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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맞아 부산·경남 출신 항일투사 11명이 훈장과 대통령표창을 받게 되었다. 독립운동사료연구가인 추경화 충효실천운동본부 대표는 11명의 항일독립투사 자료를 찾아 이번에 인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권동수, 김홍규, 유경환, 이춘근, 정해인, 조정규, 하성백 선생은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권동수(權動銖, 1914~1945) 선생은 부산 기장읍 동부리 출신으로, 동래고보 재학 중 '반전운동'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1932년 9월 13일 부산지법에서 징역 2년 6월형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홍규(金洪圭, 1916~1982) 선생은 창원 서성동 출신으로, 마산공고를 나와 산업별 노조협의회 활동 중 일경에 피체되어 1937년 12월 23일 부산지법에서 징역 10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유경환(柳璟煥, 1892~1956) 선생은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 출신으로 상해임시정부 의원 겸 청년단 총무로 활약 중 일경에 피체되어 1921년 9월 2일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이 언도되어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춘근(李春根, 1912~1993년) 선생은 부산 부민동 출신으로, 노동조합 준비위원회 공장연구회를 조직해 주도적으로 활동 중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이 언도되었으나 500일간 옥고 치렀다.

정해인(鄭海仁, 1911~1946) 선생은 창원(진해) 경화동 출신으로 노동조합 준비 위원회 활동으로 이춘근 등과 함께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 2년형이 언도되었으나 실제 500일간 옥고를 치렀다.

조정규(趙正奎, 1914~1992) 선생은 창원(진해) 북부동 출신 일본 북신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투쟁으로 일본 신호시 재판소에서 징역 2년형이 언도되어 신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하성백(河聖伯, 1890~1948) 선생은 산청 단성에서 3.1운동을 지도하고 일경에 피체되어 1919년 8월 9일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서봉수, 서성수, 정갑생, 황의형 선생은 대통령 표창 추서다.

서봉수(徐奉洙, 1892~1938) 선생은 창원 내서읍 출신으로 마산 추산정 앞에서 아우 서성수와 함께 군중을 지도하며 시위를 지도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1919년 5월 15일 마산지법에서 징역 4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서성수(徐聖洙, 1897~1967) 선생은 창원 내서읍 출신으로, 형 서봉수와 함께 마산 추산정 앞에서 군중을 지도하며 시위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1919년 5월 15일 마산지법에서 징역 4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갑생(鄭甲生, 1914~1989) 선생은 진주시 수곡면 출신으로, 진주고보 재학 중 학생시위와 전단지 배포하면서 시내 행진 중 일경에 피체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4월 집행유예 5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의형(黃義馨, 1883~1946) 선생은 창원 회원동 출신으로 서봉수 서성수 형제와 함께 마산 추산정 앞에서 군중을 지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마산지법에서 징역 4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추경화 대표는 독도사랑운동본부 의병대장.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으로 활동하고, <항일투사열전 1-2권>을 저술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1400여명의 항일독립투사를 발굴했고, 이들 가운데 250명이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태그:#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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