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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순창읍 신촌마을 임영락(81) 이장
 전북 순창군 순창읍 신촌마을 임영락(81) 이장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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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였으니까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구먼. 이장 임기가 2년인데 연임할 수가 있어요. 마을회관 지을 적에, 그 전 이장이 '회관 (짓는) 일은 형님이 맡으시오', 억지로 맡겨서 하다 본께 지금까지 했제. 이장만 10번째 연임하는 거제. 허허헛."

'마을이장 20년 장기집권.' 전국에 이런 마을이장이 또 있을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신촌마을 임영락(81) 이장은 청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순창군의 마을이장 311명 중에서 2번째로 나이가 많음에도 함박웃음을 터뜨릴 때면 청년에게서 느껴질 법한 해맑음이 전해졌다. 임영락 이장을 지난 4일 오후 마을회관에서 만났다.

마을회관 부지로 개인 땅 무상 제공

회관 안쪽 벽에는 '2003년 3월 8일 회관 준공식' 때 찍은 빛바랜 사진이 걸려 있다. 임 이장은 사진을 바라보며 "여기에 마을회관 지은 게 제일 큰일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에 인자, 부락 안에다가 땅을 좀 사서 지을라고 했더니 땅을 안 내놔. 내놓질 안 혀. 할 수 없이, 여기가 내 땅인데 그때 어머님이 살아계셔서 말씀드리고 회관을 지었제. 무상으로 사용승낙을 해 줬으니까 이제껏 사용하고 있제. 허허헛헛헛. 회관 건물을 2002년도에 4000만원에 맡겼어(지었어). 스물다섯 평이거든."

그는 1941년 순창읍 창림동에서 태어나, 순창농고(현 제일고) 다니던 1956년경 신촌마을로 이사왔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65년 세월이 흘렀다. 그는 보릿고개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장을 맡기 전에는 양잠(누에)조합에 있었어. 그때 순창에 양잠, 누에 안 키운 사람이 없었어. 누에가 보릿고개(4월ㆍ5월) 때 돈이 됐어. 양잠이 몰락하기 전까지는 양잠으로 부자 된 마을도 있어요. 5월에 보리 수확을 못 할 거야, 아마. 보릿고개 때 보리 모가지 잘라다가 찧어서 밥해 먹고 그랬응께. 보릿고개 이야기 하면 징그러운게. 아따."

33가구 48명 거주 신촌마을 "혼자 사는 사람 많아"

본인 재산까지 내놓고, 20년째 이장을 맡은 것이 그리 즐거울까. 그는 또 웃었다.

"내가 41년생이니까 오래 살았네. 허허허. 이장을 안 하려고 해도 억지로 마낑게 하긴 했는데, 마을 후배한테 '이장하기 정 싫으면 이 동네를 뜨라'고, 반강제로 승낙을 받아놨지. 그 사람이 젊지도 않아. 칠십이 넘었으니까. 나는 올해만 하고 인자, 진짜, 이장 내놓으려고 혀. 내 구상이 그렇다는 것이제. 허허허."

신촌마을은 3월 7일 기준, 33가구가 산다. 대모암에서 주월리까지 주민은 48명(남 18명ㆍ여 30명)이다. 임 이장은 다소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신촌마을은 노인들이 많으셔서 3분의 1 이상이 혼자 살제. 나도 혼자 살고. 안식구(아내)가 우울증으로 먼저 갔제. 15년 이상 됐응께. 제일 연세 많은 분은, 남자분이 아마 90세가 넘으셨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이장되고 나서 주민들이 함께 나이를 먹은 거지. 회관 준공식 때 서울에서 마을계를 만드신 분들이 내려오셔서 함께 사진 찍었는데, 많은 분이 돌아가셨지."

이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회관을 찾아가는 길,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주민 한 명을 봤을 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찾아오는 이가 없으니, 회관 난방도 만남 약속을 잡고서야 켰다.

"여그가 빈촌이여 아주. 대부분 농사 짓제. 농협 조합원만 21명이야. 노인 일자리를 많이 나가제. 글고 나나 돌아 댕기지. 요새는 돌아 댕기는 사람이 없어요. 코로나 전까지는 식사도 함께 다니고 혔제. 서울로 이사 가신 분이 1년에 한 200만 원씩 보내주셔. 노인들 식사 대접해 주시라고. 그럼 내가 모시고 가서 대접하고 그랬제. 노인들이 고기들을 좋아해 갖고, 고기만 드시러 가자고 그려. 허허허. 올해는 어쩔란가 모르겠어."
 
마을회관 벽에는 2003년 3월 8일 회관 준공식 때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임영락 이장은 2002년부터 이장을 맡아왔다.
 마을회관 벽에는 2003년 3월 8일 회관 준공식 때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임영락 이장은 2002년부터 이장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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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도로 마을 진입로 무산, 젤로 속상헌 일"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코로나 탓에 특별한 일은 없는 것일까. 임 이장은 "마을 길도 넓히고, 일이사 하기는 많이 했지"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은 농협에서 신청한 비료하고 비니루 같은 것 가져와서, 나눠 줬제. 작년에는 마스크를 몇 번이나 나눠 줬는지 몰러. 농협, 산림조합, 읍에서 각기 줬제. 근디 노인들이라 회관으로 나오셔서 받아가라는 말을 못 혀. 내가 차가 있으니까, 그때그때 차에 싣고 마을 한 바퀴 돌제. 지난번엔 마을 안쪽에 장례 추모공원인가 화장장 조성한다고 해서, 마을에서 50미터도 안 떨어져 진 곳이라 주민들과 반대해서 무산시켰지."
 

