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날 2899명의 축구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포항 스틸야드 관중석에 빼곡하게 앉았다. 지난해보다 일찍 찾아온 K리그의 봄을 느낄 수 있는 초록 그라운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조금 슬픈 분위기를 감출 수는 없었다. 그 중심에 올해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포항 스틸러스의 레전드 센터백 김광석이 있다. 곧 이 경기는 '김광석'을 딴 더비 매치였다.

김기동 감독이 이끌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가 28일 오후 2시 포항 스틸야드에서 벌어진 2021 K리그 1 인천 유나이티드 FC와의 홈 게임에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새 시즌 첫 승리 소식을 팬들에게 전했다.

선취골 기뻤지만 활짝 웃을 수 없었던 이유

지난 시즌에도 극적인 1부리그 생존 드라마를 완성시킨 어웨이 팀 인천 유나이티드가 시즌 첫 게임에 먼저 골을 터뜨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2분에 교체 선수로 들어온 미드필더 아길라르가 스틸러스 그라운드를 밟은 뒤 6분만에 멋진 왼발 골을 터뜨린 것이다. 
 
 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첫 골 주인공 아길라르가 왼발 킥으로 공격을 이끌고 있다.

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첫 골 주인공 아길라르가 왼발 킥으로 공격을 이끌고 있다. ⓒ 심재철

 
인천 유나이티드의 오른쪽 크로스를 포항 수비수 신광훈이 헤더로 걷어낸 것을 인천 유나이티드 주장 김도혁이 잡아서 옆으로 밀어주었고 아길라르는 포항 페널티 에어리어 위에서 기다렸다는 듯 왼발 중거리슛을 낮게 깔아 보냈다. 바로 앞 포항 스틸러스로 돌아온 베테랑 오범석이 버티고 있었지만 아길라르의 왼발 슛은 절묘하게 그를 피해 포항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골키퍼 강현무가 몸을 날렸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궤적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아길라르의 멋진 선취골에 환호하기보다는 벤치 앞으로 모여 추모 세리머니를 펼쳤다. 현재 자가격리 중이어서 게임을 뛸 수 없는 팀의 간판 골잡이 스테판 무고사의 아버지가 며칠 전 몬테네그로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추모의 뜻을 보내주었다. 

'김광석' 더비

먼저 골을 내준 포항 선수들이나 팬들은 더 씁쓸한 감정을 가라앉혀야 했다. 후반전 초반까지도 만년 꼴찌 팀이나 다름없는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끌려가는 게임을 펼치는 것도 답답했지만 그 중에 그들이 오랫동안 자랑스러워 했던 레전드 수비수 김광석이 인천 유나이티드의 흰색 어웨이 유니폼을 입고 뛰었기 때문이었다.

2021 시즌 포항 스틸러스의 첫 게임이 하필이면 '김광석' 더비 매치로 잡힌 것이다. 군 입대 기간만 빼고 2003년부터 지난 해까지 400게임 가까이 포항 스틸러스를 위해 헌신했던 베테랑 수비수가 이적하면서 하필이면 새 시즌 첫 게임 상대 팀 선수로 나타난 것이다.
 
 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수비수 김광석이 공을 몰며 빌드 업을 시도하고 있다.

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수비수 김광석이 공을 몰며 빌드 업을 시도하고 있다. ⓒ 심재철

 
김광석은 명성 그대로 노련한 수비 조율 능력을 선보였다. '오반석, 정동윤'을 양쪽에 두고 백 스리 시스템의 중심에 서서 마치 그 동료들과 여러 해 전부터 호흡을 맞춘 듯 적극적인 의사 소통으로 팀 밸런스 유지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러나 축구 게임 수비를 혼자만의 능력으로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가 막아야 할 타이밍에 포항의 후반전 역전 드라마가 나왔다. 60분에 포항의 동점골이 터질 때 홈 팀에게는 그것이 행운으로 따라왔고, 인천 유나이티드 수비수 김광석에게는 아쉬움이 묻었다. 포항의 새로운 중심이 된 신광훈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날아오는 순간 팔라시오스에게 접근한 김광석의 몸에 맞고 공 방향이 살짝 바뀌어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그로부터 12분 뒤 포항이 자랑하는 활력소 강상우의 방향 전환 드리블이 이어질 때 역시 김광석은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달려나와 그 앞을 가로막았고 결국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강상우의 왼발 중거리슛에 이은 송민규의 리바운드 역전 결승골이 터졌다. 김광석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포항의 대표적인 두 선수(강상우, 송민규) 움직임이었기에 그로서는 이 역전패가 더 안타까웠다.

이제 두 번째 김광석 더비 매치는 오는 6월 29일(화) 오후 7시 30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리게 된다. 다시 만날 그 때까지 김광석은 인천 유나이티드 동료들과 수비력을 어느 정도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할 일이다.

2021 K리그 1 결과 (2월 28일 오후 2시, 포항 스틸야드)

포항 스틸러스 2-1 인천 유나이티드 FC [득점 : 신광훈(60분), 송민규(72분) / 아길라르(28분,도움-김도혁)]

포항 스틸러스 선수들
FW : 이현일(46분↔임상협)
AMF : 송민규, 이승모(55분↔고영준), 팔라시오스(63분↔그랜트/82분↔이호재)
DMF : 신진호, 오범석(55분↔전민광)
DF : 강상우, 하창래, 권완규, 신광훈
GK : 강현무 

인천 유나이티드 FC 선수들
FW : 김채운(22분↔지언학), 유동규(46분↔김준범), 박창환(22분↔아길라르)
MF : 오재석, 김도혁, 문지환, 김준엽
DF : 오반석(80분↔송시우), 김광석, 정동윤(51분↔델브리지)
GK :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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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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