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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희 사건 5차 공판이 지난 9일 열렸습니다. 서울중앙지법엔 저희 가족 말고도 전국에서 여러분들이 응원을 와주셨죠.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여러 언론 보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통상 1000건 중 3건만 받아들여진다는 재정신청이 인용돼 당초 빠졌었던 '무면허 의료행위'가 쟁점으로 다뤄졌지요. 의료법 위반은 형법과 달리 유죄판단이 나오면 의사면허에 제한이 있다 보니 다들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집도의인 장아무개씨와 신입의사 신아무개씨, 마취과의사 이아무개씨, 간호조무사 전아무개씨까지 네명의 피고인이 각자의 변호사들과 함께 재판정에 들어섰습니다. 장씨는 입장하며 어머니께 고개를 숙이더군요. 동생 대희가 죽고 나선 "법대로 하라"던 사람이었는데, 검사의 기소 후 재판까지 이르자 그제야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씨는 그나마 나은 편일까요. 동생 대희보다 고작 2살 많았던 신씨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저희를 못 본 채 지나치며 공판정에 들어섰습니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은 신씨는 언제나처럼 재판이 끝나자 휭하니 사라졌죠. 

재판에 온 몇몇 기자들이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국 언론 CNN 기자분도 그중 한 명이었지요. 한국 의료계의 비정상적인 수술 관행과 수술실 CCTV를 둘러싼 논란에 관심이 있다며 기사를 통해 저희 사건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의사들이 공장식 유령수술을 진행한 사실은 인정하는 이유
 
수술 모자도 쓰지 않은 간호조무사가 혼자 수술 부위 지혈을 하고 있다
▲ 수술실 CCTV 화면 수술 모자도 쓰지 않은 간호조무사가 혼자 수술 부위 지혈을 하고 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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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재판이 시작되었죠. 역시나 피고인들은 중요 혐의인 무면허 의료행위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간호조무사 홀로 30분 이상 대희를 지혈한 부분이 쟁점이 되었는데, 장씨와 신씨, 간호조무사까지 해당 부분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죠.

주목되는 건 이들이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의료사고 사건과 달리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30분 동안 수술실에서 혼자 지혈한 행위가 위법하냐 위법하지 않으냐만 따지고 있는 거지요.

이유는 수술실CCTV 덕분입니다. 수술실CCTV가 있어서, 의사들이 모두 나가고 간호조무사 혼자 지혈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영상에는 간호조무사가 지혈 도중 화장을 고치고 환자를 방치한 채 휴대폰으로 뭔가를 하는 모습도 확인됐죠. 그러니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못하고 '간호조무사 혼자 30분 지혈을 한 건 맞는데,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요'하고 주장하는 겁니다.
 
혈액 대체재 투여 시각이 거짓으로 기재되었다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 검찰의 의료법위반 공소장 혈액 대체재 투여 시각이 거짓으로 기재되었다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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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진료기록이 잘못 작성되었다는 사실도 CCTV를 통해 드러났죠. 의무기록지상 혈액대체제를 주사했다고 하는 시각엔 그런 주사를 놓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고, 주사했다는 전체 횟수도 다릅니다. 혈압과 맥박 기록도 영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여럿이지요. 그런데도 의사들은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마취기록지 허위기재로 기소된 의사 이아무개씨 측 변호인은 "시간을 잘못 기재한 건 맞지만, 고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실수라는 것이죠. CCTV가 없었다면 사고 후 의사들이 작성한 바로 그 진료기록을 근거로 재판을 했을 텐데 아찔합니다. 이게 바로 수술실 안에 CCTV가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CCTV가 없는 병원에선 의무기록지와 관련자 증언으로 의료진의 잘못을 입증해야 하는데, 의료진이 거짓을 하고 의무기록지도 병원에 유리하게 교묘히 조작돼 있다면 유족과 마취 당사자가 어떻게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단지 이 병원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결국 5차 공판도 피고인들과 저희의 입장차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에겐 알리지 않고 동시에 여러 건의 수술을 하며, 수술실을 왔다갔다 하다 퇴근해버린 의사들. 그들 때문에 건강하던 제 동생이 죽었지만 그들은 5년째 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연일 수술실CCTV 법제화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1인시위 중이신 어머님께선 이번 재판에서도 눈물을 참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을 보았어요. 전국에서 얼굴도 모르는 제 동생 재판을 찾아와 주신 분들, 그분들이 보내주신 응원과 관심이 제2, 제3의 대희가 발생하는 걸 막아주리라 믿습니다.

수술실CCTV는 수술실 안에 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희는 어느 이름 없는 병원에서 죽은 게 아닙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 수술 잘한다고 홍보해 그날도 동시에 여러 명의 수술을 몰래 진행한 곳에서 수술을 받고 죽었습니다. 이름 있는 대학 의전원을 갓 졸업한 의사는 그곳에서 6개월째 환자 몰래 수술을 하면서도 죄책감이 없었지요. 과연 이 병원만의 이야기일까요.

국회가 일찍이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못해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지요. 
지난 국회에서도 좌절된 수술실CCTV 법제화 법안은 3월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까지 수술실 바깥에 CCTV를 달자는 식으로 의견을 낸 회의록도 보았습니다. 입장을 바꿔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수술실 밖에 달자고 하지 말고, 모든 병원 수술실 안에 CCTV를 달고 그 영상을 관리하는 제도를 만들어 주십시오. 

3월 국회에서 반드시 법이 통과되도록 독자분들의 관심과 견제를 부탁드리며,

고 권대희 형 태훈 올림.

태그:#수술실CCTV, #필요한이유, #권대희사건, #5차공판, #무면허의료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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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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