임 이장이 목소리를 높인 대목은 딱 하나다. 마을을 지나는 우회도로를 신설하면서 마을 진입로를 내지 않은 일이다. 그는 "군청에서 신경을 더 많이 썼어야 했다"며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회도로(담순로) 낼 때 (마을) 진입로를 내달라고 여러 군데에 건의했어. 국회의원한테, 도지사한테, 국토부에도 진정서 내고. 당시 군의 설계도에는, 우회도로 계획선이 저기 교성리에서 우리 집 앞으로 나 있더라고. 군에서는 그런 계획이 있으니까 진입로를 해 주겠다고 그랬는데, 몇 년 있다 보니까 그 계획선이 없어져 버렸어. 강(인형) 군수 있을 때 군에서 삭제를 해부렀더라고. 이장 하믄서 젤로 속상헌 일이제."

우회도로에는 마을로 통하는 계단만 놓았다. 일하러 가는 주민들을 실어 나르는 차를 타려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마이카(승용차) 시대', 진입로가 없어 코앞에 마을을 두고 2∼3킬로미터를 돌아야(운전해야) 하는 불편은 모두 주민 몫이다. 임 이장은 나이 들어 성하지 못한 몸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주민을 볼 때마다 행정이 원망스럽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이 6ㆍ25 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

임 이장은 농협·축협·산림 조합, 이른바 '조합 3관왕'이다. 곁에 있던 한 주민은 "이장님은 노후 걱정은 없으시겠다"고 말을 보탰다. 임 이장은 "시대가 바뀌어서 먹고 살기 참말로 폭폭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밭과 논이 좀 있어. 산딸나무 조경수, 저쪽에는 이팝나무, 뒤에는 소나무도 500주 심었는데, 해마다 전정(가지치기)하는 데만 15일~20일 걸린다니께. 인부들이랑 매년 전정하는 일이 큰일이여. 오디도 좀 했는데, 하이고, 부패균 때문에 못 해 묵것드라고, 그걸 막지를 못해. 주민들이 오디 약 헌다고 먹지도 않고, 시대가…."

코로나는 시골 마을 환경도 많이 바꿔놓았다. 임 이장은 "전부 집에서 텔레비전 틀어놓고, 할머니들이 아주 답답하다고 '이장님, (회관) 언제 문 열어요?' 하고 물어봐, 그러면 '위에서 못 열게 하니까 참으시오' 그러지"라며 말을 이었다.

"코로나로 자유롭게 돌아다니질 못하니까, '지금 사회가 6·25 때보다 더 심한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 6·25 때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 같은 순창인데도 창림동에서 풍산면으로 피난도 가고 그랬어. 소용도 없는데 어째서 피난을 갔는가 몰라. 당시에는 '어디 가면 좋다' 그런 소문이 있었어요. 민간에서. 어허허허. 있는 사람들은 쌀 같은 걸 볶아서 피난 가고. 나는 토마토 따 가지고 피난 다니고 했어."

"쓰레기 좀 잘 버려주세요. 부탁해요"

회관 안에는 폐쇄회로티브이(CCTV)가 켜져 있었다. 회관 앞길과 쓰레기장, 두 곳을 비추었다. 임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쓰레기 좀 잘 버려달라고, 그거 하나 부탁하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했다.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고, 버리지 말 건 안 버려야 하는데, 꺼먼 봉지에 이것저것 다 담아서 그냥 한꺼번에 버려. 여기 씨씨티비 있잖아? 이거 설치해 놓으니까 조금 덜 하기는 한데, (면사무소) 계장님이 와서 교육하고 그래도, 분리수거가 잘 안 돼. 재활용품도 노인들이 잘 모르시더라고. 쓰레기 좀 잘 버려주세요."

이장은 매월 '이장 수당'을 받는다. 임 이장은 "내가 막 이장할 때(2002년) 한 달에 10만원씩 받았다"며 "2004년도에 20만원으로 쬐까 올랐고, 작년에 30만원으로 또 쬐까 올랐다"고 말했다. 마을이장 체면에 주민들과 이장들 경조사 쫓아다니기도 만만치 않을 터. 그는 "그래도 10만원에 비하면 3배나 올랐응께"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 마을회관 바로 옆집에 주차된 빨간색 자동차가 눈에 띄었다. 임영락 이장의 뜨거운 열정이 담긴 애마다. 오늘도, 내일도, 빨간 자동차는 신촌마을을 마구 누빌 것이다. 청년 같은 미소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임영락 이장이 자신의 자동차 옆에서 웃고 있다.
 임영락 이장이 자신의 자동차 옆에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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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3월 18일자에 보도된 기사 내용을 추가하고 보완했습니다.


태그:#순창군, #전북 순창, #신촌마을, #임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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