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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불균형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수도권에 사회‧문화‧경제‧교육 관련 편익 시설이 몰려 있는 것이 그중 하나다.

반면 원자력발전소나 폐기물처리시설 등 혐오시설이나 위험시설은 비수도권, 특히 낙후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에 집중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소비와 배출만 하는 동안, 그 사회적 비용과 부담은 비수도권 지역이 져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인 것이다.

몇 년 사이 '공정'이 우리 사회 화두였음에도 우리 국토는 여전히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이렇다 보니 전 국토의 1/10에 불과한 수도권에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몰려 살고, 농어촌은 인구 감소로 존립 기반을 위협받는 극단의 상황이 펼쳐진다.

최근 충북 옥천을 비롯한 전국 농촌에서 태양광 발전 사업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역, 공동체, 주민과는 상관없는 외부 개발 자본이 밀고 들어와 지역의 삶터를 파괴하는 일은 지금 이 순간, 전국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민낯일지 모른다.(관련기사 : 수상한 태양광 사업... 작은 농촌마을에서 벌어진 일 http://omn.kr/1s705)

경제 성장과 발전,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와 격차, 공동체 해체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 같은 관점과 궤를 같이 한다. 충북 청주를 기반으로 한 인권단체 '인권연대 숨'이 '도시 쏘댕기기'라는 이름으로 지역을 다시 바라보는 활동을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월간 옥이네> 3월호에서는 지난 2월 27일 진행된 인권연대 숨의 '도시 쏘댕기기 2탄 - 북이면 소각장' 동행 취재기를 담는다.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은 폐기물 소각장이 밀집해 환경‧건강 관련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곳이다. 지역 불균형, 환경파괴 문제까지 연결되는 이곳의 이야기는, 그래서 비단 이 지역만의 것이 아니다.

10년간 암 환자 60여 명... 환경부 건강역학조사 실시 
 
충북 청주 북이면의 한 소각장
 충북 청주 북이면의 한 소각장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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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면 폐기물 소각장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6년. 진주산업(현 클렌코)이 당시 97톤이던 소각 용량을 350톤 규모로 증설 추진하면서 지역사회의 반발이 일었던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러나 외부로 터져나간 것이 이때일 뿐이지, 지역이 겪고 있던 문제의 고름은 훨씬 오래 전부터 차오르고 있었다.

폐기물 소각장과 인접한 북이면, 내수면의 암 환자 발생률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 등이 그 예. 북이면 주민협의체에 따르면 소각장 주변 19개 마을에서 지난 10년간 발생한 암 환자는 60여 명에 달한다. 협의체는 2019년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환경부에 건강역학조사 청원서를 제출했으며 환경부는 이를 받아들여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부가 산업폐기물 소각시설로 인한 건강역학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이면 추학1리 이장이자 북이면 주민협의체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유민채씨는 "소각장이 마을 근처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공기가 좀 나쁘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협의체 자체적으로 2018년 4~5월 인근 마을 19곳 주민들을 만나 피해를 조사했어요. 암에 걸린 사람만 60여 명, 이 중 폐암 환자가 31명이었고요. 호흡기질환자도 많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평소 창문도 못 열어놓고 마당에 빨래도 못 널 정도로 새카만 분진에 고통 받고 있었어요."

충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김용대 교수팀이 진행한 조사 결과는 더 심각하다. 2001년부터 2016년 사이 5천여 명 남짓한 북이면 주민 중 105명이 폐암 진단을 받았다. 이 조사에 따르면, 폐암 발생 전국 평균을 1로 가정했을 때 북이면에 거주하는 남성의 경우 1.33, 여성의 경우 1.35의 비율로 폐암에 걸리는 셈이다.

수도권 규제 피해 시골로, 환경 피해는 주민 몫으로

북이면은 반경 3km 이내에 클렌코(옛 진주산업), 우진환경개발(주), 디에스컨설팅 등 3개의 폐기물 소각시설이 모여 있다. 이곳에서는 매일 500톤 이상의 폐기물이 소각된다. 북이면 일대에는 이밖에도 10여 개의 폐기물업체가 더 있다.

