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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나는 서울 사당동에서 철거민들과 함께 살면서 '철거반대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투쟁의 고조기를 넘어 좀 시간이 나게 되면 틈틈이 집필 활동을 했다. 물론 집필의 목적은 오직 '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주로 서울 시내 도서관들을 찾아다니며 썼고, 때로는 전주 고향집에 내려가 집필 작업을 했다.

오직 '운동'을 위해 원고지를 꾹꾹 눌러 쓴 그 시절의 책쓰기

1989년 초에 김범우란 필명으로 출간했던 <실천적 대중운동론>은 전주에 내려가 썼던 책이다. 그 무렵 컴퓨터가 없으니 당연히 직접 손으로 원고지에 썼다. 대개 하루에 200자 원고지 70~80매 정도, A4 용지로 하면 10장 정도 분량을 썼다.

너무 많이 빨리 쓰다보니 자주 손목이 너무 아파서 한참을 쉬어야 비로소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빠르면 20일 이내에 책 한 권을 쓸 수 있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실천적 대중운동론> 책을 꺼내 다시 읽어본다.
  
30년이 흘러 다시 꺼내 읽어 보는 '대중운동론'
 
실천적 대중운동론 책 표지
▲ 실천적 대중운동론 실천적 대중운동론 책 표지
ⓒ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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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목차를 보니 제1장 '대중운동의 원칙' 아래로 '승리하는 싸움을', '명분 있는 싸움을', '대중 집회의 방식을 유력한 무기로', '구체적 실천과정에서 구체적 발전이', '대중의 정서와 요구에 조응하는 운동' 등등 오랜만에 다시 접해 보는 '운동'의 낯익은 소제목들이 배치되어 있다.

제2장은 '대중활동가의 임무와 자세'이고 그 뒤의 제3장 '민족민주 운동의 과제' 편에서는 '운동권 이기주의', '좌편향을 극복하기 위하여' 소제목과 함께 '주체사상에 대한 일 평가'란 소제목이 보인다. 그 내용을 여기 조금 인용해 본다.
 
해방 후 남한의 자본주의화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이미 식민지반봉건 사회의 단계를 넘어섰으며, 따라서 식민지반봉건 이론에 기초한 운동론의 유효성과 타당성은 반감되고 있다. 진실로 주체성을 존중한다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운동을 중시하고 그것에 일조한다는 관점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이 나라의 민족해방운동의 발전에 오히려 해독을 끼쳤던 코민테른의 과오를 되풀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책의 마지막 보론 부분에는 '조국통일 운동의 과제'를 다루고 있다.

"조국통일 운동은 진정으로 주체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이는 현실적 토대인 남한 민중을 사고의 중심에 놓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민주화 및 자주화와 결합한 그리고 국민 생활과 결합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를 충실히 실천하는 과정에서 광범하고 굳건한 대중적 토대를 구축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통일 운동에 관한 이런 내 생각을 김근태 선배님에게 이야기하자, "정말 비판적 지지구나!"라고 하시던 선배님의 말씀이 아직 귀에 선하다.

언제나 주체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을 중시했던 시절이었다.

위기의 시대, 어떤 대중운동이 필요할지 궁리해야 할 시간

절체절명의 기후위기를 비롯하여 장기화되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그리고 전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부동산 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누구도 혼자서는 해결해나갈 수 없는 너무 커다란 문제들이다. 그러니 뜻 있는 모든 사람들의 힘을 모아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대중운동'이 필요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어떠한 형태, 무슨 방식의 새로운 '대중운동'이어야 하는 것일까?

다시 진지하게 궁리 좀 해봐야 할 현 시기인 듯하다. 30년만에 꺼내 먼지를 털어가며 다시 읽는 색바랜 '대중운동론'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태그:#실천적 대중운동론, #소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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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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