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03 07:43최종 업데이트 21.03.03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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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시내 한 아파트단지 상가 부동산에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집값 안정에 부처의 명운을 걸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집값 안정에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언론들도 이 내용을 큼지막한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는 말보다 백 배 더 중요한 것이 행동이다. 그 행동의 주체는 집값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국토부와 기획재정부다.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국토부는 2·4대책에 대한 후속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수도권에 주택이 공급이 되기까지는 5~10년이 걸릴 것이므로 당장 집값 하락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대통령이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바로 다음날 공급대책보다 집값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이 확정·발표됐다. 그런데도 이 정책은 언론에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일반 국민에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정부의 의도와 이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기자들의 식견 부족의 결과일 것이다.

그 정책은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 제3조(합산배제 임대주택)의 개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된 세법개정에 따라 세부 적용 사항을 규정하는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종부세 시행령에도 손을 댄 것이다. 

건설업자들에게까지 확대한 임대사업 특혜

'합산배제'란 '비과세'를 의미하는 법률용어로 제3조는 임대사업자에 대한 종부세 비과세 특혜의 근거가 되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한 달여 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 조항을 개정해 달라고 기재부에 요구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지사는 경기도에 26채를 소유한 다주택자가 이 '합산배제' 조항 때문에 종부세를 1원도 안 내고 있다며 이런 부당한 특혜를 폐지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대한민국에서 주택을 가장 많이 소유한 서초구의 A씨 역시 753채를 소유하고도 종부세를 1원도 안 낸다. '합산배제' 특혜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제3조만 폐지하면 전국의 160만호 임대주택에 종부세를 정상적으로 부과할 수 있다. 적게는 수 조원에서 많게는 10조원의 종부세 수입이 증가한다.

종부세 세수 증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집값 하락 효과다. 종부세를 정상적으로 과세하면, 서울의 50만4000호 임대주택의 상당수가 종부세 부담 때문에 매도로 나올 것이다.

지난달 8일 한국도시연구소가 국회사무처의 용역의뢰를 받아 분석한 보고서도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특혜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 보고서는 결론으로 "임대주택등록제는 존치할 이유가 없음", "아파트 외의 주택유형에서도 장기일반민간임대주택을 폐지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지적하며 세금특혜 제도의 폐지를 권고했다.

그런데 국토부와 기재부는 임대사업자 세금 특혜를 폐지하기는커녕 특혜 대상을 더 확대했다. 지난달 17일 정부가 발표한 종부세법시행령 개정안에는 "종합부동산세의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건설임대주택의 가액기준을 상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합산배제 대상 임대주택의 전용면적을 85㎡에서 149㎡로 확대하고, 합산배제 가액 기준을 공시가격 6억원 이하에서 9억원 이하로 올렸다. 건설사가 분양하지 않고 임대주택으로 등록할 수 있는 아파트를 공시가 9억원, 분양면적 55평형까지 대폭 확대한 것이다. 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건설사업자에게는 종부세율도 낮춰줬다. 최저 3%인 법인 대상 세율이 아니라 최저 0.6%인 개인 적용 세율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토지주택공사(SH) 등 공공사업자는 물론 '뉴스테이' 등을 공급하는 민간 건설임대사업자들과 빌라 등 공동주택을 지어 임대사업을 하는 소규모 건설업자들도 세 부담을 크게 덜게 됐다.

걱정되는 아파트 분양가 상승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이 8억원을 돌파했다. 2일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월간KB주택시장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2월 서울의 주택 종합 평균 매매가격은 8억975만원으로, 전월(7억9741만원)보다 1234만원 오르며 처음 8억원을 넘겼다. 사진은 2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정부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건설사들의 세부담이 줄어들면서 임대주택의 원활한 공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아파트 분양가격은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를 분양하는 건설사 등 시행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이 미분양이다. 미분양을 피하기 위해 분양가를 낮추어 분양한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미분양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높은 분양가로 인해 미분양이 발생하더라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면 되기 때문이다.

재산세를 50~100% 감면받고, 임대소득세도 약 90% 감면받으며, 종부세는 100% 감면받으면서 집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더욱이 시세차익에 대한 양도세도 10년 임대할 경우 100% 감면해주고, 전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도 임대주택 소유주들에게는 무려 80%를 감면해주는데 미분양을 걱정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소규모 주택 건설의 경우에는 아예 분양을 하지 않고 곧바로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다. 10년간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더 비싼 가격에 팔면서 양도세를 전액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분양가를 상승시키고 주택 분양을 감소시킴으로써 아파트 가격을 더 급등시킬 것이 자명하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앞서 언급한 국회 용역보고서에서 서울 주요 아파트단지 4곳의 총 1만1155호의 소유권과 실거래가를 분석했는데, 2018년 임대주택이 대거 등록되고 그 결과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2017년 12월 13일 시행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방안'으로 임대사업자에게 세금 특혜를 제공한 것이 서울 아파트 가격의 폭등을 초래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특혜의 영향은 비단 아파트 가격을 폭등시킨 데서 그치지 않는다. 향후 아파트 가격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도시연구소 보고서에 의하면 임대주택으로 등록된 주택의 약 80%가 8년 만기의 장기임대였다. 2018년 대거 등록된 아파트 임대주택의 만기는 2026년이 돼야 도래하는 것이다.

4·7 보궐선거를 기다리는 민심

현행 임대사업자 세금 특혜를 유지하면, 2026년 이전에 매도로 나올 임대주택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향후 수년간 서울의 신규 주택공급 역시 늘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은 고공행진할 가능성이 크다.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유권자의 최대 관심은 집값폭등의 해결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 표명도 이런 민심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주택 국민은 대통령의 입은 물론 정부의 집값정책 하나하나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집값 폭등의 근본 원인인 임대사업자 세금 특혜를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늘리면서 "집값 안정에 명운을 걸라"고 하는 말을 무주택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대통령과 여당은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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