폐기물 처리업체가 한 지역에 이토록 몰리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민들은 수도권과 가까우면서 땅값이 싸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 등이 폐기물 업체의 구미를 당겼을 거라고 말한다. 수도권정비계획법(1994년), 수도권대기환경개선 특별법(2003년) 등 서울과 수도권의 환경규제가 강화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별다른 제재가 없는 지역으로 소각장이 몰려들어온 것이다.

폐기물관리법의 허점도 업체 측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루 처리용량이 100톤 이하일 경우 지자체의 도시계획시설결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100톤 이상일 때는 주민설명회 등의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 역시 형식적으로 치러져 '마음만 먹으면' 지역에 소각시설 하나 짓는 것은 큰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민채 이장은 "100톤까지는 그냥 신고만 해도 되니 우선 100톤 이하로 지역에 들어와 이후 차차 용량을 증설하는 식"이라며 "폐기물 소각시설에서는 '많이 태울수록' 이익이 되니 용량을 늘리려 하는데 이 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클렌코의 경우 2002년 12톤으로 운영되다 2006년 72톤, 2016년 96톤, 2017년 352톤까지 증설허가를 통해 계속 몸집을 불렸다. 그러나 정작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제대로 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관련법이나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관할 기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소각로를 가동하거나 허용기준치를 넘는 다이옥신 배출 등이 그것이다. 지역 안으로 밀려들어온 폐기물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한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의 몫이 됐다.

"자기 동네 쓰레기는 자기가 처리해야 한다"
 
유민채 북이면 추학1리 이장
 유민채 북이면 추학1리 이장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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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폐기물처리시설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중장기 발전방안'에 따르면 폐기물 총 발생량은 경기와 충남, 서울이 전국의 42.5%를 차지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 지역의 자체 처리량은 하위권에 머문다. 이런 폐기물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와 처리되는데, 청주의 경우 전국 소각업체가 처리하는 양의 18%를 처리하고 있다. 이런 식의 폐기물 처리 상황은 청주시 북이면 이외의 다양한 지역에서도 '몸살'이 된다.

이는 지역 환경과 주민을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알 권리에 대한 접근권 차단, 건강하고 안전한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 등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인권'과도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2018년 유민채 이장이 '소각장은 인권 문제'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것도 이 때문. 더불어 그는 이런 상황이 기후위기 시대, 식량안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농촌을 말살한다고 지적한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농촌과 농업, 우리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이곳(청주)만 해도 '청원생명쌀' 같은 브랜드를 만들어 홍보하고, 귀농·귀촌 인구를 유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고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이런 문제 시설을 계속 허가해주고 지역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입니까?

내 집 앞 눈, 내가 치우듯이 자기 동네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그 지역에서 처리해야 해요. 이런 문제가 한 번의 이슈로 끝날 것이 아니라 법과 체계를 바꾸는 것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소각장 싸움을 계속 이어온 저희의 바람입니다."

이날 현장을 함께 찾은 청주시의회 박완희 의원 역시 여기에 공감하며 법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박 의원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멸종위기종을 발견한다고 해도 포획 이주하는 것으로 정리하거나 저감시설을 추가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 맹점"이라며 "다이옥신 배출량 등을 검사하는 기관(한국자원순환에너지공제조합)도 해당 폐기물 업체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어 검사 결과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지적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탐방을 기획한 인권연대 숨 정미진 일꾼은 "북이면 소각장 문제에서 보듯 이런 문제는 인권과 지역 불평등과도 연결된 문제"라며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이런 현장을 직접 찾을 일이 별로 없는데, 이 활동을 통해 당사자를 만나고 지역사회를 이해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소각장 문제 등 후속으로 이어갈 수 있는 활동, 그밖에 지역과 관련한 문제와 해결책을 함께 탐색할 수 있는 활동을 계속 만들어가보겠다"고 덧붙였다.

월간 옥이네 2021년 3월호(통권 45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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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소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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