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독립'이라는 글자를 보면 벌써 한숨부터 쉬게 된다. 하늘 아래 내가 살 곳은 존재하는가... 과연 나는 주거빈곤에 처하지 않게 될 수 있는가. 내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게 되면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할텐데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이 요즘 나를 사로잡고 있다. 

청년세대의 불평등을 연구하는 제니퍼 M. 실바(Jennifer M.Sliva)가 <커밍 업 쇼트>(2020)에서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다들 성인기란 "혼자 힘으로 서는 법"과 "무언가를 자주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라고 하지만, "청년이 성인이 되는 과정을 정의하는 선택의 부재는 모른 척 한다"는 것. 성인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일 테고, 청년들의 주거 문제는 그 중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누군가는 주거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내부정보로 투자하고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 667-1,2,3번지에 보상을 노린 수백 그루의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사전 개발정보를 이용해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 667-1,2,3번지에 보상을 노린 수백 그루의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한국토지주택공사(아래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 여전히 뜨겁다. 3기 신도시와 관련하여 LH 직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광명시흥, 창릉, 왕숙 등 지역에 집단적으로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다. 주거난이 문제라는데, 누군가는 내부정보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이 '웃픈' 풍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이 사안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김지연(가명, 27)씨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청년이다. 회사 동기들은 대부분 '부모찬스'를 이용해서 굉장히 잘 살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김씨는 보증금이 없어서 8평 투룸에 살며 월세를 내는 반면, 부모가 전세금을 대준 동기들은 전세 대출이자도 적게 낸다면서 분노했다. 

"토지 개발과 관련이 없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도 다들 투기에 미쳐 있어요. 투기를 안 하면 '호구'가 되는 분위기가 팽배한데 LH 직원들도 그랬던 거 아닐까요? 그들이 특별히 악해서 생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는 나쁜 거지만 돈 있고 그러면 누가 안 하겠나 싶어요."

이런 분노 어린 냉소는 청년주택의 5.5평 원룸에서 거주하는 보라(가명, 34)씨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느껴졌다. 과연 공직자들의 내부정보로 투기를 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었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일에 대해) 화를 내는 사람들은 본인이 집을 언젠가는 살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라며 너무 오래된 문제고, 그래서 화가 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특히 보라씨는 애인과 같이 청년주택을 들어가려고 시도했다가 청년주택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이 들어갈 순 없다는 얘기를 들었던 경험을 얘기했다. 주거할 공간이 필요한 청년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주거정책에 대해 분노하면서, 저러니 평범한 사람들의 주거권에 신경이나 쓰겠냐는 말을 남겼다. 

'청년들의 주거권을 걱정하던' 변창흠 장관에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시민단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조직국에서 과거에 활동했던 쌔미(가명, 31)씨는 부동산, 주거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절반의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우스갯소리로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버블이 꺼지는 게 곧 다가오겠구나"라면서 역으로 내 집 마련에 대한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고. 

"이런 문제가 축적되면 결국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더 가열하게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생길 거고, 그러면 주거권 논의는 더더욱 멀어지게 될 겁니다. 당장 경제를 떠받치는 인구 대부분이 청년인데, 이들이 안정된 주거가 불가능해지면 결혼도 출산도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사안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서, 이들은 단순히 분노하고 있음을 넘어서 이것이 한두 번으로 끝났을 문제가 아니라는 데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늘 있었고, 운 나쁘게 이번에 걸려서 화제가 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보라씨도 "이번 한 번만 일어났던 문제는 절대 아닐 것"이라면서 "지금까지 계속 해왔고 이제 한 번 걸렸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이 터진 뒤에 청년세대의 주거권에 대한 인상 깊은 글귀를 읽었다. 앞서 얘기를 들어본 사람들과 생각이 비슷한 것 같아서 인용해본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년세대의 주거권 문제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여기길 바라며.
 
청년주거 문제는 주거상태의 불량, 과도한 임대료의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 부채의 누적과 생활의 어려움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비전 설정과 도전 자체를 방해하여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미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을 주거비를 충당하기 위해 소진하기 때문에 계층상승의 기회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과도한 주거비 부담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거나 출산을 회피하게 됨으로써 사회재생산 구조가 붕괴되고 있다. 부모로부터 주택이나 재산을 상속받는 청년층과 그렇지 못한 청년층과의 괴리가 평생을 두고 극복되지 못한다면 주거문제는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사회적 통합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 변창흠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청년주거를 위해 맞춤형 주택정책이 필요하다', 2014

그런데 이 글을 쓴 지 하루도 안 되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12일 오후 사의를 표명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2.4대책 기초작업까진 마무리" 할 것을 주문하고 나선 것. 대체 이 드라마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계속 지켜봐야겠다. 

태그:#LH투기, #주거권, #청년, #변창흠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