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4 19:12최종 업데이트 21.03.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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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흙을 밀고 올라 온 냉이 찐감자의 폭실한 분처럼 봄흙이 잘 부서진다. ⓒ 최수경


완연한 봄이다. 산밭에 나가 얼었던 땅을 들여다본다. 얼었다 녹으며 떠나버린 겨울 공간이 준 여운을 차마 채우지 못하고 봄 흙은 긴장한 채 서 있다. 만져보니 마치 찐감자에 포실하게 일어난 분과 같다. 잘 부서진다. 냄새는 어떤가. 햇살에 달궈진 흙에서 흙 그을음이 투명하게 올라가고 있다. 아지랑이에도 냄새가 있었구나. 겨우내 고팠던 자연의 내음이다.
 

봄을 알리는 갈마가지 꽃. 숲에서 만나면 반가운 꽃이다. ⓒ 최수경

  

붉은 로제트식물. 겨우내 언 땅에 몸을 낮춰 생명을 이어왔다. ⓒ 최수경


3월 경칩이 지나 산과 들로 마실을 나가면 나는 으레 음습함이 깃든 곳을 향한다. 이른 봄의 갈마가지나무꽃을 마주한 숲이라면 해빙해 흐르는 물 줄기를 찾게 되고, 붉은 로제트 식물이 대지를 덮은 들이라면 먼지 이는 풀대를 헤치고 개울과 웅덩이를 찾는다.  
 

대전 추동습지에 있는 물웅덩이의 개구리 알들 ⓒ 최수경

    

산란처에서 암컷을 기다리는 북방산개구리 ⓒ 최수경


내가 젖은 땅을 찾는 이유는 특별한 것들을 영접하기 위함이다. 소생하는 현장을 마주하고 싶어서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산개구리들은 물웅덩이로 찾아들어 저마다 짝을 찾느라 바쁘다. 울음소리가 가히 산천이 떠나가게 시끄러울 때엔 귀만 열면 발걸음이 그곳으로 데려다준다. 춘분이 지나 울음소리가 잦아들면 엄마의 자궁 같은 물웅덩이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잔치가 시작된다.
 

산개구리 알(속리산 계곡) ⓒ 최수경


갓 산란한 맑고 투명한 알부터 녹색을 띠는 알까지 다양하다. 어떤 웅덩이 바닥은 이미 올챙이가 된 녀석들의 세상이다.
  

알에서 깨어나 올챙이로 변신하고 있다(대전 도룡동). ⓒ 최수경

 

두꺼비 알 흑진주 목걸이 같이 길게 알을 낳는다(대전 월평공원). ⓒ 최수경

 
흑진주 목걸이 같이 생긴 것은 두꺼비 알이다. 투명한 우무질(젤리와 같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상태의 물질)에 포도 씨앗 같이 생긴 것이 든 두 가닥의 알주머니는 도롱뇽 알이다.

물뭍동물의 수난
  

도롱뇽의 알 두 가닥을 나뭇가지나 돌에 붙인다(대전시 월평공원). ⓒ 최수경


알의 수정과 발생이 모두 온전한 생애사로 이어지기까지 굴곡이 많다. 올챙이 시절에 잡아먹히거나 성체가 되어 뭍으로 이동하다가 길에서 차에 치여 죽기도 한다. 어릴 때에는 물에서 아가미 호흡을 하지만 성체가 되면서 폐 호흡을 한다. 따라서 물에서 영원히 살 수 없고 뭍에서만 유전자를 잇기도 어렵다. 물에서 반생애를, 뭍에서 반생애를 살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을 물뭍동물이라 칭한다. 물과 뭍의 두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사라지면 절멸하는 대단히 위태로운 동물인 셈이다.  
 

산란을 위한 두꺼비 이동. 암컷 위에 수컷이 올라탔다(대전 추동습지). ⓒ 최수경

 
요즘 개구리나 두꺼비는 쉽게 보기 어렵다. 이들이 사람들 눈을 피해 다니는 이유도 있지만, 간혹 사람들 눈에 띌 때 마치 원숭이라도 보듯 신기해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증표다.

두꺼비는 우리나라 우화나 속담에 자주 나오는 친숙한 동물이었다. 재래식 흙집 부엌의 한 귀퉁이에 사는 두꺼비는 어머니가 밥풀을 주어 키우다시피 했고, 뱀을 잡아먹거나 쥐를 잡아먹으며 집을 지켰다. 엄마 젖 빠는 때의 아이에게 떡두꺼비 같다고 한 것은 큼지막하고 건강해서 좋다는 칭찬이었다.

조상들은 두꺼비가 영물이라 믿었다. 콩쥐의 깨진 물항아리를 막아줄 만큼 보은한다 여겼으니 두꺼비는 생활 가까이 우리 민족과 함께 숨 쉬어 왔다.
     

