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눈에 띄었을 때, 흔치 않은 '어린이'라는 글감이 반갑고 신선했다. 저자 김소영은 어린이책 편집 일을 하다가 지금은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글을 잘 쓰도록 지도하는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 아이들과 함께한 소소한 일상에 의미를 담은 글들이겠구나!' 생각하며 호기심 어린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한편으로 '나도 어린이라면 알 만큼 아는데, 새로운 내용이 뭐가 더 있으려나?' 싶은 의구심이 살짝 들기도 했다.

알만큼 안다고 자신했던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저, <어린이라는 세계> 표지
  김소영 저, <어린이라는 세계> 표지
ⓒ 사계절

관련사진보기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했지만, 수년간 영어공부방을 하며 다양한 어린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갖가지 마음고생으로 속을 끓인 적도 많았다. 

가령, 숙제를 안 해오며 온갖 핑계를 대는 아이와 매일 신경전을 벌이고, 다쳤으면서도 부모님에게 혼날 걱정에 집에 가지 못하던 아이를 달래주고, 은근히 한 아이만 왕따 시키는 기 센 아이를 어찌 대해야 할지 등등 난감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린이에 대한 바른 철학과 지혜가 필요했다. 어린이 시민단체를 기웃거리며 강연을 듣기 시작했고, 어린이 관련 잡지와 책들을 찾아 읽으며 사람들과 토론을 했다. 어린이에 대한 기존의 왜곡되고 권위적인 인식을 내려놓고자 애를 썼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린이에 대해서 고민할 만큼 했고, 이제는 뭘 좀 안다고 자신했기에 자연스레 '뭐가 더 새로운 게 있으려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웬 걸! 책은 도끼라고 했던가? 어린이들과 얽힌 소소한 일화는 예상대로였지만, 일화에서 끄집어내는 저자의 사려 깊은 주장들은 도끼가 되어 나의 생각과 행태들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름 진보적인 소견을 견지하고 있다고 자신했건만 뜻밖이었다.

변명거리를 찾아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간혹 불쑥불쑥 올라왔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어린이를 위한 저자의 섬세한 사려 깊음에 마음을 빼앗기고, 통찰력 넘치는 저자의 주장들에 동의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읽었더니 어린이를 위하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에 동화되며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을 흘리게 만드는 그런 글들이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 화면 캡처
 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 화면 캡처
ⓒ KBS

관련사진보기

 
도끼로 찍힌 나의 허점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었다. 우선, 우울감을 떨치는데 도움이 된다며, 아빠가 아이들을 돌보는 TV 프로그램 영상들을 챙겨보았던 게 마음에 탁 걸렸다. 

저자는 어린이들의 천진한 반응을 보기 위해 어른들이 특정 상황을 만들어 내는 TV 장면들 속에는 어린이들은 어른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의미가 은연중에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 어린이에 대한 시각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중략)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중략) 나는 어린이가 TV에 나오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어린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또래와 어울려 노는 모습이 보이면 좋겠다.(p.227)

요즘 아빠들의 육아 참여에 도움이 되는 방송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결단코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아이들을 어른들이 통제할 수 있는 꼭두각시 존재로 인식시키는 데 나도 일조한 것 같아 얼마나 꺼림칙하던지.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는 저자의 단호함이 부끄러운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어린이 프로그램뿐 아니라 방송일을 하시는 모든 분들도 이 책을 꼭 읽어보시고 방송제작에 적극 반영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공장소에서 간혹 보이는 '노 키즈 존' 같은 개념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점도 문제였다. 물론 엄마인 나는 어딜 가든 소란스러운 아이들이나 우는 아이들의 행태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이 안쓰럽고, 아이 엄마를 어떻게 도와줄 순 없을지 살피는 편이다. 

