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포스터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포스터 ⓒ 독포레스트(DocForest)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다이아몬드 도둑, 신화가 된 조직을 본격적으로 파헤친다. 인터폴이 인정한 최고의 국제 보석 절도 조직 '핑크 팬더'의 모든 것을 담았다. 영화는 핑크 팬더의 핵심 조직원 다섯과, 인터폴, 경찰, 기자 등을 만나 인터뷰 형식으로 꾸려 화제가 되었다.
 
특히 각기다른 역할의 조직원 비밀 인터뷰는 사실감을 동반한다. 거기에 실제 CCTV 영상, 로토스코프 애니메이션(실사 영상을 한 프레임씩 그대로 그려내는 아날로그 방식) 기법의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누아르 영화, 하이스트 무비에서나 볼법한 획기적인 스타일, 실체를 파헤치려는 절박함이 만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들의 범행 계획부터 실행 및 거래 과정, 창단 계기 등을 전 세계 최초로 다룬 영화다.
 
핑크 팬더의 실체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 스틸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 스틸 ⓒ 독포레스트(DocForest)

 
이들은 2000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직원 대부분이 발칸반도 출신이며 200여 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범죄 수법, 인맥, 출신지를 공유하고 언제든 뭉쳤다가 흩어지는 점조직 형태를 보인다. 윗선이 누구인지 모르기도 하고 누구와 작업할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지만 끈끈한 유대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맡은 바 임무를 게임하듯 수행하면 된다. 몇 달 전부터 어떤 보석상을 공격할지 물색하며 철저히 준비한다. 필요한 인원과 탈출 방법까지 확실히 점검하는 무장 강도다.
 
치고 빠지기에 능하고 각자 전문 영역이 정해져있어 독립적이며 체계적으로 행동한다. 지금까지 약 500여 건의 최고급 보석상만 골라 수천억 원에 달하는 보석을 털었다. 22초 넘기면 위험, 평균 범행 시간이 채 1분도 되지 않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털어버리지만 인명 피해는 없게 한다는 게 법칙이라면 법칙이다. 그래서 스스로 다른 조직과 차원이 다르다는 자부심이 있다. 때로는 발칸반도의 로빈훗으로도 불린다.
 
행동책은 남성이지만 여성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여성 조직원은 핑크 팬더의 핵심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오직 한 명만 선발된다. 아름답고 똑똑해야 하며 돈에 밝아야 한다. 여성 조직원은 표적이 될 보석상을 미리 찾아 여러 정보를 탐색하고 세세히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핑크 팬더의 기원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 스틸컷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 스틸컷 ⓒ 독포레스트(DocForest)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스틸컷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스틸컷 ⓒ 독포레스트(DocForest)

 
기원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금기라 불리던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티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다양한 국가, 종교, 민족이 모여 만든 사회주의 국가였다. 하지만 1980년 티토가 사망하자 분열되었고, 엄청난 긴장감이 형성되며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다. 각국의 독립을 원하는 분리주의자들은 일어나 내전으로 치달았다. 1991년 문제가 심각해지자 유엔은 정치·경제적 제재를 가했고 유고슬라비아는 고립되었다. 더 이상 자국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사람들은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옷, 비누, 석유 등을 밀수해 생계를 유지했지만 종류는 점차 다양해졌고 대담해졌다. 이들은 절박했다. 생존 수단으로 서로를 속이고 폭력, 살인도 서슴없었다. 돈벌이를 위해 마약, 무기, 매춘, 총기 밀수 등 파이를 키워갔다. 충격적인 것은 자국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국경 넘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유럽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게 되자 다이아몬드가 주 밀수품이 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은 훔친 다이아몬드가 재가공 되고 원산지 증명서까지 발급되면, 완벽한 새 다이아몬드가 된다는 것이다. 계획부터 실행, 세탁, 운반, 판매까지 불법이 합법되는 핑크 팬더의 작품이었다. 다이아몬드는 기록이 남지 않아 추적할 수 없고 이를 이용하려는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범죄를 미화했다. 겁만 줄 분 사람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점과 외국 보석상을 털어 자국으로 가지고 온다는 왜곡된 애국심을 이유로 들었다. 심지어 발칸반도 사람들은 핑크 팬더를 추종하기도 했다. 그들은 1990년대 유럽 제재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핑크 팬더가 복수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의적이 아닌 명백한 범죄자다.
 
쫓고 쫓기는 관계... 언제쯤 끝나나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 스틸컷

영화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 스틸컷 ⓒ 독포레스트(DocForest)

 
영화는 반짝이는 보석의 어두운 이면, 물질만능주의 늪에 빠진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꼬집고 있다. 날 선 풍자는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 번 발 들인 범죄의 늪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끔찍하고 외롭다는 진실은 숨길 수 없었다. 범죄자들은 지난 과거를 한 편의 영화처럼 묘사하다가도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나약한 말로를 보여준다. 연인과 떳떳하게 산책할 수도 없고, 여러 신분으로 갈아타다 끝내 정체성마저 흔들리기도 한다며 후회한다. 그래서 더욱 신에 매달리며 면죄부를 갈망한다.
 
핑크 팬더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조직이지만 잡히지 않고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두바이, 일본, 싱가포르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혹여나 잡히더라도 보장된 배후가 안전하게 돌봐주기에 위험한 행동도 서슴없었다. 하지만 폭주 기관차 같던 활동에 제동이 걸린 사건이 발생한다. 두바이 와피 쇼핑몰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 인터폴은 각국의 경찰과 공조했다. 2007년부터 유럽 각지에서 50여 명을 체포하며 성과를 보이며 실마리를 획득한다.
 
하지만 핑크 팬더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는 명제를 수년간 몸에 익혀둔 탓이다. 1세대가 지고 세대교체가 끝나면 어떠한 변화를 맞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대체 이 쫓고 쫓기는 관계는 언제쯤 끝날까.
 
하바나 마킹 감독은 "범죄는 어디선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범죄 조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역사적, 지리적 혹은 각자의 이유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체포되지 않은 조직 일부는 또다시 진화를 거듭해 찾아올 것이라 경고한다. 핑크 팬더의 시대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그저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
스매시 앤 그랩 보석강도단 핑크 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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