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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다수의 글쓰기를 통해 사회를 향해 발언해 왔으며, 이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지식인이다. 강 교수의 현실 참여와 비평은 우리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잘 알려진 저작으로는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 죽이기>,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서울대 공화국>, <강남 좌파> 등이 있다. 강 교수는 '다작의 논객'이라는 호칭을 받을 정도로 많은 저서들을 냈다.

또한 1997년에는 저널룩(Journalook: journalism+book)을 계간으로 발행하면서 한국 사회에 지식인 실명 비판을 도입하는 등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담론을 일으키는 지식인 논객으로 유명하다. 그의 현실 비판은 정치, 언론, 문화 등 사회 현상 전반을 넘나들었다. 강 교수는 저서 활동 외에도 한겨레신문과 인물과 사상, 사람과 언론 등의 언론을 통해서도 현실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의 영역에 걸쳐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이런 가운데 교수로서의 강준만은 지난 2020년 12월을 기점으로 은퇴했다. 정년 퇴임한 강 교수를 지난 2월 20일께 만나 궁금했던 점과 앞으로 계획을 들어보았다.

"편 가르기가 지배하는 사회... 정치의 목적이 반대편 타도로 전락"
 
강준만 교수
 강준만 교수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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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정년퇴임하게 됐다.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은데, 대학에서 젊음을 불사르며 열정을 바쳐왔는데 정년을 맞게 된 소회가 궁금하다. 

"담담하다. 물론 '시간'에 대해선 그럴 수 없다. 칼 마르크스는 '시간이 전부이고 인간은 더는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시간의 구체화일 뿐이다'고 했다는데, 여기에 뭔가 가슴에 와닿는 게 있다. 30여년 전 전북대 교정을 처음 밟았을 때 낯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 대학에서 가장 인상 깊고 보람 있었던 과목의 강의는 무엇이었나. 

"한국언론사 과목이다. 우리 학생들이 입시공부 탓에 한국근현대사에 취약한데 개화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압축해 소개하고, 그 맥락 속에서 언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주 즐거웠다. 역시 이야기의 매력을 따라갈 게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 잘 알다시피 지방대 학생들의 취업률이 저조하다. 특히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신문방송학과 학생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우리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좀 건방져져라'였다.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과소평가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디지털 시대가 강요한 언론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이 나같은 꼰대들이나 기존 언론인들한테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다. 나는 청춘의 힘을 강하게 믿는 편이다. 창의적인 발상을 왕성하게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 많은 책과 논문을 썼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책과 논문이 있다면?

"딱 하나만 소개하겠다. 전상민 박사와 같이 쓴 <'경로의존'의 덫에 갇힌 지역언론학: '지방소멸'을 부추기는 3대 '구성의 오류'>([한국언론학보], 2019년)라는 논문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논문은 지난 30여년간 한시도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주제에 대해 실제로 체험한, 살아 있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결론의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방소멸은 미디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걸 외면한 채 고고한 상아탑식 과학탐구에만 정진해야 하는가?

어느날 저녁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이 열쇠가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의 근처엔 가지도 않은 채, 단지 밝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 가로등 밑에서만 서성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미디어를 넘어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대중의 일상으로 파고 들어가는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지방소멸은 임박한 현실이다. 우리 학자들의 연구는 그 재앙을 막는 데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열악한 환경에서 전북 언론 살려 보겠다고 애쓰는 사람 보면 고개 숙여져"   

- 퇴임 직전에 낸 책 <싸가지 없는 정치>가 화제다. 이 책을 쓰게 된 배경과 출판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책의 머리말에서 밝힌 이야기를 좀 풀어서 말하겠다. 시(詩)로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영국 시인 세실 데이 루이스는 '정직한 꿈을 꾸며 살았던 우리가 나쁜 사람들을 더욱 나쁜 사람들과 비교하여 옹호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논리다'라고 개탄했다지만,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편 가르기'의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정치의 목적은 '반대편 타도'로 전락하고 만다. 잘못된 모든 것은 '반대편 탓'으로 돌리고, 우리편에 대한 내부 비판은 무조건 '배신'과 '변절'로 매도하는 광란의 수렁에선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다고 본다.

이게 바로 이 책을 내게 된 이유이자 배경이지만, 출간 후 우리 지역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예상하겠지만, 비판과 지지가 동시에 있었다. 비판은 예상했던 거라 담담하게 받아들였지만, 지지는 내게 감동과 더불어 내가 앞으로 주력해야 할 일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서울의 어떤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전북이 전남·광주보다 더 한 것 같다고.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두고 한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모두 다 인정하겠지만, 우리 지역민들 가운데 '민주당 1당 독재'의 폐해에 대해 개탄하지 않는 분이 없다.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희한하고도 놀라운 건 지역 내 정치적 다양성에 대해선 더할 나위 없이 인색하고, 다른 정치적 견해에 대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도대체 이게 웬 조화일까?

우리는 과거의 호남 소외에 대해선 잘 알고 있거니와 그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런 점에서 지역 내에서 정치적 다수파가 소외시킨 사람들은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수파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다수 의견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꽤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이런 사람이 서울에 가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렇게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지역에선 그런 무례한 짓을 할까?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에티켓 아닌가?"

- 퇴임 후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다. 앞으로 계획을 말해달라.

"독서와 글쓰기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독서와 글쓰기에 중독된 탓이다. 어차피 오래전부터 집 근처에 별도의 작업 공간을 마련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출퇴근하게 되면 일상의 삶에선 퇴임 전이나 후나 별 차이나 변화가 없을 것 같다."

- 끝으로 지역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친문 네티즌들이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선 그냥 재미있게 웃어 넘겼지만, 얼마 전 일부 여당 정치인들까지 이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선 혀를 끌끌 찼다. 독자들 중엔 '왜 그게 혀를 끌끌 찰 일이냐? 사실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워낙 권력자에 대한 아첨을 싫어한다는 걸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전북 언론 살려 보겠다고 애쓰는 사람을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그간 글로만 전북 언론 잘 되기를 빌어 왔지만, 그런 희망을 온몸으로 실천해 온 사람도 있다. 나는 지역의 척박한 환경에선 시민들이 작은 언론매체를 향해 '당신은 지역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뭔가 보여주기를 요구하기보다는 '내가 당신의 소중한 뜻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전폭적인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강준만, #전북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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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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