다만, 조용함이 절실히 필요한 사정 있는 손님도 있을 테고, 손님과 껄끄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영업주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에 '노 키즈 존'같은 개념들이 안타깝지만 통용될 수밖에 없다고, 딱 거기까지 생각하곤 했더랬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노 키즈 존'은 어린이를 배제하겠다는 뜻이고, '노 배드 패어런츠 존'은 얌전한 어린이만을 선별해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라고. '세련된 노인'이나 '깨끗한 남성'만 받겠다고 하면 당장 문제라고 난리칠 텐데, 어린이와 그 엄마는 싫은 내색을 해도 별 힘이 없는 약자이니 차별해도 된다는 무의식적 전제가 깔렸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껄끄런 상황을 마주할 용기는 내지 않고, 눈에 띄는 아이들을 너그럽게 보아줄 관용을 베풀지는 못하면서 약한 어린이를 외면하려고 하는 비겁한 또는 무책임한 어른의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것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저출산이 문제이니 사회가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아라"라고 요구하며 도구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사회의 어느 곳에서든 환영받는 환경,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무심하게 통용되었던 문구들 뒤에 숨은 차별과 혐오를 끄집어내어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저자의 일갈이 따끔하면서도 시원했다.

어린이를 존중하고자 노력하는 저자의 사려 깊음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존댓말 쓰기에 대해서가 아닐까 싶다. 반말-존댓말 대화에서 반말을 하는 어른은 '존댓말을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더 귄위를 얻게 되고, 존대하는 어린이의 의견은 자주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존댓말을 하는 어린이는 자기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상대가 표현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대응하느라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한다고 한다. 세상에, 지금까지 반말-존댓말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녹아 있는 줄도 모르고, 내내 예의랍시고 아이들에게 존댓말 사용을 권해 왔나 싶어 당황스럽다.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사람보다 그 말을 듣는 쪽이 더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게 마련이다...(중략) 만일 어린이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말 조절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말을 들으며 대화가 끝난다. "누가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래?" 나는 어린이들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중략) 어린이 말에 더 많이 귀 기울이겠다고 다짐한다. 어린이가 표현한 것만 듣지 않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겠다고. 어린이가 말에 담지 못하는 감정과 분위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어른이 되겠다고.(p.192)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김에 그동안 내내 존댓말을 써 온 우리 집 아이들에게 사과라도 할 겸 물어보았다. 그동안 엄마한테 존댓말 쓰느라 혹시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고. 아이들은 존댓말에 묶여야 하는 '감정'을 말했다. 화가 나거나 억울할 때 어른의 반말처럼 온전히 그 감정을 존댓말에 싣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디, 네가 할 말이 있으면 해 봐, 해 보라고!" 같이 따지는 문장의 경우, 존댓말을 쓰면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해 보세요. 해 보시라고요!"처럼 귀여운 반항 정도로 감정이 다운되는 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 애들이 순해서 이제껏 잘 지내왔나 싶었더니, 사실은 존댓말 때문이었나 보다. 그나마 "누가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래?" 같은 말은 들은 적이 없다니 다행이다. 반말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을 막 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반말이든 존댓말이든 말에 담긴 온도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저자의 주장대로 어린이들에게 존댓말을 써서 적정 거리와 예의를 갖춰 존중해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소 투박한 말이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진솔하고 따뜻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린이는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른의 입장으로 너무 편향되게 굳어진 사고와 행태에 대해 반성을 하다 보니 저자가 더 크게 보인다.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노 키즈 존', 반말-존댓말 대화 등 비슷한 상황을 겪어도 그 상황을 비춰내는 내면의 맑은 정도와 깊이가 남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양육자는 아니지만, 맑고 깊은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느끼며 아이들과 그 양육자들까지 보듬으려 하는 저자가 참 고맙고 따뜻하다.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존중하며 좋은 대접을 하는 것은 당연히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저자처럼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하고 깨우치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며 실천해 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가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의미가 깊다.

어린이에 대한 바른 인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갈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충실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자세히 알려주었으니 이제 실천은 읽은 이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 기사 게재시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은이), 사계절(2020)


태그:#어린이,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