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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저술한 <진보의 미래>에서 "(자신이) 그냥 앉아서 관료에 포획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가, 관료인가

언뜻 우리 사회는 대통령 한 사람이 홀로 우뚝 서서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채 온 나라를 좌지우지 통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청와대 권력이란 단지 전체 공무원 조직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청와대는 5년마다 바뀌지만, 관료들은 바뀌지 않은 채 언제나 강고하게 온존하면서 핵심 자리를 장악한다.

국회 역시 겉으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온갖 비난을 모두 들으면서 정치와 입법을 좌지우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국회 입법관료들이 보이지 않은 실권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사실상 관료들이 지배하는 관치(官治), 관헌(官憲) 국가다. 이 나라는 대표적인 행정 비대 국가다. 정책 하나하나에 수백 수천 명의 이해가 걸렸다. 공무원이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官)주주의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법'과 '규정'이 사회를 일상적으로 지배하게 된 이른바 87체제 이후 '법치주의'의 이름하에 결국 이들 관료집단의 지배력이 갈수록 확고해져왔다. '시험 권력'이 '선출 권력'을 사실상 조종하고 지배하는 이러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실종된, 관료가 주인된 사회다.

'관료개혁'에 대한 진보 진영의 무관심은 직무유기

그런데 필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게 여기는 사실이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관료개혁'이라는 이슈에 대해 민주진보 진영이 이상하리만큼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간 보수 진영 쪽에서 관료개혁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호응이 상당했고 관료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반면 진보 진영 쪽에 가서 몇 차례 관료개혁에 대해 발표했지만 그때마다 호응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소리 없는 메아리였고 냉랭하기조차 했다. '진영 논리'에만 몰두하는 민주진보 진영의 폐단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고, 관료사회에의 참여 경험과 접촉이 보수 진영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적어 관료의 실상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현실적 요인에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책 '대한민국 민주주의 처방전' 표지
 책 "대한민국 민주주의 처방전" 표지
ⓒ 어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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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한민국 민주주의 처방전>은 세월호 참사 뒤 이른바 '관피아'가 크게 이슈가 되면서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인 관료개혁을 위한 모색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필자는 척박한 공직 사회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징계를 겪으며 한시도 관료개혁을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필자의 결론은 바로 '관료개혁 없이는 우리 사회의 어느 것 하나도 변화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LH 사태, 과연 LH만의 문제일까?

작금의 LH 직원 투기 의혹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우리 사회의 관료집단은 군부독재 이래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에 부합하며 확대 재생산돼왔다. 그들은 얼핏 정치권력에게 짓눌려 희생당하는 억울한 집단으로 간주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정치 권력에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며 감시와 견제의 철저한 부재 속에서 현직은 현직대로, 전관은 전관예우의 우산 아래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를 벌여왔다.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의 저변에는 언제나 관료집단이 도사리고 있다. 관료집단은 본질적으로 현상 유지와 친(親)재벌 사고방식의 보수적이고 기득권 편향으로서 대부분의 경우 변화와 개혁에 저항한다.

더구나 외부로부터의 진입이 철저히 차단된 독점구조에서 감시견제 기제가 부재한 채 책임감과 의식 부재가 더해져 스스로도 갈수록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대체로 관료집단은 일반 시민과의 접촉은 별로 없다. 반면 기업 측 인사들은 빈번하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관료집단은 '시장 친화적'이며 시장경제 옹호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이 고착화되고 보수화가 강화되며 사회 불균형이 급속도로 확대돼 가는 것은 바로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관료지배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심각하기 짝이 없는 부동산 문제를 비롯하여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관료집단은 아무 의식 없이 그저 규정과 관행만을 내세우고 모르쇠, 시간끌기로 일관할 뿐이다. 참으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관료집단을 새롭게 바꿔내야 한다.

태그:#관료개혁, #소준섭, #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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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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