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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과 밭이 펼쳐진 한가한 풍경, 마을 정자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집 지키는 개. 시골 마을을 떠올리면 으레 떠오르는 풍경이다. 언뜻 낭만적으로 보이는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1960~1970년대, 젊은이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빠져나갔고 농촌에는 그들의 부모가 남았다. 시간이 흘러 노부모마저 세상을 떠나자, 남은 것은 텅 빈 집이었다. 특히 1970~1980년대 옥천에는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된 마을 주민들이 대거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이때 생긴 빈집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지금, 빈집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1만 명에서 3천여 명으로... 빈집은 사회문제다
 
충북 옥천군의 한 빈집
 충북 옥천군의 한 빈집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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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청산면 지전리, 1914년 행정구역 조정 이전에는 옥천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다. 면사무소와 가까운 큰길에는 오래전 방송에 출연했다는 식당과 세탁소, 동네 슈퍼가 자리 잡았고 그 뒤편으로 주택이 빼곡히 펼쳐졌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빈집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마을회관 너머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군데군데 빈집이 눈에 띈다. 안쪽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빈집은 더욱 즐비해진다. 한 골목이 통째로 빈집거리가 되어 버린 곳도 있다.

"내가 한 40년 전쯤에 지전리로 이사를 왔었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지요. 지금은 다 빠져나간 거예요.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와 보면 이렇게 처참해." (지전리 박진수 이장)

함께 마을을 둘러보며 발견한 빈집만 20여 채다. 빈집의 종류도 아주 오랜 시간 방치되어 당장 철거해야 할 집부터 내일 사람이 들어가 살아도 무리가 없을 법한 집까지 다양하다. 박진수 이장이 이곳을 찾은 1970~1980년대만 해도 1만 명을 넘던 청산면이지만 이제 인구수는 3천여 명이다. 그에 따라 지전리 가구 수 346개로 줄었다.

빈집은 크고 작은 마을의 문제로 이어졌다. 잡초가 무성한 앞뜰에 버려진 쓰레기, 깨진 창문, 무너진 담은 무엇보다 마을의 미관을 해치고 분위기를 해치곤 한다. 방치된 빈집은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라 주민과 행인들에게 '관리되지 않는 장소'로 인식돼 화재와 범죄에 취약한 우범지대가 되기 쉽다. 눈에 띄는 범죄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주민들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빈집 문제는 지전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빈집 정비를 위한 올해 조사결과, 옥천군에는 348개의 빈집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314가구, 2020년 326가구에 이어 20가구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실제로 빈집은 옥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20년도 더 되었다는 안내면 인포리의 한 빈집 안뜰에서는 '이곳에 오물을 버리지 말 것'을 사정하는 문구도 찾을 수 있었고 글씨를 적은 종이조차 빛이 바랜 모습이었다.

동이면 석탄리 마을 입구에도 빈집은 있었다. 이를 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동이면 남곡리 마을 한편에는 대청댐 건설 이후 빈집이 됐다는 낡은 기와집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흉물스럽고 보기 안 좋은' 빈집이지만 마음대로 집을 철거하거나 개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빈집에도 엄연히 주인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빈집에 얽힌 복잡한 속사정
 
충북 옥천군의 한 빈집
 충북 옥천군의 한 빈집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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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소유자는 대부분 이전에 거주하던 부모의 자녀들이다. 노쇠한 부모가 집을 비우고 나면 빈집의 소유권은 자연스럽게 자녀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외지에 나가 있는 이들이 고향 집에 돌아와 사는 일은 거의 없다. 빈집을 소유할 뿐, 제대로 된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기에 빈집은 날마다 낡아간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쓸모없는 빈집이라면 부동산에 맡겨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내놓거나 집을 허물어 빈 땅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옥천읍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농가 주택을 찾는 이들은 꾸준히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수요가 많은 집'은 "어느 정도 마당이 있고 관리 상태가 나쁘지 않은 주택"이다. "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구입해 정비할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에 맞는 빈집은 많지 않고 해당 빈집이 매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장명수 충청북도지부 옥천군지회장은 "위치와 상태가 괜찮은 빈집을 봐두었다가 매매를 권유하기도 하지만,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나중에 들어와 살겠다', '부모가 살던 집이라 팔기가 거북하다', '자녀들 간 의견을 합치기가 어렵다', '빈집을 팔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몇 푼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 외에 손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폐가는 수요도 없을 뿐더러, 허물고 정리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소유자가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형편이다.

빈집은 그들에게 단순히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아니라 '옛 고향의 정이 남아 있는 공간' 혹은 '오랜 시간 방치돼 손을 댈 수 없는 공간'인 셈이다. 돌아가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팔 수도 없는, 복잡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빈집을 그대로 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빈집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마을 주민들에게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기사] 월 15만원에 집 빌려주자, 동네 소원이 이뤄졌다 http://omn.kr/1sk9n

월간 옥이네 2021년 3월호(통권 45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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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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