산란을 위해 목숨걸고 이동하는 두꺼비(대전 찬샘마을 인근). ⓒ 최수경

   
그런데 이 물뭍동물이 지금 수난을 당하고 있다. 동면에서 깨어나면 생체시계가 산란을 위해 물가로 움직이도록 유도해 개구리는 쉼 없이 이동한다. 암컷보다 수컷이 많다 보니 수컷은 물에 다다르기 전에 뭍에서 발견한 암컷의 등에 올라타 찜을 한다. 한 녀석이 찜을 했어도 두 놈 세 놈의 수컷이 암컷에 올라탄다.

수컷은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가락으로 암컷의 배를 부여잡는다. 물가로 가는 데 수컷은 버거운 등짐이 된다. 암컷이 가는 길에 공사로 펜스가 쳐져 있으면 멀리 돌아간다. 작년에 갔던 물웅덩이가 물이 말랐으면 또 다른 곳을 찾아 멀면 2km에 이르는 대장정을 한다.
  

유자관을 하염없이 이동하는 두꺼비. 나갈 통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대전 만인산). ⓒ 최수경

 
이 과정에서 도로를 건너고, 하수구를 통과하고, 콘크리트 길을 지나야 한다. 하수구는 콘크리트로 발라져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볕에 한껏 고온으로 달아오른 직각 콘크리트 수로는 이들에게 스트레스일 수 있다. 많은 개체가 자동차에 치이고, 수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당도해야 할 물웅덩이는 어떤가. 이들이 향하는 곳은 습지다. 습지는 인류 역사상 버려진 땅을 의미했다. 습지는 작은 물웅덩이에서부터 도랑·하천·강·저수지·논·댐호수·간척지·연안 갯벌까지를 포괄한다. 사람들은 모여 살면서 땅을 일구고 작물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물을 가두려고 습지를 개발했다. 제방을 쌓고 물길을 넓히고 준설을 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메워버려 도로와 건물을 지었다. 버려진 땅이라 여기기에 개발하기 쉬운 공유지인 만큼 습지에 대한 개발 압력은 거세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이들의 삶터는 훼손된다.
 

물이 마르면서 함께 말라버린 두꺼비 알(대전 월평공원) ⓒ 최수경

 
습지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유용한 도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습지냐도 중요하다. 손상되지 않은 습지, 건강함이 유지되는 습지가 필요한 이유는 산소가 부족한 축축한 혐기(산소를 싫어함) 조건에서 죽은 식물들이 천천히 분해됨으로써 탄소가 풍부한 토양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양은 탄소를 흡수하고 보유하는 역할을 한다.
   

강변습지(금강의 영동 호탄습지). 배후습지로 생물종다양성이 풍부하다. ⓒ 최수경

 
그렇다면 건강한 습지란 어떤 곳인가.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습지를 말한다.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이자 안전하게 종의 번식과 계승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원 헬스(One health)라는 말이 있다. 환경이 고리 환(環)자를 쓰듯이 인간과 동물, 자연환경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생태계는 다학제적(多學際的 학문 간의 범주를 넘나들며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인간에게만 이롭거나 자연에만 이로운 것이 아닌 모두에게 이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이로운 길
 

신도시 개발 전의 원흥이방죽 구룡산과 원흥이방죽 일대가 산남신도시로 개발됐다. ⓒ 원흥이두꺼비생태공원

   

신도시 개발로 사라질 방죽을 시민이 되살린 원흥이 방죽(청주시 원흥이두꺼비생태공원) ⓒ 최수경

 
청주 산남신도시 땅에 매장 당할 위기에 있던 원흥이방죽을 시민의 힘으로 보전해 산남지구의 보석으로 빚었다. 사람들이 수백 년 이어온 노거수(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와 뭍생명들과 공생하는 방안을 찾은 원헬스인 것이다.

더 나아가 원 월드(One world)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코로나19가 천산갑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처럼 야생동물이나 가축이 숙주가 되어 인수 공통 전염병이 만연한 만큼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인디언들은 '빛나는 솔잎과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인데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느냐'라고 했다. 습지를 복원하거나 보호하고 나아가 건강한 습지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개구리나 두꺼비를 보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조절과 지구온난화를 더디게 하는 탄소 절감 기능뿐만 아니라 원 헬스적 접근에서 사람이 살 절실한 방안이다.
 

사용하지 않은 물웅덩이 습지 개구리나 두꺼비의 안정적인 서식 공간은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대전 도룡동). ⓒ 최수경

   
봄 마실에 귀 기울여 보자. 작년에 들었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올봄 그치지 않았나. 원 헬스(One health)로 돌아가 무심했던 개구리 울음 소리가 인간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절실한 소리라는 것을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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