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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교회에 걸려있는 현수막
 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교회에 걸려있는 현수막
ⓒ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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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은 동성애 강제 교육법이다!"

분홍색 현수막에 하얀 글씨로 크게 써진 문구를 보고 발길을 멈추었다. 이곳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다. 교회 옆에는 고등학교가 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 말이 되지 않는 혐오 문구를 크게 내걸어놓아도 아무에게도 제재받지 않는다.     

현수막을 자세히 보면 잔인한 문구로도 모자라 확성기를 그려놓았다. 혐오 표현을 더 퍼뜨려야 한다는 뜻일까. 여기에 금지 기호도 크게 그려져 있다. 차별금지법을 금지한다는 의미와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미도 섞여 있을 것이다.

혐오 표현을 전시해도 제재를 받지 않는 강력한 기득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에서 한 달 사이 트랜스젠더 세 분이 연이어 돌아가시게 된 이유다. 종교, 정치, 방송 등의 강력한 기득권이 끊임없이 지긋지긋하게 혐오 발언을 하고, 이를 방관하는 다수가 있다.

차별금지법 발의안은 성별, 장애, 나이, 출신국가·민족, 인종,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강제 교육법인가?

저렇게 사실도 아닌 혐오 발언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에 잘 보이는 분홍색 현수막에 써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에 걸어놓았다. 이 길을 지나다니는 성소수자들은 걸을 때마다 혐오 표현에 노출되는 셈이다. 그들은 매일같이 이곳을 지나며 현수막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트랜스젠더 연극 작가였던 이은용씨는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라는 연극에서 이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적 있다. 연극에는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는 세계가 나오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경계를 두드리는 분투가 나온다. 병원의 환자복마저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웃픈 현실이 보인다.

그들은 혐오와 편견, 차별에 가림막 없이 노출됐으며, 이분법 성별 인식이 공고한 사회에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왔다. 지난달 8일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를 집필한 트랜스젠더 연극 작가였던 이은용씨가 숨진 채 발견됐고, 24일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이자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인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성별)' 김기홍씨도 숨진 채 발견됐다. 바로 얼마 전인 3일에는 성전환 수술 후 강제 전역당했던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20대 젊은 나이에 충북 청주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죽음을 우리 사회가 마냥 방관하고 있어도 될까. 저렇게 길 한가운데에 분홍색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도 제재하지 못하는 사회적 타살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2020년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당했을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인권위의 시정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인권위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8번이나 발의된 차별금지법이 통과됐다면 저렇게 학교 옆 골목길에 혐오 발언을 전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태그:#차별금지법, #혐오, #차별,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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