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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 차명주식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달 검찰에 고발조치하였다. 그러나 검찰이 약식기소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20년이 넘는 기간, 1000억원에 가까운 금액, 강제 동원된 연인원만 수백 명인 50대 재벌기업 오너의 차명주식 사건은 벌금 2억원 수준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가 남은 이 사건의 이면에는 복잡한 경제민주화 고차방정식이 내재되어 있다. 대한민국 재벌개혁의 역린이 이 사건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태광그룹에서 시작되어 삼성그룹까지 번질 수 있는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즉 재벌 지배구조의 일대혁신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지난 3월 9일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말 태광그룹 계열사인 고려저축은행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주식 매각 명령을 내린 사실이 알려졌다. 이와 함께 공정위가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태광산업 차명주식에 대해 검찰에 고발한 사실도 대서 특필되면서 '지배구조의 위기'가 재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 사실이 알려진 바로 그 다음날 검찰이 약식기소를 발표한 것은 웃픈 경제민주화의 현실을 반증한다. 마치 전날 언론 지상에 불붙은 '태광그룹 지배구조 위기설'에 검찰이 나서서 '그룹 지배구조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항변해준 꼴이니,참으로 자로 잰듯 정확한 검찰의 '약식' 처리가 아닐 수 없다.

태광그룹의 김치·와인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공정위의 고발에도 20개월째 미동도 없는 검찰로선 속전속결의 약식 처리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태광 일가의 썩은 김치 장사"(무려 한 언론의 헤드라인이다)는 여전히 검찰의 캐비넷에 잠들어 있다.

또한 희대의 '태광골프장 4300명 전현직 고위관료 로비리스트 사건'도 중앙지검에 15개월째 함께 묻혀있다는 사실은 우연치고 꽤 당황스럽다. 이것이 자칭 공정하다는 이 시대 경제민주화의 진면목이라니 참담할 뿐이다. 여전한 전관예우와 재벌특혜가 아닌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역시 이 사건에 대한 고민이 역력해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우수 심결로 자체 축포까지 쏘아올린 이 사건을 약식 처리하자니 전형적인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행태와 적잖은 금액이 부담일 것이다. 그렇다고 법리적으로 기소하자니 삼성그룹의 금융사 지배구조와 맞닿아 있는 이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알려진 바와 같이, 흥국생명과 그 보험 계열사의 적격성 심사는 여전히 남아 있어 이 사건은 경제민주화의 가늠좌가 될 것이다. 시민사회는 지난 수년간 황제보석, 일감몰아주기, 방사성 폐기물 은폐 등 태광그룹 수많은 의혹을 제기해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사실관계 유죄를 받아내었다. 숱한 태광그룹 사건, 사고 의혹에 있어 가짜뉴스 0%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만큼 태광그룹과 경제정의, 환경고발 측면에서 시민사회는 완승을 거둔 것이다. 이러함에도 여전히 태광그룹을 비호하는 것은 누구인가?

경제정의는 창과 방패의 싸움일 수 없다. 경제개혁과 정의실현에 있어서 선악구도는 명확함에도 여전히 비호세력은 판을 치고 있고, 개혁법안에 대응하는 회피전략도 늘어간다. 애초에 초법적, 탈법적인 대기업 일탈이 없다면 경제민주화의 시대적 사명도 완수되었을 것이다.

태광그룹만 봐도 많은 과제와 문제가 남아 있고 새로이 확인되고 있다. 탈법행위에 대한 법치확립만이 경제정의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이전 정권보다 오히려 소극적인 검찰의 대기업 수사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의지가 정적을 대상으로 한 적폐청산일 뿐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촛불 정부가 선택적 평등, 로비의 공정, 말뿐인 정의로 남는 시대로 역사에 남지 않기 위해 재벌개혁은 필수불가결의 과제이다.

덧붙이는 글 | 이형철 기자는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 대표이자 흥국생명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검찰개혁,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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