemuda)'에서 독립투쟁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어를 국가 언어로 선택하기로 한다. 1945년 독립하면서, 신생독립국 인도네시아의 공식 언어는 '인도네시아어'라고 선언하고, 공용어로 확산시키기 위한 국가 단위의 노력을 전개하게 된다.

식민 제국의 언어인 네덜란드어도 아니고 가장 사용자가 많았던 자바어도 아닌 인도네시아어를 공식 언어로 결정한 것은 뜻밖의 일로 여겨진다. 당시 인도네시아어는 모어 사용자가 5%밖에 되지 않았다. 자바어를 모어로 사용하던 사람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거의 50%에 가까웠고 자바어가 정치, 경제, 종교, 행정, 문학에서 주도적 언어였다. 이 자바어를 제치고 왜 바하사 인도네시아가 선택되었을까?

자바어는 사용자 숫자는 많았지만 국한된 지역에서 쓰이고 있었고 다른 섬 지역 사람들을 통합시키기 어려웠다. 인도네시아어는 비록 사용자는 적었지만, 천 년에 걸쳐 전 지역에서 고루 쓰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모어 사용자는 적었지만 인도네시아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사용자가 적었지만 '글로벌'한 교역어었던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자바어에게는 큰 단점이 있었다. 경어가 매우 복잡하게 발달하여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단어, 문법, 화용론, 심지어 말하는 속도까지 달라진다. 신분제 사회의 속성을 반영하는 자바어는 독립투쟁 중이던 젊은 지식인들에게 거부감을 샀다. 인도네시아어는 모두에게 평등한 문법을 갖고 있어 새로운 민주 국가의 공용어에 어울리는 특성을 갖췄다.

게다가 문법이 간단하여 배우기 쉽고 발음도 단순하여 어떤 모어 사용자라도 접근하기 쉽다. (인도네시아어에도 saya(저)/aku(나), Anda(당신), kamu(너) 등 인칭대명사에서 경칭, 비칭이 있긴 하지만, 딱 그 대명사만 다르게 쓸 뿐 문장의 다른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할머니, 진지는 드셨어요? 아버지가 왔어요'처럼 상대에 따라 단어, 어미가 완전히 바뀌고 압존법까지 있는 한국어와 비교하면 정말 쉽고 규칙적이다.)

인도네시아는 독립 후 오랜 독재로 고통받았지만, 청년회의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어 이제 인도네시아어는 확실히 공식언어로 자리잡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된다. 대한민국도 민주공화국을 선포할 때 경어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시도를 했으면 어땠을까?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도 근대민족국가를 세우면서 언어를 정리할 때, 이왕 정리하는 김에 복잡한 문법을 간단하게 만들고 성을 없앴으면 어땠을까?

태그:#바하사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어, #자바어, #카스트, #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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