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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마하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처음 알게 된 건 방송국에서 시사 작가로 일할 때다. 2018년 10월, '별별인문학'이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으로 방송에서 소개할 땐 '진주에 이런 도서관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지난 2019년 12월. 이 도서관이 폐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지역의 많은 시민들의 후원과 바람으로 만들어진 진주 유일의 사립 공공도서관이 사라진다고?! 말도 안돼. 재빨리 양미선 관장님을 초대해 방송으로 사연을 전했다.

여러 방송 매체와 시민단체들의 협심으로 다행이 위기는 넘겼고, 무사히 공간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 인연 이후로도 한 번씩 마음이 가던 도서관. 지나가던 길에 들른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땐 코로나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 여권이 넘는 그림책이 소장돼 있다.
▲ 마하어린이도서관 전경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 여권이 넘는 그림책이 소장돼 있다.
ⓒ 백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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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에 잘 적응해 가던 첫째가 갑자기 유치원 친구가 보고 싶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구 엄마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장소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그림책이 많은 곳이고 아이들 작업실(?)이 있어서 친구 엄마가 벌써 예약을 했다고 했고, 얘기를 듣고 간 곳이 바로 '마하어린이청소년도서관'. 아이고. 이제야 와보네.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섰다. 

학습지를 하는 지인은 자신의 집에 약 3천만원 어치의 책을 들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책들을 꽂은 책장이 무려 아홉개라고 했다. 일 때문에 바빠서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못 읽어줘서 그렇지, 자기는 그만큼 집에 책을 들여놓은 것만으로 죄책감을 벗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첫째는 지금 책 좋아해요?!"라고 물었는데 그리 긍정적인 대답은 아니었고, 다행히 둘째가 혼자 학습지 패드로 공부를 하고 관련 책을 가져와서 읽는다고 했다. 3천만원 어치의 책이라... 가난한 우리 집은 그만큼의 책을 들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과감히 패스하고. 그렇다면 내가 부지런히 도서관을 왔다갔다 하면서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을 빌려다 줘야겠구나... 하고 다짐하고 있던 터였다. 

뛰어 놀다 심심해서라도 책을 꺼내 볼 수 있는 최적의 공간 

오~ 그런데 웬걸. 이 도서관이 정답이었다. 만여권이 넘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심지어 어디서든 책을 뽑으면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바닥이 장판도 아닌, 그렇다고 나무 바닥도 아닌, 일본 온천촌에 가면 다다미 방 전체에 깔끔하게 깔려있는 폭신한 재질로 마감이 돼 있었다.

발도 시리지 않고 엉덩이를 붙이고 오래 앉아 있어도 무리가 없을 만한 자리. 나는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다른 동네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도 가봤지만 거긴 뭔가 쇼파에 앉지 않으면 책을 읽을 만한 공간이 별로 없었고, 거실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는 형태라 비교하자면 여기가 훨씬 괜찮았다. 테이블도 큼지막한 것과 조그마한 것들이 군데 군데 놓여 있고 쿠션 형태로 마감된 곳도 있어서 아예 눕거나 엎드려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10년 가까이 도서관을 손수 일궜던 엄마들이 직접 운영을 하고 있다. 아이를 업고 데리고 와서 하나하나 엄마가 아이를 다루는 정성스런 손으로 책과 공간을 소중하게 꾸민 곳이다. 요일 관장 5명이 돌아가며 맡고,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는 곳. 운영면에서도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인 곳. 

우리 아이들은 '모야'라는 작업실에서 1시간 반을 놀았다. '모야'는 어린이 작업실인데, 아이들이 상상한 것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이란다. 여러가지 재료가 있고, 그걸 바꾸는 도구가 있고, 함께 하는 또래 친구들이 있었다. 어떤 게 있나 궁금해서 들어가보려고 했더니 선생님이 날 막아섰다. 이곳은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도록 어른이 없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방침에서였다. 쿨하게 인정하고 돌아섰다. 
  
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니까 위험한 도구들을 사용할 땐 장갑도 낀다. 물론 담당 선생님도 계셨다. 첫째 아이는 동그란 스티로폼으로 곰돌이를 만들고 흔들면 소리가 나는 방울 접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만든 것으로 그림도 그리고 군데군데 비밀방 같은 공간에서 선생님과 나란히 책도 읽고 그렇게 4시간을 넘게 도서관에서 놀았다.

그런데, 내가 반기는 소식은 따로 있었다. 이 도서관이 올해부터 초등 돌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마련된 '경남형 우리마을 아이돌봄센터'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돌봄교실에서도 떨어지고, 방과후활동 경쟁에서도 떨어져 12시 30분 하교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까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이런 작업실도 있고, 그림책, 역사 책, 아이들 책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돌봄교실'까지 운영을 한다니! 바로 나같은 사람을 위한 곳이 여기에 있었다니 !! 아이들 표현을 그대로 빌려 쓰자면, 대.박.사.건!!!! 

아이들이 숨 쉴 틈도 없이 빡빡한 프로그램만으로 채워진 것도 나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놀다 쉬다 그렇게 허공도 바라보다가 심심해서 아무책이나 뽑아들어 그림만 봐도 좋다. 그럴 수 있는 공간을 찾은 것만으로도 나는 무슨 로또에 걸린 것 마냥 기뻐서 흥분했다.  

20명 정원인데, 신청한 아동이 아직 10명이 채 안 된다고 했다. 아마도 소식을 모르고 있거나 차량으로 직접 데려다줘야 하는 고민 때문일 것으로 예상된다. 간식도 주고 또래 아이들과 지낼 수 있는 이곳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든다. 나처럼 돌봄도 방과후도 떨어진 친구들이 이곳에 와서 내 아이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또, 글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아이셋 워킹맘의 미친 세상이야기)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돌봄사업, #어린이도서관, #공공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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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6개월이란 경력단절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달은 아이셋 다자녀 맘이자, 매일을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글을 쓰는 일이 내 유일한 숨통이 될 줄 몰랐다.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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