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7 21:32최종 업데이트 21.03.1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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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가 조성 중인 대구 수성구 연호지구에 땅 투기 의혹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 조정훈

 
"가족의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당신을 위해 든든한 국민 생활 파트너 LH가 함께 합니다."

LH 누리집 대문에 걸린 글귀를 보면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국민 생활 파트너'라는 친근한 이미지에 가려진 탐욕. 예전부터 그럴 수 있겠다는 의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비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을 사고, 지분 쪼개기와 합치기와 희귀 수종 식수로 보상가를 높였다는 의혹을 받는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국민에게 이런 '생활 파트너'가 꼭 필요할까 회의가 드는 요즘이다.


LH 파문으로 정권과 여당의 지지율이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정권과 직접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공기업을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에 비판과 비난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민심이 요동치자 상대방 허물을 들추려는 여야의 공방이 거칠다. 그러나 여야 모두 부동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당 김경만 의원은 배우자가 2016년과 2018년 개발 호재가 있던 시흥 장현동의 임야를 사들였다는 의혹을 받자 15일 해당 땅을 팔아 전액 위기가정 지원사업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 외에도 민주당 현역 의원 5명이 땅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지역의회 민주당 의원들의 투기 의혹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투기 DNA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3월 3일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 논평). 그러나 투기 DNA를 검증해봐야 할 대상에는 국민의힘도 있다. 강기윤 의원은 자신의 농지가 공원예정지로 편입되자 37억 이상의 시세 차액을 얻고도 세금을 피하려고 양도세 셀프 감면을 발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1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21대 국회 300명의 국회의원 중 76명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관련기사: LH 직원만 문제? 국회의원 농지 소유 명단을 공개합니다 http://omn.kr/1sdoe). 여야가 손가락질을 하며 상대를 투기꾼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의원 다수가 투기를 위해 농지 구입을 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국민의 시각이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 조사와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할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공적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

퇴임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번 사태에 내놓은 진단이다. 바른 말이다. 하지만 윤 전 총장 장모조차도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불법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부동산 투기, 망국의 범죄 맞다. 여야 국회의원과 전 검찰총장의 일가족, 국토를 관리하는 공기업 직원까지 혈안이 돼 한몫 챙기려는 부동산 공화국. 이런 오래된 적폐를 방치한 채 집값을 잡고 국민의 주거 안정 정책을 펴겠다고? 어림없는 소리다.

이번 사태는 정보·권력·금권을 이용해 은행과 공기업 직원들과 부동산 브로커가 한통속이 되어 토지 주인에게 돌아가야 할 개발 이익을 선취하고 국고를 축낸 사건이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다. 정보·권력·금권 어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국민과 그 모두를 갖춘 권력층이 대척점에 선 사건이다.

정부를 향해 투기DNA가 있다고 공세를 펴는 국민의힘도, LH를 탄생시킨 이명박 정권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낙연, 15일 페이스북에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토지공사·주택공사를 통합한 이후 너무 많은 정보와 권한이 집중됐다')을 하는 민주당도, 망국의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자격 없다. 

대통령은 왜 이제서야 부동산 적폐를 해결하겠다고 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25번의 부동산 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이유가 이런 엄청난 비리의 또아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정녕 몰랐느냐는 원망도 있다.

그러나 소 잃은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한다.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간 땅투기와 집투기로 한몫 잡는 오래된 악습의 고리라도 끊어낼 수 있다면, 정권의 명운을 걸어볼 만하다. 읍참마속의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가장 깊숙한 적폐를 도려낼 의지가 아니면 부동산 적폐 청산은 정치 공세만 주고받다가 오히려 투기의 내성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루 10시간 주 6일을 일하던 택배노동자가 또 죽었다. 13일 택배차에서 뇌출혈 상태로 발견된 뒤 15일 사망한 김종규(51)씨가 받은 돈은 한 달 200만 원도 되지 않는다. 공정이 시대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면 분노는 이럴 때 필요하다. 주 60시간을 일해도 200만 원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저렴한 노동 국가의 한편에서는 개발 정보로 수억 수십억을 챙기는 적폐가 상존한다. 이런 현실을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바로잡고 나서야 할 사람들은 국민이다. 권력층과 정치권 누구 하나 이러쿵저러쿵 나설 처지가 아니다. 불공정의 분노가 하늘을 찔러야 세상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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