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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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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그의 삶과 문학ㆍ사상을 평하면서 '시대와 불화(不和)'를 지적한다. 그런 측면이 없는 바 아니지만 그는 시대와 화목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시대를 변혁하고자 하였다. 처신ㆍ문학ㆍ저항에서 그렇다. 그러다보니 기득권을 향유하는 사대부들로부터 적대시되고 결국 제거당한다. 

그는 자의식이 무척 강한 독립성의 인물이었다. 연구가들 중에는 그가 정작 반역음모를 꾸몄는가, 당대의 음흉한 세도가 이이첨의 농간에 엮인 것이 아닌가를 따진다. 허균은 불평가, 반역자가 아닌 부패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려고 한 혁명가였다. 

허균만은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복권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언제나 성이 삭제된 채 '균'이라는 이름만으로 불려졌으며, 그가 생전에 간행한 책들도 '허'라는 그의 성이 칼로 도려진 채 전해지게 되었다. 광해군 때에 역적으로 처형된 사람들이 많았으며 광해군이 결국 서인들의 인조반정에 의해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자 그들이 모두 복권되었지만, 허균만은 복권되지를 못했다. 그가 뒤짚으려고 했던 대상이 광해군과 이이첨의 북인정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했던 조선왕조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주석 1)


허균은 역수어(逆水魚)였다.

선조시대의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폭정을 온 몸으로 부딪히면서 반정이나 개혁이 아니라 이씨왕조를 송두리째 뒤엎어야 한다는 신념의 혁명가이다. '역수어'는 백범 김구의 강연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해방 후 환국하여 통일 정부수립을 위해 진력하다가 이승만의 분단세력에 밀려 칩거하던 1949년 3월 청년학도들에게 한 연설이다.

여러 동지들!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나려 갑니다. 그러나 산 물고기는 아무리 급류일지라도 자기 목적지를 도달하기 위하여서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산 고기는 깊은 물도, 얕은 물도, 순한 물도, 격류 억센 물결도, 여울진 종잇장 같은 물도 모로 누워서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죽은 고기는 목적이 없습니다. 산 고기는 가는 목적이 있습니다.

동지들이여!
동지들은 목적이 없는 죽은 고기가 되렵니까?
목적 있는 산 고기가 되렵니까?  

급류저주(急流低柱) 급류용퇴(急流勇退) 이는 젊은이의 기상입니다. 이 기상 이 기백을 가지고서야 이 나라 일군이 될 것이니, 평시 학교 안에서 이 기상 이 기백을 단련해 두어야 합니다. (주석 2)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
ⓒ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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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악했던 시대에 역수를 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나라와 중민을 구하고자 했던 허균은 기득세력의 험한 비난에 홀로 맞섰다. 「나를 비난하는 이들에게」라는 시문에서 정작 그의 본질을 찾게 된다.

나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풍채 좋고 당당한, 갓 쓴 사람이
 내게 따져 묻네.
 "그대는 문장도 잘 하고
 벼슬은 당상관.
 높은 관 쓰고 넓은 띠 두르고
 임금을 곁에서 모시면
 종자들이 구름처럼 에워싸고 
 대로에서 물렀거라 외치지.
 사귀어야 할 사람은
 의당 정승 판서들
 부지런히 왕래하며
 힘을 합해 모의해야지.
 몇 계단 뛰어넘어 권력을 잡고서는
 곳간을 가득 채워야 맞는데
 어찌하여 조회만 마치면 
 입을 닫고 바보처럼 지내는지.
 출세한 자는 오지 않고
 특이한 사람만 함께하네.
 얼굴 검은 사람
 수염 붉은 사람
 수염 붉은 이는 우스갯소리 잘하고
 얼굴 검은 이는 술병을 들었군.
 키 작은 사내 하나
 그 코가 여우 같고
 애꾸눈인 이도 있고
 속눈썹이 붉은 이도 있네.
 날마다 마루에서 떠들썩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질러 대고
 삼라만상을 아로새기며
 저희끼리 즐거워하네.
 그대를 질시하는 자들 숲처럼 많고
 선비들은 죄다 등을 돌리니
 당연하군, 그대가
 진흙탕에서 뒹구는 것도.
 그들을 버리고
 높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하지 않겠소?
 내 대답은 아니오, 아니라오.
 물정 모르는 그대 말씀.
 내 천성 졸렬해서
 허술하고 거칠다오.
 기교 술수 부릴 줄 모르고
 아첨 아양 부릴 줄 모르며
 하나라도 내 맘에 안 맞으면
 잠시도 못 견디네.
 남 칭찬 좀 하려 들면
 입이 벌써 우물우물
 권세가에 발 들이면
 발꿈치가 욱신욱신
 고관에게 공손히 인사하려면
 기둥이 박혔나 허리가 꼿꼿하네.
 불경스런 이 모습으로 
 보자마자 미워서
 내 목 베고 싶으리.
 어쩔 수 없어
 강호에 숨어 살까 생각도 했지만
 가난 때문에 월급 때문에
 물러나고 싶어도 주저주저.
 오직 저 두세 사람
 세속에 구애되지 않고
 내 재주 좋아하고
 거침 없는 내 성격 사랑하네.
 찾아와 술에 함께 취하고
 이쪽에서 부르면 저쪽에서 응하며
 한쪽이 시 지으면 한쪽이 화답하니
 한편 한편이 진주 구슬.
 화제(자금색 옥) 아니면 목난(벽옥색 보석)
 매과(장밋빛 보석) 아니면 산호거늘 
 내 보물 내가 보배로 여겨
 팔리기를 기다리지 않네.
『시경』을 친구로 삼고
『이소』를 종으로 삼아
 대단한 문학을 한다 우쭐대며
 온 세상을 좁게 여기네.
 벼슬하며 속임수 부리지 않고
 내 본성대로 살아 왔고
 하늘이 준 천성대로 살아
 도움 되진 않았소."
 그 사람 하는 말이
 "내가 어리석었소.
 그대 말 듣고 보니
 큰무당을 본 것 같네.
 그대 사귐 훌륭하고
 그대 말에 잘못 없으니
 실언한 나야말로
 진짜 소인이로군요."
 말을 마치고 물러가는데
 걸음걸이 멋지구나. (주석 3)


주석
1> 허경진 옮김, 『홍길동전, 허균 산문집』, 「책 머리에」, 6쪽, 한양출판사, 1995.
2> 김학규, 『혈루의 고백』, 104쪽, 1982.
3> 정길수 편역, 『허균 선집』, 「나의 법을 따르겠다」, 188~190쪽, 돌베개, 2012.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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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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