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철수씨, 오늘 엄마 생일이에요."

어머니 생전에 생일을 어떻게 챙겨드렸나 생각해 봤다. 아마 결혼하기 전보다 결혼 후 한동안은 아주 조금 더 신경 써서 챙겼던 것 같다. 사실 결혼 전에는 음력 생일이라 가끔은 빼먹기도, 까끔은 지나고 나서 축하 인사를 드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결혼하더니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였는지, 시부모 생일을 꼬박꼬박 잘 챙겼던 '아내의 내조' 덕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생일만은 잊지 않았다. 잊지 않고 챙기기는 했지만 내 속마음은 매년 한 번씩 돌아오는 그냥 다른 날보다는 조금은 특별한 날로 생각이 들었던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세월이 가고 아이들에게 한창 손이 많이 가면서,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 생일을 그냥 보통의 하루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머니 생일이 되면 의무감에 전화를 드리고, 용돈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면서 어머니는 나이가 드셨고, 늘 곁에 계실 것 같았던 어머니에게 뜻하지 않은 병환이 찾아왔다. 암, 그중에서도 전이가 된 암이었다. 절망스러운 현실이었지만 어떻게든 쾌차하시길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시고 나서부터 난 어머니의 생일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마 직감적으로 몇 번을 더 생일상을 챙겨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에 더 신경이 쓰였던 듯싶다. 실제로 어머니의 암 진단 후 생일을 챙겨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고작 다섯 번에 불과했다.

내 기억에 어머니가 병마와 싸우시기 전 우리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은 아마도 통영과 여수 여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렴풋이 아이들과 환하게 웃으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오래된 사진처럼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만 허락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을 텐데라는 후회는 남지만 그래도 편찮으시기 몇 해 전부터 함께 다녀왔던 여행들을 생각하면 그런 추억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떠난 지 벌써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크지만, 아직까지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머니 나름의 최선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머니 당신은 조금 더 오랜 기간 병마로 씨름했으면 지치고, 힘들어할 아버지를 걱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삶의 끝자락을 그렇게 놓으시고 우리가 닿지 않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신 듯하다. 마지막엔 당신을 잃은 가족의 슬픔을 빨리 떼어내려고 오히려 더 독하고, 모진 말들을 하신 듯하다.

시간이 가면 그 아픔도 조금은 옅어질 거라고 믿었다. 아니 조금씩 옅어졌다. 하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머니 생각은 오히려 생전보다 더 자주 머릿속을 찾아든다. 오늘도 그런 어머니 생각이 난다. 먹먹한 아픔이나 슬픔은 아니지만 굳이 글로 표현하면 그냥 '그립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며칠 전 사무실에 일하던 내게 아내가 전화를 걸었다.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리 흔한 일도 아니어서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폰에서 흘러나오는 아내의 목소리에 잠깐 그 그리움이 또 한 번 내 기억 장치를 잠시 멈추게 했다.

"철수씨, 오늘 엄마 생일이에요. 몰랐죠? 나도 달력에 표시는 해놨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아... 그래요. 벌써 엄마 생일이구나. 지난 생일 챙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이따 아버님한테 전화드려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코로나를 핑계로 어머니를 모신 곳을 찾아뵌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지난 여름에 다녀온 후로 한 번을 가지 못했으니 벌써 6개월이 지난 것 같다. 조금 따뜻해지면 아내와 시간 내서 하루 잠시 다녀와야겠다. 갖고 있던 그리움이야 온전히 덜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조금 마음이 편할 듯싶다. 어머니를 생각했을 때 '그리움'이 떠오르기 전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라는 마음만이라도 그곳에 두고 오고 싶다.

어머니의 생일날 저녁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많이 전화벨이 울리고 나서야 전화를 받으셨다. 허겁지겁 받으셨을 것 같은 내 생각과는 반대로 오히려 목소리는 차분하다. 난 직감적으로 아버지도 어머니 생일을 알고 계셨구나 싶었다.

"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 퇴근했냐?"
"그럼요... 아버지, 오늘 어머니 생일이었네요."
"알고 있었구나. 네 엄마한테 아까 다녀왔다. 엄마도 니들이 생일 기억해주는 걸 고마워하겠구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은 떨리는 듯싶었다. 난 조금 울컥했지만 혼자 계신 아버지가 울적해하실까 걱정돼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아버지와 난 서로 마음은 이미 들켰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통화를 끝내고 전화를 끊었다. 시간이 가면 슬픔도, 그리움도 옅어지지만 유독 슬픔과 그리움이 짙어지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실립니다. 기사에 쓴 이름은 가명입니다.


태그:#어머니, #그리움, #생일, #가족,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